이런 것들이 나를 요가 매트 위에 앉힐 수 있을까

요가 루틴(31)

by 장수댁 고양이

샌달우드향의 인센스, 빨갛고 하얀 개구리 로고의 요가 매트, 에일린 선생님, 눈부시지 않을 정도인 아침햇살, 전자레인지에 30초 돌린 미지근한 물. “요가”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나를 요가 매트 위에 앉힐 수 있을까.


요가는 아침에 글을 쓰고 혼자한다. 글을 쓰고 나면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 아니 ‘작가 뽕’이 차오르게 되는데 그 상태에서 요가하면 잘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또 아침햇살이 불투명 유리창을 통과해 몽글몽글 내리쬐니 얼마나 좋을까. 세상은 여전히 살만하다는 기분이 드는 타이밍이기도 하다.


요즘엔 계속 그랬다. 저녁에 집사가 퇴근하고 오면 같이 할 때도 있지만 그건 추가로 하는 거지 본 수련은 아니다. 요가는 본디 훈련보다는 수련에 가깝기에 개인적으로 할 때 좀 더 요가스럽지 않을까 싶다. 쓸데없는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 탓도 있겠다.


골방에서 하는 요가는 옷을 차려입거나 현관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어서 언제나 가볍다. 서먹하게 사람들과 인사하거나 선생님을 반가워해 줄 필요도, 세수할 필요도 없다. 저래도 되나 싶은 자세를 거뜬하게 해내는 에일린 선생님은 초보자나 중급자를 위한 요가 영상을 360개나 찍었고, 내가 해야 하는 건 그중에 하나를 고르는 일이다. 고르는 것도 일주일은 같은 시퀀스를 하니 부담이 되지도 않는다.


자던 복장 그대로 매트 위에 앉는다. 만두카의 빨갛고 하얀 개구리가 날 반겨준다. 10년을 쓴 매트는 여전히 건재해서 집사에게 줘버렸고, 나는 새로 산 매트 위에서 요가한다. 날씨가 쌀쌀할 때는 담요를 곁에 두면 홀딩 시간이 긴 동작을 할 때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 담요의 보송보송함을 느끼고 있자면 곧 스탠딩 시퀀스가 시작된다. “매트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하라”는 구령과 함께.


선 자세. 산스크리트어로는 ‘사마스티티(산 자세)’라고 한다. 군대의 차렷과 비슷하다. 차렷이 정신 차리라는 말의 준말인 것처럼 사마스티티도 요가를 하기 위한 마음 준비를 시킨다. 평소보다 긴 시간의 들숨과 날숨을 2~3회 반복하고 곧장 다른 동작으로 이어지지만 이 자세는 스탠딩 시퀀스 중간중간 쉬는 동작으로 나오기에 무척 반갑다. 준비만 하고 쉬면 안 될까 하는 마음이 커서일까.


하는 것보다는 준비하는 데 공을 들이는 성향 덕에 인센스라는 걸 사보기도 했다. 아무래도 요가를 잘하는 것보다는 3천원짜리 인센스를 켜는 게 더 쉬우니까. 쿠팡에서 ‘샌달우드’라고 적힌 인센스 스틱을 샀고, 샌달우드를 본 적도 없지만 난 이미 샌달우드에 취해있었다. 냄새도 잘 못 맡으면서.


허영심이 가득해질 때쯤이면 요가는 스탠딩 시퀀스와 시팅 시퀀스를 넘어 누운 시퀀스로 이어진다. 시퀀스는 수축이 필요한, 힘이 필요한 자세부터 이완이 필요한, 힘을 빼는 자세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유연성이 없어 아프기도 했지만 익숙해지면 세상 편하다. 물론 꾸준하게 했을 때 얘기다.


40~50분짜리 요가가 끝나가고 있어서일까. 방 안에 누워 이런저런 자세를 하다 보면 스스로의 꾸준함을 감탄할 때가 있다. 칭찬 스티커라도 붙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건 없으니 기분이라도 내야지. 미지근한 물을 한 모금 마신다. 뜨겁지 않고 차갑지도 않아 목을 미지근하게 데워주는.


모든 자세가 끝나고 명상 시간이 된다. ‘생각을 흘려보내라’는 구령에도 나는 떠다니는 생각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적어도 인센스나 요가매트 따위의 것들은 아니다. 그러다 호흡에 집중한다. 시원한 공기가 들어와 몸을 식히고 따뜻한 바람이 되어 나간다. 그 과정을 지켜본다. 보이진 않지만 지긋이.


반문하게 된다. 왜 ‘요가’라는 말에 떠오른 것들이 무슨 의미인지.


기록이 길이 된다면 나는 그 길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