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 탐색자 May 13. 2019

경제적인 윤택함보다 삶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업방식

5. 경제적인 윤택함보다 삶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업방식


이태원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지역의 새로운 소상공인들은 대부분 더 많은 이윤창출에 집중하는 기존의 소상공인들과는 달리 적정 수준의 수입에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유가람 외, 2014; 윤혜수, 2017).


이태원에서 만난 새로운 소상공인들은 1년에 해외여행을 한두 번 갈 수 있는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된다고 하였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사업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원주민인 건물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워 갈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태원 1동에서 옷가게를 하는 L씨도 인터뷰에서 건물주에 대한 불만을 토해냈다.


"저도 이태원에서 옷가게를 그만두려고 여러 번 생각했어요.
판교에도 옷가게가 하나 있는데, 거기 건물주는 여기 이태원과 너무 달라요.
판교에는 확실히 배운 분들이 많아서 인지, 교양도 있고 상식선에서
일을 처리합니다. 그런데 이태원의 건물주들은 막무가내예요.
건물주로서 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고
무조건 임대료만 올리려고 해요.
그래도 제 스타일을 이해하는 분들이 이태원에 오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하고 있기는 해요. 오랜 단골분들도 많고요".



따라서 새로운 소상공인들이 자신들이 개척하고 창조한 공간에서 떠나는 이유는 비단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쫓겨나는 것뿐만 아니라, 원주민인 건물주들과의 삶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게 된다.


이태원의 새로운 소상공인들은 자신들이 창조한 공간을 찾은 소비자들과 사회적인 관계 맺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새로운 소상공인들이 관계를 맺고자 하는 소비자들은 이들의 상업적 활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며, 종종 새로운 소상공인들과 유사한 문화자본을 소유하고 있다. 신현준 외(2016)는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 사례에서 이들을 '취향 공동체'라고 표현하였다. 취향 공동체는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이 양방향으로 전환되면서 형성되고 강화된다.


보광동에서 우리술 전문점을 운영하는 P 씨의 경우, 금요일 저녁에는 독립영화를 빔프로젝터를 통해 상영하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소비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이들과의 소통에서 기쁨을 얻고 있었다. 그녀는 실내 인테리어 관련학과에서 석사학위까지 받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20년 동안 활동했었다. 주로 호텔이나 대형 빌딩의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큰 규모의 회사에서 인테리어 전문가로 인정받으며 근무하였으나, 행복하지 않았다.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일이 점점 더 힘들게 느껴졌다. 워낙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는 그녀는 보광동 시장 근처 작은 가게를 임대하여 자신이 사랑하는 막걸리와 어울리는 음식들을 팔기 시작했다. 


"처음엔 많이 두려웠어요.
장사라는 걸 처음 해보고 손이 빠르지 않아서 
손님들이 한꺼번에 오시면 음식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그렇지만, 제가 만든 음식과 전국 방방 곡곡에서 찾은 막걸리의 참맛을 
아는 분들이 오셨어요. 단골도 생겼지요. 
저는 매일매일이 너무 행복해요.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봤는데, 
늘 찡그리고 있던 내가 웃고 있더라고요. 
아주 환하게".


보광동에 위치한 레트로 한 스타일의 카페


P 씨의 우리술 전문점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레트로 한 스타일로 자신의 카페를 직접 꾸민 S씨도 자신이 창조한 공간이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이웃들과의 소통의 장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웃들이 저희 가게의 커피와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
편하게 찾아오는 사랑방 같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책을 갖고 오셔서 하루 종일 계셔도 저는 상관없어요.
이곳이 쉼의 장소가 되었으면 해요"


한남동에서 꽃꽂이 작업실을 운영하는 K 씨는 처음에는 제일기획 건너편에서 가게를 운영하다가 나인원 한남 근처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임대료의 증가가 작업실을 이전한 주된 이유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거리가 싫어져서라고 했다. K 씨뿐만 아니라 당시 함께 가게를 운영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도 이제 하나 둘 한남동을 떠나 좀 더 한적한 곳으로 이주해가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한남동에서 혼자 작업실을 시작하기 전, 강남에서 친구와 함께 동업을 했었다. 그러나 왠지 강남에서 사업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하였다.


"저는 강남의 그 매끈한 건물들이 주는 느낌이 그다지 좋지 않았어요.
저는 이상하게 청담동에서 나고 자랐지만, 오히려 이태원에서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드나들던 이곳이(이태원) 훨씬 정이 가요.
그리고 당시(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강남에서 제가 하던 꽃꽂이 수업에
참여하는 분들은 대부분 신부수업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랑은 가치관이나 여러 면에서 잘 맞지 않더라고요".


한남동에 위치한 꽃꽂이 작업실


K 씨와 같은 골목길에서 부티크식의 옷가게를 운영하는 P씨도 동대문에서 옷 도매사업을 하면서 백화점, 신사동 가로수길, 명동에 가게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의 양육과 병행하기가 어려워 도매사업을 정리하고 독립적인 부티크식의 소규모 옷가게를 1년 전에 다시 시작하였다. 그녀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의상학을 전공하였다. 대학원 졸업 후 기성브랜드 기업에 입사하였으나, 자신만의 스타일로 옷을 만들고 싶어서 2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친구와 독립하였다. P 씨가 신사동 가로수길을 떠난 이유도 꽃꽂이 작업실을 운영하는 K 씨와 마찬가지로 관광객이 붐비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들어선 가로수 길에서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한남동의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 분위기가 좋다고 했다.


이태원에서 활동하는 새로운 소상공인들과의 인터뷰에서 발견한 특이사항은 지금까지 대중매체에서 보도된 것과 같이 이들이 반드시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자신들이 창조한 공간에서 쫓겨나는 피해자는 아니라는 점이다. 경리단길에서 와인바를 운영하는 L 씨, 꽃꽂이 작업실을 운영하는 K씨나 같은 골목길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P 씨 모두 지금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명동처럼 변해버린 경리단길이나 가로수길에서 더 이상 사업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새로운 소상공인들에게는 목적 없이 미디어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있는 사진을 보고 찾아드는 관광객들보다 이들이 창업 당시 처음 만났던, 이태원의 오래되고 좁은 골목길에서 자신들과 비슷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서로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소비자들을 다시 찾고 있었다. 예술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한, 기존의 소상공인들과는 구분되는, 자신들의 상업적인 활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소비함으로써 이들의 활동을 지속시키는 새로운 소비자들과의 사회적인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태원의 변화를 이끄는 새로운 소상공인들은 경제적인 윤택함보다 삶의 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문화적 신계층이다.





 

이전 15화 자율적이고 독창적인 라이프 스타일 추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