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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색자 May 28. 2019

탈산업화 시대의 소비공간, 이태원

이태원 골목길의 아우성 24

1945년 미군부대의 주둔과 함께 기지촌으로 시작된 이태원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이방인들의 공간으로, 내국인들에게는 터부시 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태원은 이 공간이 지닌 독특한 역사로 인해 형성된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변화된 이태원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더 이상 거북한 기지촌이 아니다. 이곳은 외국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추억을 재현할 수 있는 서울 속의 이국적인 문화공간이며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소비의 공간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종종 표현되는 이태원에 나타난 장소성의 변화는 단순한 상업화의 변화과정이 아니다. 이는 거대도시, 그리고 세계도시로 성장한 서울의 세계화와 관련이 있다. 서울의 세계화는 문화적 자본가이며, 초국가적 행위자들인 글로벌 엘리트들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였다. 글로벌 엘리트들의 차별화된 (생산과 소비) 활동은 압축성장의 과정 속에 대량생산과 소비를 위해 획일적으로 형성되었던 서울의 도시공간을 조금 더 풍요롭고 다양하게 바꾸고 있다.


이태원의 오래된 골목길에 나타난 변화는 또한 서울의 탈산업화와 관련이 있다. 서울의 산업구조는 제조업 분야에서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창조산업과 서비스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탈산업화 시대에 등장한 밀레니얼은 한강의 기적과 강남 개발의 신화를 경험한 그들의 부모세대인 베이비 부머와 뚜렷하게 구별된다. 밀레니얼은 자기 개성과 취향이 뚜렷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재를 살아간다. 그들은 대중적으로 지지를 받는 주류가 아닌 독특한 개성의 비주류에 열광하며, 강남 개발로 외면받던 강북의 낡고 좁은 골목길들을 개성 넘치는 공간으로 재창조시키고 있다. 그들은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기존 세대들과는 달리,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을 추구하며, 자신이 꿈꾸는 ‘내 스타일’의 사업에 도전한다.


이태원의 젠트리피케이션의 직접적인 행위자이자 선구적 젠트리파이어인 새로운 소상공인들도 탈산업화 시대의 새로운 계층이다. 이들은 대부분 이태원 지역의 장소성의 변화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 2010년대, 그들의 나이 30대 초중반에 제한된 경제적 자본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소규모의 사업을 시작하였다. 높은 교육 수준과 다양한 경력, 풍부한 해외 경험을 소유한 문화 자본가인 새로운 소상공인들은 기존이 소상공인들과 구별된 상업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장기간의 여행, 교환학생, 유학 등의 형태로 해외에 거주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현재도 자유롭게 해외를 오가며, 외국어를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엘리트 계층이다. 해외에 자신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외국인들과 소통하며, 사회적, 문화적 자본을 획득하는 계층이다. 새로운 소상공인들의 풍부한 해외 경험은 이들이 이태원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유와 연결된다. 이들은 이태원만이 갖고 있는 자유로움, 다양성, 포용성을 중요시한다. 이태원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나만의 스타일의 사업을 꾸려나갈 수 있는 자유로움을 허락한 장소이며, 이러한 자유로움에서 비롯된 독창적인 행위를 인정하는 소비자 계층이 존재하는 곳이다. 


경제적인 이익 혹은 성공이 가장 우선시 되는 기존의 세대들이나 기존의 소상공인들과는 달리 새로운 소상공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 있는 삶이다. 이들은 적정 정도의 수입을 올려 1년에 한두 번 정도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정도의 여유만 생기면 된다는 태도를 보인다. 새로운 소상공인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사업을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기존의 소상공인들과 차별화된다. 새로운 소상공인들은 또한 자신들의 상업적 활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소비를 함으로써 이들의 활동을 지속시키는 새로운 소비자들과의 사회적인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사회적인 네트워크의 형성과 유지 또한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 있는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태원 골목길의 변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독특하고 질 높은 상품을 생산하는 새로운 소상공인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품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소비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간접적인 행위자인 새로운 소비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태원의 새로운 소비자 계층은 새로운 소상공인 계층의 활동을 지속시키며, 이태원의 장소성을 변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이태원의 주요 소비자 계층은 20-30대로 대표되는 밀레니얼, 여성 직장인이다. 밀레니얼 여성들은 베이비부머나 X세대보다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으며, 취업률 또한 높다. 그리고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거나, 결혼을 했더라도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한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새로운 소비자 계층이 이태원의 핫플레이스들에 대한 정보를 디지털 네이티브답게 미디어나 SNS(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블로그와 같은 온라인에서 취득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사회적 네트워크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소비자 계층도 새로운 소상공인 계층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변화된 이태원을 소비하는 새로운 계층은 이태원의 변화를 이끄는 새로운 소상공인 계층과 유사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 이들은 모두 20-30대의 젊은 청년층으로 높은 교육 수준과 풍부한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적, 사회적 자본을 획득한 계층이다. 자신들이 해외에서 즐겼던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생활을 서울의 초국가적 장소인 이태원에 재현하려는 동기와 욕구를 지닌 우리 사회의 새로운 계층이다.


이들은 데이비드 레이(David Ley)가 ‘문화적 신계층(the cultural new class)’이라고 일컬은 서구사회의 젠트리파이어들과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다. 문화적 신계층은 기존의 사회통념이나 제도, 그리고 가치관을 부정하고 사회의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진보적이고 보헤미안적이며, 일반 중산계층과는 달리 쇠퇴한 구도심에서의 스타일이 있는 삶을 추구한다. 이들은 또한 상상력과 열정, 그리고 창조 자본을 토대로 한 창조계층으로 산업사회의 거점지역을 벗어나 탈산업사회에 그들만의 새로운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오늘날 이태원에서 발생하는 장소성의 변화는 삐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이야기한 문화자본과 사회관계자본을 소유함으로써 일반 대중들과 구별되는, 새로운 행위자들에 의한 장소에 대한 초국가적 실천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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