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지막으로 비키니를 입은 건 10년 전 신혼여행 때이다. 그 후로 출산과 육아로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마음의 여유는 더욱 없었고 모든 신경을 아이 키우는데 집중하느라 내 관리를 할 생각도 못 했다. 주로 아이를 따라다니기에 편한 옷만 찾다 보니 원피스도 안 입었고 점점 내 옷장에 옷들은 후줄근한 옷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팬데믹이 겹치며 무기력해지고 소심해진 나는 더워도 민소매나 반바지도 안 입었다. 내 몸에 대한 자신감은 점점 바닥을 치며 중년을 맞이하게 된다.
시댁이 캐나다라서 일 년에 한 번 여름이면 캐나다를 방문한다. 아이가 어릴 때는 주로 물가에서 놀아서 래시가드를 들고 가도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만 7세가 된 아이는 물놀이를 좋아하게 되었고 남편과 둘이 잘 논다. 이제 나도 슬슬 물에 들어가 놀아볼까 하고 무슨 용기가 났는지 아무 고민 없이 비키니를 사서 캐나다에 왔다. 그리고 드디어 입었다.
운동을 제대로 했을 리 없는 40대 중반의 내 몸. 출렁이는 살에 납작한 가슴으로 당당히 비키니를 입는다. 내가 왜 고민 없이 비키니를 사서 입기로 결심했는지는 비키니를 입고 물에 들어가 보고 알았다. 래시가드를 입고 물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의 그 질퍽함. 잘 마르지 않고 몸에 달라붙는 그 느낌이 좋지 않았다. 예전의 그 불편했던 기억은 본능적으로 이제 래시가드는 입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또 다른 이유는 캐나다에서 물놀이할 때마다 래시가드를 입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는 것이다. 비키니를 입었을 때의 실용성을 생각하면 아무도 안 입는 이유가 납득이 간다. 동양인이 잘 안 보이는 곳이라 몸매도 안 되는 중년의 동양인이 비키니를 입은 건 여기 사람들도 흔히 보는 모습은 아닐 테지만 정작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나보다 등치가 5배나 큰 여인들도 당연한 듯 비키니를 입기 때문이다. 내 몸을 신경 쓰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신경을 끄고 나니까 설명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낀다. 물론 캐나다라서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화창한 날씨, 아름다운 칼라말카 호숫가에서 중년의 아줌마는 비키니를 입고 10년 만에 자유를 만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