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렸을 때 별명중의 하나가 바야바였다. 바야바는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한국에서 방영되었던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인데 온몸이 긴 털로 덮여있다. 외모에 민감한 여자아이가 그런 별명을 가졌으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털이 많으면 미인이라는 엄마의 말에 그냥 참고 살다가 10대에서 20대에는 일회용 면도기로 열심히, 야무지게 면도하며 혐오스러운 털을 어떻게든 없애려고 노력했다. 엄마의 미의 기준에 의하면 나는 아주 특출 난 미인이고 세상의 기준으로는 괴물이다. 엄마의 말을 끝까지 믿고 싶었지만 밖으로는 티를 못 내고 속으로만 믿었다. 아쉽게도 세상이 추구하는 혹은 제모미용업계가 추구하는 미의 기준에 맞서 혼자 당당히 털보는 아름답다고 주장할 용기는 없었다.
그런데 결혼, 출산, 육아를 거쳐 나이가 들어가며 그 많던 털의 양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이젠 더 이상 팔과 다리는 제모를 하지 않아도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가 됐다. 털의 양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강박이 약해졌지만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다. 나이가 들면 체모의 양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라면 체모가 많은 것이 젊고 미인이라는 기준이 맞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인간은 미의 기준을 거꾸로 잡아서 스스로 강박에 빠지게 만들었다.
캐나다 호숫가에서 내가 앉은자리 바로 앞에 백인 여자가 제모를 하지 않은 채로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모습이 어색하거나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왜 저렇게 당당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이토록 어렸을 때부터 털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살아야만 했던 것일까. 제모의 역사를 검색해 보니 꽤나 오래되었긴 하지만 여성들(혹은 남성들) 스스로 그 기준을 바꿀 수 있는 것이고 그랬다면 나는 쓸데없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이유의 타깃을 남성들에게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제모의 시초부터 남녀가 함께 했다는 것과 수염을 계속 깎아야 하는 남성들의 불편함을 생각하면 완전히 남성들만의 탓은 아닐 것이다. 운명의 장난인지 나의 남편은 우주 최강 털보이다! 최강 바야바끼리 만났나 보다. 세상의 털보들에게 외치고 싶다. 있는 그대로가 아름답다고 그리고 웃기지만 슬프게도 나이 들면 털의 양은 저절로 줄어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