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술을 한 달에 한두 번 마실까 말까 할 정도로 별로 즐겨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왜 캐나다에만 가면 술꾼 아니 타락한 며느리가 되는 것일까. 굳이 핑계를 대자면 모처럼 맞은 휴가이기 때문이고 음식이 와인이나 맥주와 함께 먹기 좋은 음식들이며 시차 적응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계속해서 핑계를 대자면 캐나다 시댁 켈로나는 와이너리가 유명한 곳이다. 시댁에서 차로 5분 거리에 대형 버스로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큰 와이너리(썸머힐 와이너리)가 있다. 여름에 차를 타고 나가면 곳곳에 와이너리, 체리 농장, 사과 농장이 줄지어 보인다. 그야말로 농장이 많은 시골이다. 어찌 이런 곳에서 와인을 안 마실 수 있을까.
23년 2월의 썸머힐 와이너리
썸머힐 와이너리 내부에 있는 수족관에 문구가 인상적이다.
We cannot do great things in the world. We can only do small things with great love. 우리는 세상에서 위대한 일은 할 수 없다. 오직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만을 할 수 있다. -Mother Teresa
캐나다에는 맛있는 칩스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할라피뇨 맛의 감자칩은 저절로 맥주를 부른다. 식초와 소금맛 감자칩은 호불호가 크게 갈리긴 하지만 한국에 없는 맛이라 캐나다에 갈 때마다 사 먹는다. 사람이 음주를 즐기게 되는 데는 환경의 역할도 크다. 해 질 무렵 데크에 앉아서 노을을 보며 최애 감자칩과 함께 마시는 맥주는 꿀맛이다. 더워도 습하지 않은 켈로나의 날씨는 자꾸 나를 데크로 이끈다.
놀랍게도 나는 술도 청량음료도 한국에서는 거의 마시지 않는다. 도대체 한국에서 나는 무얼 마시나 생각해 보니 커피와 차, 그리고 물이 다다. 과일주스도 잘 안 마신다. 한국에서 전원생활을 하면 난 분명히 더 여러 가지 음료를 마시고 술꾼이 되었으리라. 나도 내가 이렇게 환경과 분위기에 휘둘리는 사람인지 몰랐는데 이번엔 확실히 느끼고 돌아왔다. 캐나다 드라이 진저에일은 캐나다에서 소화가 안될 때 마시라고 권하는 음료라고 한다. 한국의 활명수 역할을 한 모양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나도 모르게 소화제 같이 자주 마셨다. 나한테는 캐나다 드라이가 달고 맛있는 소화제다.(한국에도 판매 중)
시작은 미국에서 했으나 지금은 캐나다에 더 많은 패스트푸드 매장인 A&W의 루트 비어(Root Beer)는 딱 맥콜 맛이다. Root Beer는 맥주는 아니지만 시원한 맥주잔에 나온다. A&W의 햄버거 속 재료의 질은 굉장히 높은 편이다. 수제버거집에서 먹는 햄버거와 어니언링 못지않다. 여기에 루트 비어는 기가 막히게 찰떡이다.
이렇게 청량음료의 종류도 많고 햄버거와 칩스 거기다 와인에 맥주까지 살이 안 찔 수가 없는 환경이다. 한국에 오니 이 모든 게 그립지만 한국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한국의 답답한 아파트에서는 분위기 잡으며 여유롭게 먹고 마실 생각이 안 든다.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내 몸이 비대해지지 않고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마지막 핑계로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함께 와인을 드시는 시어머니의 표정이 참 행복해 보이신다. 단기 기억을 자꾸 잃어가시는 어머니는 매일 저녁 전에 와인을 권하신다. 하루 걸러 거절을 하지만 막판에는 그냥 매일 함께 마신다. 그저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제야 와이너리에서 보았던 테레사 수녀님의 명언이 이해가 간다. 나는 위대한 일은 할 수 없지만 위대한 사랑으로 순간순간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