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남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쓴다.' 캐나다를 오가며 느꼈던 부분이기도 했고 해외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느꼈을 것이다. '한국인은 유행에 민감하다.' 그런데 왜 나는 저런 특성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했을까.
너무 같은 유행을 따라서 개성이 없으니까? 솔직히 남의 시선 의식을 아예 안 하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이다. 유독 한국 사람들이 심하다고는 하는데 그런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작은 나라에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이라 사람들과 부대끼는 확률이 더 높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개성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 나도 남의 시선 의식하지만 옷은 취향껏 고른다. 다들 자기가 좋아하는 색상과 디자인으로 고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시선 의식한다고 개성이 없다는 건 편협한 생각이다. 오히려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에 민폐를 안 끼친다고 나는 생각한다. 보고 싶지 않은 신체 부위를 마주쳐야 하는 경우도 외국에서는 종종 있었으니 말이다.
나라마다 유행하는 스타일은 다 다르다. 그 나라의 날씨나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몇 년 전부터 어디서든 레깅스를 입고 다니는 여성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캐나다에서는 이제 아예 교복처럼 입고 다닌다. 시작은 요가복이었겠지만 점점 룰루레몬과 같은 편한 레깅스가 나오면서 일상복이 되어버린 셈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엉덩이가 민망하다며 레깅스를 입어도 웬만해선 뒤태를 가린다. 캐나다에서는 웬만해선 안 가린다. 보는 사람이 민망할 때가 더 많다.
이런 민망함에 대해서 그레이웨일디자인스 대표 이현상 씨가 적은 한 기사를 읽어 보았다. "첫째 시선과 관련해서 나는 ‘익숙함’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낯섦’과 ‘익숙함’의 간격은 의외로 그리 넓지 않다." 익숙함의 문제와 문화의 차이가 아닐까. 유교문화권의 여성이라는 '유교걸'이라는 말도 있듯이 문화 차이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나도 여전히 레깅스의 뒤태가 민망해 보일 때가 있지만 해외에 오래 있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겨울에 캐나다에 좀 오래 머물면서 생활해 본 결과 캐나다의 겨울은 길어도 너무 길다. 거기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은 짧다는 단점이 있다. 눈은 11월부터 시작해 4월까지도 쌓여있다. 눈이 녹았다 쌓였다를 반복하니 거리는 오랫동안 질퍽하다. 그래서 방수 부츠는 필수다. 매번 나갈 때마다 방수 부츠를 신으려면 딱 달라붙는 레깅스가 역시 편하다. 부츠 속으로 바지를 집어넣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조거 팬츠도 밑에 시보리(?)가 있어서 편하다. 그래서 나는 기모 조거 팬츠를 입었다. 그런데 현지인들은 운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역시 추워도 레깅스가 더 낫다. 실내로 들어가면 히팅 시스템으로 덥기 때문이다. 건강 때문에 운동을 한다지만 캐나다에 있어보니 운동을 안 하면 딱히 할 게 없다는데 놀랐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대부분 전원생활을 하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접근성이 떨어져 한국처럼 집 앞에 쫄랑쫄랑 나가서 뭘 사거나 배우는 소소한 즐거움이 없다. 한마디로 많이 적적하다. 특히 겨울이 더 심할 것이다. 익스트림스포츠를 즐기는 이유도 이런 환경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 겨울에 웃통을 벗고 조깅을 하는 사람도 봤다. 그렇게 운동을 안 할 수 없는 환경이니 자연스럽게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운동은 안 할 수 없는 환경에 살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떤 상황에서도 편해야 하니 레깅스는 그 조건에 적격이다. 이건 유행이 아니라 안 입을 수 없는 아이템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런데 요가를 하지 않아도 부츠컷 스타일의 레깅스를 계속 입고 다니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레깅스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요즘 필라테스를 등록해서 다니고 있는데도 레깅스 대신 조거팬츠를 입는다. 요즘 요가용 조거팬츠는 달라붙지 않으면서 레깅스를 넘어서는 편안함과 신축성이 있다. 조거팬츠도 한국에서 유행해서 입어보고 좋은 것을 알게 됐으니 이왕 유행 따르는 거 한국 유행 따르지 캐나다 유행 안 따르련다. 난 한국 사람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