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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Oct 19. 2024

천천히 쌓여가는 이야기들

 ‘단골’하면 떠오르는 여러 얼굴이 있다. 그 안에는 한 달 혹은 몇 달에 한 번 마주하는 분들도 있는데, 자주 보지 못해도 만나면 어떤 한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는 친구들처럼 얼굴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나는 손님들에게 단골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어제는 공간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처음 방문한 뒤로 이따금씩 오는 귀여운 자매 손님을 오랜만에 마주했다. 첫 만남의 기억이 좋아서인지 두 분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활짝 웃게 된다. 언니인 정은 님은 온라인 글쓰기를 오랫동안 함께하고 있고 동생인 온주 님은 어떤 날은 귀여운 그림으로 어떤 날은 사진과 영상으로 공간에 다녀간 마음을 전해 주셔서 내게는 고맙고 소중한, 가까운 기분이 드는 분들이다.

 두 분 모두 각각 다른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 함께 오기 더욱 쉽지 않을 텐데 이렇게 공간에 오신 날엔 뭐라도 드리고 싶어 자꾸만 서랍을 뒤적이거나 커피나 티를 권하게 된다. 그동안 오실 때마다 테이블 이용 손님이 있거나 책과 제품을 살피는 분들이 많아 금세 돌아가곤 했는데 어제는 마침 두 분만 있어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라는 말과 함께 테이블 이용을 권했다. 아마도 어제가 처음 내어드린 커피였을 것이다.

 두 분이 생각나는 독립출판 작가님의 책을 북카트에서 꺼내 건네드리고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드리고 나서 작업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작업을 했다. 시선은 모니터를 향해 있었지만 처음 테이블에 앉아 보내는 시간이 좋은 시간이 되길 바라면서 마음은 댕댕이처럼 곁에 머물렀다.  

 테이블 이용을 마치고 나가기 전 동생인 온주 님이 수줍게 엽서를 건네셨다. 조금 전 구매한 엽서북에서 한 장을 골라 내게 쓴 편지에는 테이블에 앉아 창밖의 풍경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든 생각과 내가 앉는 작업 테이블 아래에 생긴 의자 자국을 보며 성실의 흔적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매일 앉았다 일어났다 다시 자세를 고쳐 앉으며 보내는 내 자리. 멀리서 보면 의자를 끌며 생긴 하얀 스크래치가 가득한데 그 흔적을 보면서 성실함을 떠올려주신 것이다. 한 면 가득 빼곡하게 쓰인 편지를 읽으면서 마음이 뭉근해졌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마감 후 비워둔 테이블에 앉아 방명록을 천천히 넘겨 보던 날이 생각난다. 한 권이었던 방명록이 어느새 세 권이 되었고 이제는 마지막 몇 페이지만 남겨두고 있다. 가까이 그리고 멀리에서 찾아 주시는 분들이 남긴 방명록에는 일상의 고민이 담겨 있을 때도 있고 힘든 한 시절을 건너고 있다는 고백이 담겨 있을 때도 있다. 때로는 비워둔 테이블에 앉게 될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쓰여 있기도 하다.

 천천히 쌓여가는 이야기들. 문을 열고 들어오면 그 자리에서 항상 웃으며 반겨주실 것 같다는 편지 속 글처럼 내가 있는 자리에서 언제나처럼 웃으며 반기겠다고 다짐하며 다이어리 포켓에 엽서를 끼웠다.


(2024. 9)

”제가 앉은 곳에서 바라본 사장님 자리에는 바닥 코팅이 벗겨진 의자 자국이 보였어요. 무언가 사장님의 성실이 느껴지는 흔적을 찾은 느낌이었습니다. - 오케이 슬로울리 취향에 취한 단골자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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