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재 시인의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북토크를 무사히 마쳤다. 북토크 제안 메일을 보내고 진행이 확정된 후부터 머릿속 방 한편에는 늘 시인님이 계셨다. 시인님의 시집과 산문집을 여러 번 재독하고 시인님이 하셨던 인터뷰 기사를 모두 찾아 읽으며 질문을 꼽았다. 북토크 당일 책장에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 그동안 인터뷰에서 언급한 적 있는 작가의 책들을 진열하고 논센소 작가님과 시인님께 드릴 디저트와 북토크에 오시는 분들을 위한 웰컴 디저트를 준비했다.
월요일부터 내내 먹은 것 없이 배가 아프고 목요일에는 북토크를 망치는 꿈까지 꾸었는데 모두 오늘의 보람과 후련함을 느끼기 위한 과정인 거였다. 시와 문장을 대하는 시인님의 정한 마음을 알기에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시인님과 공간을 채워주신 분들의 선한 마음에 기대었다. 두 시간의 북토크를 마치고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모든 걱정이 먼지처럼 가벼워졌다. 저녁을 먹고 정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밤 10시. 하루 종일 바쁘고 긴장한 하루였는데 여운이 가시지 않아 시 낭독 영상을 보고 또 보다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잠들었다.
다음 날 논센소 작가님의 배우자이자 3D 영상 디렉터인 메타포 아일랜드의 경환 님이 1시간 57분 분량의 북토크 전체 영상을 보내 주셨다. 30분 단위로 분할 촬영된 영상을 연결하고 녹음된 소리와 영상의 싱크를 맞춰 보내주신 것이다. 4K 고화질 영상으로 촬영해 용량만 해도 8GB가 넘어 다운로드하는데도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북토크 시작 전 가까운 분께 스케치 촬영을 부탁하는 모습을 보고 대신 촬영해 주시겠다고 한 경환 님과 영상 촬영을 흔쾌히 허락해 주신 시인님 덕분에 특별하고도 소중한 순간을 영상으로 남길 수 있었다.
다음 날 오후 한밭수목원을 산책하고 돌아와 북토크 영상을 복기했다. 진행에 부족한 부분은 없었는지, 작가님의 이야기 중 놓친 부분은 없었는지 살피기 위해서였는데 영상을 모두 보고 나니 함께한 14명만 이날의 기억을 간직하는 게 너무 아쉬울 만큼 모든 것이 좋았다. 할 수 있다면 “여러분, 삶에서 간직해야 할 소중한 이야기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널리 알리고 싶었다.
그날 저녁 시인님과 북토크에 참여하셨던 분들께 영상을 공유하기 위해 유튜브에 일부 공개로 영상을 업데이트했다. 워낙 용량이 커 4K 화질로 변환되는데만 6시간 이상 걸렸다. 다음 날 아침 시인님에게 영상과 사진을 전달하며 영상을 전체 공개해도 괜찮을지 문의드렸는데 가족들과도 함께 보고 싶다며 전체 공개해도 좋다는 회신을 보내 주셨다.
돌아보면 모든 게 기적이고 선물 같은 순간이었다. 논센소 작가님께 전시 제안을 하고 그것이 성사된 것, 전시를 준비하며 시가 떠올라 용기 내 북토크 제안 메일을 보내고 시처럼 아름다운 답장을 받은 것, 작품과 시가 연결된 시간이 마련된 것, 논센소 작가님이 북토크에 독자로 자리해 주신 것, 북토크에서 작품에 대한 시인의 감상과 작가의 의도를 함께 들을 수 있었던 것, 미리 전달해 드린 질문지를 살피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준비해 오신 시인님의 정성과 함께해 주신 분들의 선한 마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열심과 최선을 다한 결과가 열매가 되어 돌아온 특별하고도 소중한 순간이었다. 진심이 밖으로 흘러넘쳐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서 “직업 만족도 최상!”이라고 외쳤다.
섬덕섬덕하고 무궁 무해한 시인님을 공간에 모실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이제는 6월에 있을 그림책 원화전과 북토크 준비, 1주년 기념 드립백 제작과 7월 전시 섭외, 온라인 글쓰기와 함께하는 사진전 모집, 도서관 정기 도서 납품과 외주 작업 등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다시 내게 주어진 일들을 하며 어느 날의 반짝이는 하루를 위해 성실하게 일상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2024. 5)
“세상을 다 태워도 꿈은 타지 않는다 (..)
너는 불이니 꽃이니 죽고 싶을 때마다 끝 모를 숲을 홀로 걸었다 너는 숲이다 낮인데 밤이다 물불과 술이다 서슴지 않고 어디서든 자유를 찾는 것 사람들은 그것을 리듬이라고 한다 빛을 먹고 푸르게 타는 걸 식물이라고
- 고명재 「아름과 다름을 쓰다」『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