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에 공간을 열고 가을과 겨울, 봄을 지나 1년을 맞았다. 1주년을 앞두고 핸드폰에 저장된 그동안 찍은 필름 사진을 천천히 넘겨 보았다. 철거와 바닥 시공, 전기 설비와 어닝 설치, 페인팅과 시트지 부착 등 공간을 준비하면서 필름 카메라로 담은 여러 장면과 1년이 지난 지금을 나란히 펼쳐 보니 많은 감정이 든다.
공간이 생기면 어떨지 고민하던 때부터 계약 후 공간을 열기까지 모든 순간마다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어떻게 공간을 구성할지 머릿속 생각들을 종알종알 얘기할 때마다 지루해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친구들, 오픈 전 날 미리 찾아 주었던 가까운 지인, 응원하는 마음으로 드립 포트를 선물해 주신 은진 대표님, 공간에 대한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슬기 씨, 양말 펀딩을 응원하기 위해 소장하고 있는 운동화를 가득 챙겨 와 기꺼이 모델이 되어 주었던 서영 대표님, 오픈 첫 주에 공간을 찾아 응원해 주셨던 분들까지 감사한 얼굴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통창 앞에 놓인 작업 테이블에 앉아 일을 하다 창 너머로 시선을 옮기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잎들이 보인다. 초여름에 문을 열어 맞은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가을이 되면서 감나무라는 걸 알았다. 이 자리에 앉아 감이 열리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비 오는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첫눈을 보기도 했다.
오픈 준비를 마치고 앉아 창밖을 보고 있으니 지나온 계절처럼 1년 동안 찾아주신 분들의 얼굴이 생각난다. 연차 혹은 반차를 내고, 여행으로, 타지에서 첫차를 타고 이곳에 와 비워둔 테이블을 채워 주셨던 분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분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마주하게 되는 분들까지. 가까이 그리고 멀리에서 일부러 찾아와 주시는 마음이 감사한 1년이었다.
처음 오픈 소식을 알릴 때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처음부터 완전할 수 없기에 공간의 빈 여백은 공간을 찾아 주시는 분들의 마음을 담아 천천히 채워가겠다’고. 출근과 퇴근, 오픈과 마감이라는 말이 익숙해지고 1년 동안 공간을 운영할 수 있었던 데는 빈 여백을 채워준 분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귀여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오래오래 있어 달라는 말, 1주년이 100주년으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말, 편안함과 위로, 용기를 주어 고맙다는 말들이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앞으로도 좋아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02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