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여성 목수가 일하는 목공방 ‘카밍그라운드’를 처음 알게 된 건 2022년이었다. 핸드드립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드립 용품을 알아보던 중 커피 스탠드와 필터 스탠드를 발견했고 작은 제품 하나에도 정성이 담긴 것이 좋았다. 집에는 이미 큰 가구가 있어 컵 선반 등 작은 제품을 구매하면서 ‘언젠가 공간이 생기면’ 하고 마음속으로 카밍그라운드의 가구들을 공간에 두는 상상을 했다.
지난해 공간을 준비하면서 책장을 구상했다. 칸의 옆 폭과 높이, 너비, 열과 행의 개수 등을 고민하면서 스케치하고 카밍그라운드에 제작을 의뢰했다. 내가 스케치한 책장은 일반 단행본부터 큰 판형의 아트북까지 사선으로 꽂을 수 있게 칸마다 폭이 좁고 긴 형태였다. 한 열에 12권씩 책장 하나를 다 채우면 한 면에 60권의 책을 꽂을 수 있고, 가벽 기능을 하면서도 답답해 보이지 않게 앞뒤가 모두 뚫려 있기를 바랐다.
벽에 붙이지 않고 공간을 분리하는 역할을 해야 해 안정감 있게 서 있으려면 옆 폭이 넓어야 했는데, 내가 원하는 만큼 옆 폭을 늘리면 목재 손실이 커 어쩌면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카밍그라운드에서 목재로 할 수 있는 최대 폭으로 제작해 주셨다.
2023년 5월 31일. 공간 오픈을 일주일 앞두고 하얀 트럭에 실린 책장이 도착했다. 정성 들여 만든 가구를 고객에게 직접 배송하는 카밍그라운드의 배송 정책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세 명의 목수분이 책장을 내리기 전 준비 운동을 하고 서로의 위치에서 합을 맞춰 책장을 옮기고 위치를 잡아 주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벅찼다. 스토리로 조금씩 작업 과정을 보았지만 짜맞춤 형식으로 제작한 책장은 내가 스케치하고 상상했던 모습보다 훨씬 아름답고 견고했다.
빈 액자와 빈 선반, 작업 테이블만 덩그러니 놓인 공간에 책장이 자리하니 무언가 완성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배송을 마치고 하천이 내려다보이는 근처 카페에서 잠시 숨을 고르실 동안 아트북들을 칸칸이 꽂았다. 이 공간에서 책장이 어떤 모습으로 있게 될지 조금이나마 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공간에는 카밍그라운드의 손길이 담긴 책장과 포스터랙, 비워둔 테이블과 북카트가 있다. 비워둔 테이블과 북카트는 기존 디자인에서 컬러를 변경하거나 책상 서랍 칸막이를 없애는 약간의 변경이 있는데, 이 또한 흔쾌히 작업해 주셨다.
1년 동안 매일 마주한 풍경 속에 책장이 있다. 박수인, 지유진 목수의 『나무 사이』 출간이 반가웠던 것도, 책이 도착하자마자 내 것으로 한 권 빼두고 한달음에 펼친 것도 1년 동안 책장과 함께하면서 더욱 커진 마음 때문이었다. 톱니바퀴처럼 자연스럽게 맞물려 이어지는 두 목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처음 카밍그라운드를 알게 됐던 순간, 가구에서 마음을 느꼈던 순간, 1년 동안 공간을 꾸려 오면서 느낀 감정들이 나란히 떠올랐다.
일을 하며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새로운 일을 고민하고 있다면, 내 일을 잘 꾸려가고 싶다면 『나무 사이』가 다정하게 말 걸어 줄 것이다. 계속하는 마음, 애쓰는 마음에 대한 공감과 위로를 내가 받은 것처럼 말이다.
“다듬어진 목재가 모양을 잡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주 거친 목재에서 차츰 다듬어지며 형체를 갖추기까지 수많은 과정이 존재한다. 그 점이 좋았다. 단계마다 어떤 마음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가구는 다른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서툴지만 계속하다 보면 가구의 만듦새는 더 근사해졌다. 일도 가구 만들기와 같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선 방법이 없다. 그냥 계속하는 수밖에. p.27”
“결국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중심을 잡는 것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현실 속에서 그것이 지켜지기가 쉽지 않다. (..) 내가 선택했고, 하고 있는 방법들이 옳다고 믿고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p.226”
(202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