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쓰게 될 것』
“비관을 끌어안고 희망으로 나아가면 좋겠어요. (..) “세상은 다 망했어”라고 말하는 대신 “망하도록 두지는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으면 좋겠어요. 희망합시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쓴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최진영 작가의 『쓰게 될 것』을 읽었다. 「쓰게 될 것」으로 시작해 「홈 스위트 홈」으로 끝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한 소설을 하나로 묶게 한 주제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쓰게 될 것』에는 소유정 문학평론가의 해설과 임지은 에세이스트와의 인터뷰, 작가의 말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과 해설, 인터뷰와 작가의 말을 모두 읽고 나면 ‘비관을 끌어안고 희망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비관을 낙관으로 치환해 버리거나 처음부터 없었던 일인 듯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비관을 간직한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고 싶은 마음, 밝은 쪽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을 느끼게 된다. 『단 한 사람』과 『이제야 언니에게』 『구의 증명』 『일주일』이 그랬듯 말이다.
소설집에 수록된 인터뷰를 읽으면서 좋은 소설과 좋은 질문에 대해, 소설가의 윤리의식에 대해 생각했다. 작가는 단편집에 실린 소설이 어떤 기사, 어떤 책, 어떤 사건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밝히고 있다. 그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더라도 어디에서 씨앗이 발아된 것인지 분명히 해 두고 싶은 작가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전시 포스터 디자인을 하면서 참고한 레이아웃이 있다. 결과물을 비교하면 전혀 다른 디자인이지만 해당 포스터를 디자인한 디자이너에게 포스터 시안과 함께 레이아웃의 유사성이 있는지 살펴봐 달라는 내용을 보냈다. 포스터 시안을 확인한 디자이너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문의를 보내지 않고 바로 시안을 확정 지어도 될 일을 문의하게 된 데는 텍스트를 배치하는 데 있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작가가 헤어진 연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소설의 소재로 사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책은 현재 판매가 중지되었고 독자들은 작가의 명명한 사과와 출판사의 후속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글이 문제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것을 쓸 것인지, 쓰지 않을 것인지를 판단할 때 작가의 낮은 윤리의식이 그것을 쓰게 했을 것이다.
“저는 겪은 일을 쓰기보다는 겪은 감정을 쓰는 편이에요. 인물과 사건은 완전히 가공하고 감정을 소설에 담는 거죠.” 이야기의 코어가 되는 인물의 감정만을 남겨 둔 채 많은 것을 버리고 벼리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는 최진영 작가가 소설을 쓸 때 항상 고민하는 주제라고 한다. 쓰게 될 것은 이미 쓴 것이기에 새롭게 태어나는 쓰고 싶은 마음을 안고 계속 쓰겠다고 다짐하는 최진영 작가가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인물과 사건으로 말을 걸어올지 기다려진다.
“탄생과 죽음은 누구나 겪는 일. 누구나 겪는다는 결과만으로 그 과정까지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 이제 나는 다른 것을 바라보며 살 것이다. 폭우의 빗방울 하나. 폭설의 눈송이 하나. 해변의 모래알 하나. 그 하나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홈 스위트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