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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May 13. 2022

시간의 점

5개월 만에 친정에 왔다. “가서 술잔 좀 꺼내와라.” 남편이 사 온 장어에 곁들일 복분자주를 마시기 위해 잔을 꺼내러 찬장을 열었다가 컵 사이에 있는 청자 다기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 이거 뭐야?” “이거 엄마 학교 다닐 때 할아버지가 일본 여행 가서 사오신 건데, 너 가질래?” “정말? 내가 가져도 돼?” “그럼, 엄마는 쓰지도 않는데. 가져가. 괜찮아.”


작년 1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아이의 겨울 방학 날 오래간만에 대전에 눈이 소복이 쌓여 첫째를 데리고 아파트 옆 공원에서 눈썰매를 타다 엄마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달뜬 아이의 표정과 달리 엄마의 안색이 어두웠다. 무슨 일 있냐고 물으니 엄마는 할아버지가 간밤에 중환자실에 가셨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할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장례조차 조심스럽게 진행하던 때였다. 엄마는 멀리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게 영 마음에 걸린다며 오지 말라고 하셨다. 대전에서 강원도까지 오려면 한참인 데다 오더라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남편이 회사에 얘기하고 휴가 받았어. 갈게, 엄마.” 장례식에 참석했지만, 아이들이 있어 오래 머물지는 못하고 금방 일어나 엄마 집에 갔다. 친정에 올 때마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받아먹기만 하느라 부엌 찬장과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감이 안 와서 그날 저녁은 짜장면을 시켜 먹고 다음 날 아침 일찍 화장터에 갔다. 창문 하나를 두고 할아버지의 관과 남은 가족들이 마주 섰다. 화장터에 들어가는 관을 향해 엄마는 “아버지. 아버지.” 하며 계속 울었다. 이모는 어서 나오라고, 안에 들어가면 뜨거우니까 얼른 나와서 살던 집 마당도 한 바퀴 돌아보고 가라고 소리쳤다. 다리 아프니 천천히 걸어가라고 하면서. 할아버지의 유골함은 봉안당의 조금 높은 층에 안치될 예정이었다. 이모는 아버지가 다리가 아프신데 너무 위에 계신 것 같다고 관계자에게 위치를 옮길 수 없냐고 물었다. 그런 이모를 바라보면서 부모의 죽음은 돌아가신 부모님이 편안할 수만 있다면 어떤 믿음과 상관없이 무엇이든 믿게 되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있고 얼마 뒤 꿈에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말쑥한 정장 차림을 하신 할아버지와 나는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누워 계셨던 방에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손가락을 또 다쳤네. 이제 갈 때가 됐나 봐.” 할아버지는 동그란 멍 자국이 난 손가락을 만지며 가벼운 농담을 하셨고 나는 그 말이 농담인 것을 알고 엷게 웃었다. 잠에서 깨고 나서야 내가 본 장면이 꿈인 걸 알았다. 손가락을 만지시던 할아버지의 잔상이 잠에서 깬 후에도 오래 맴돌았다. 꿈에서 본 장면을 천천히 복기한 후 엄마와 막내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막내 이모는 내 이야기를 듣고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지면서 손가락을 다치신 적이 있다고 했다. 병원에 몇 번 갔는데도 회복되지 않아 안 그래도 신경이 쓰였던 상처였다. 엄마와 이모는 할아버지가 다치셨던 일을 한 번도 내게 말한 적이 없는데 실제 난 상처와 똑같은 상처를 보았다는 내 얘기를 듣고 놀라워했다. “다음에 갈 때 밴드 하나 붙여 드리고 오면 좋을 것 같아.” 엄마와 이모는 며칠 뒤 봉안당을 찾아 할아버지 유골함이 놓인 자리에 밴드를 붙이고 왔다. 엄마는 꿈에서 할아버지가 어떤 차림이었는지, 표정은 편안해 보이셨는지 그 후로도 여러 번 내게 물었다. 할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긴 시계를 돌아가신 후 매일 끌어안고 잤는데도 꿈에 한 번도 나오시지 않아 그리웠는데 표정이 좋아 보이셨다니 다행이라고 하면서 같은 질문과 같은 안도를 되풀이하셨다.


“할아버지가 젊으셨을 때 여행 많이 다니셨지. 이것도 일본에서 사 오셨고 이것도 일본에서 사 오신 거야. 다 가져가도 돼.” “가져가다가 혹시 깨지면 어떻게 해.”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엄마는 옷장 구석에서 신문지를 꺼내 다관과 숙우, 찻잔을 한 겹 한 겹 정성껏 싸서 박스에 담았다.

다음 날 오랜만에 친정에 온 나를 보러 방문한 이모에게 어제 찬장에서 다기를 발견해 가져 가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어머, 언니는 어떻게 그걸 여태 갖고 있었어? 하긴 나도 아빠가 예전에 진주인가 옥인가, 그 펜던트 있잖아. 목걸이에 끼우라고 사다 주신 거. 스무 살 때 줘서 그때는 촌스러워서 못 하고 나이 들면 하려고 갖고 있었는데 그때 산불 났을 때 다 타서 없어졌잖아.” 이모의 말에 엄마도 오래전 받은 펜던트가 생각났는지 깜짝 놀라셨다. “그게 아빠가 준 거였어? 난 그게 어디서 났지 했는데 맞다 아빠가 준거였네.” “아빠가 그때 새언니 거도 사 오면서 우리 것보다 좋은 거 샀다고 가격까지 말씀하셨잖아.” “맞아, 그랬지.”


흘려보내는 시간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 점처럼 마침표를 찍고 멈춰 있는 장면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순간들을 ‘시간의 점’이라 부른다. 엄마와 이모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지금, 이 순간이 내게는 시간의 점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랑 이모와 함께 있을 때면 엄마와 이모의 어릴 때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할아버지가 벽돌 공장을 하셨을 때, 어떤 과일이 먹고 싶다고 하면 그 과일만 한 달 내내 사 오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 너무 먹어 질릴 때까지 사 오셨다는 이야기. 5남매 중 제일 맏이였던 엄마와 딸 중 막내였던 이모를 가장 예뻐하셨다는 할아버지와의 일화를 들을 때면 나도 그 시절에 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슴슴한 맛에 자꾸만 집어 먹게 되는 엄마가 싸주는 김밥처럼 몇 번이나 들어도 질리지 않아 계속 귀를 열게 되는 이야기가 엄마와 이모의 입에서 퐁퐁 새어 나온다. 엄마와 이모의 이야기를 받아먹으면서 사랑하고 사랑했던 기억들이 이야기로 남아 이어진다면 이별 이후의 삶이 슬프지만은 않다고. 지금처럼 남아 있는 사람들을 웃게 하고 안아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가 중학생일 때 할아버지가 일본 여행 갔다가 사 오셨다는 청자 다기는 이제 내 차지가 되었다. 몇 번이고 이사하면서도 차를 마시지 않으면서도 챙겨 다녔던 할아버지의 선물. 중학생 때 받은 선물을 40년이 넘게 흐른 시간 동안 간직해 온 엄마의 추억을 한 겹 한 겹 싸서 대전에 가지고 왔다. 선물 받은 물건을 아이들이 만질라치면 안된다고 말하기 바쁜 나와는 다르게 소중한 물건을 딸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엄마의 무한한 사랑을 나도 언젠가는 닮게 될까. 친정에서 돌아온 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천천히 거실에 나왔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미리 설거지해둔 다관에 쑥 찻잎을 넣고 물을 따랐다. 알맞게 식은 쑥차를 찻잔에 따라 천천히 마시면서 내가 모르는 엄마와 할아버지 사이의 시간의 점들을 상상했다. 거실 등만 붉게 켜진 조용한 밤. 청자의 갈라진 표면들이 파도의 부서짐 같기도 하고 가늘게 눈을 뜨고 바라봐야 하는 눈부신 윤슬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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