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머무른 순간들] 01. 여는 글
사진은 예술일까요. 모든 건 이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됐지만, 조금은 엉뚱한 곳에 도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이 연재를 기획할 때는 ‘사진예술의 이해’라는 제목을 붙이려 했습니다. 스무 살 때 들었던 같은 제목의 교양수업이 참 좋아서였는데, 이내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너무 거창한 제목이기도 하거니와, 예술로서의 사진을 해설하는 글은 제가 쓸 수 없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떠오른 제목은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사진작가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은 이 단어를 통해 사진이 가진 가장 중요한 특성을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카메라로 기록하지 않았다면 속절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찰나의 순간. 그러나 카메라가 있기에, 우연과 시간을 초월해 사로잡을 수 있는 그 순간. 조금은 진부한 선택일지 모르지만, 분명 사진에 대한 글을 쓰기에 나쁜 제목은 아니었겠지요. 결정적 순간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해주는 그의 말을 함께 옮길 수도 있었을 겁니다. "나는 거기에 있었고 또 그 순간에 삶이 나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어떤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제목도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웠습니다.
다만 이 지면에서 함께 찾아내고 또 나누고 싶은 것들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입니다. 우리에게 사진은 예술이기에 앞서 삶의 한 방식이자 유용한 도구입니다. 영어에는 ‘코닥 모먼트’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코닥이 필요한 순간, 카메라로 기록해둘 만한 기분 좋은 순간을 뜻하는 말이지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길목을 만나면 사진은 어김없이 그 시간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포착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주는 것입니다.
제 마음을 움직인 사진들도 그런 사진들이었습니다. 예술인가 아닌가, 작가인가 아닌가를 떠나 세상과 사람, 삶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사진들. 그 사려깊은 시선들은 우리의 삶에 사진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다시 작동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이론과 학문, 분석과 비평의 언어 아래서가 아니라 일상의 가운데 존재하는, '코닥 모먼트'로서의 사진에 대해 말입니다.
몇 해 전 작고한 이론가이자 작가 존 버거는 삶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지요. "뭣 때문에 예술을 논하겠는가? 따뜻한 금빛 머리카락을 드리운 사람과 어깨를 맞대고 사는 대신 푸생을 선택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는 여기에 이렇게 덧붙입니다. "제아무리 푸생이라도.” 푸생, 모차르트, 히치콕… 앞에서 언급한 브레송까지. 제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들을 우리 눈 앞에 데려온다고 한들, 그것을 위해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의 순간들을 포기하는 이는 아마 드물 것입니다. 아무리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 아름다운 풍경과 얼굴과 정서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맞이하는 것보다 중요하지는 않을 테지요. 삶도 예술도, 예술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작품은 그것이 가진 형식의 완결성이나 작품성, 주제가 아니라 그것과 함께한 시공간의 정서로 기억됩니다. 졸업식이나 결혼식, 여행의 순간에 카메라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는 삶의 여러 장면들마다 몇몇 작품들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대다수의 관객에게 한 편의 영화는, 누구와 언제 어느 극장에서 보았는지에 대한 기억으로 남지 않나요. 어느 겨울밤, 종로 피카디리 극장에서 그 사람과 함께 영화를 보았던 기억은, 그 영화의 롱테이크 연출이 얼마나 근사했는지보다 더 오래, 또 짙게 남곤 하지 않나요.
그렇기에 한 장의 사진이 불러 일으키는 감흥이란, 그 이미지로 인해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에 재생 버튼을 누르면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풍경과 그림자, 색채와 구도, 움직임 속에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한 자락의 대화로 때로는 표정으로 때로는 빛으로 이루어진 그 기억들이 다 지나가고 나면, 그 마음들은 익명의 댓글로 담벼락의 낙서로 꾸다 만 꿈으로 남겠지요. 그건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우리의 모습과 퍽 닮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진은 예술인가 아닌가. 이런 질문에 저는 만족스러운 대답을 내놓을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사진은 무언가를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깊이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카메라를 드는 것만으로, 어떤 전시에 가거나 책장 속의 앨범을 꺼내보는 것만으로, 다시 말해 사진이 있다는 것만으로 어떤 순간을 그 자체로 아름답고 특별하게 만들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이나마 그 순간에 '머무를 수 있게' 해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사진가들은 이렇게 덧없고 더없는 삶의 속성이 안타까워 카메라를 든 것은 아니었을까요. 일말의 미련도 없이 흘러가버리는 그 모든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아 곁에 두고 싶은 마음으로 셔터를 누른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얻어진 사진들에 혹여나 우리가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우리 삶이 이미 그런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는 까닭이겠지요. 멋진 풍경을 보았을 때, 황홀할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으레 감탄사로 ‘예술이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그런 순간들에 대해 쓰고 또 그리고 싶습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제아무리 푸생이라도 견줄 수 없을, 우리가 머물렀고 또 머무르게 될 그 '코닥 모먼트’들에 대해.
진군
@jjinkuunn
ljhspp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