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머무른 순간들] 04. 니키 리, <Parts>
*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에서 빌려 온 제목입니다.
한 연인의 사진들이 있습니다. 사실, '한 연인'은 아닙니다. 한 여자를 중심으로 연애의 대상은 사진마다 계속 달라집니다. 다양한 연인들과 함께하고 있는 사진 속 여인은 비밀스럽게 사랑을 속삭이거나, 섹스가 끝난 뒤의 권태를 잊으려 담배를 태우거나, 서로를 꼭 껴안은 채 행복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기도 합니다. 행복과 낭만부터 권태와 위기까지, 사랑의 여러 얼굴들을 담은 스냅 사진들입니다. 여인의 다채로운 표정과 자세, 사진 속 시공간이 주는 그만의 분위기가 눈에 띄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사진첩 속 흔한 사진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결혼식의 현장이나 여행지에서의 기념사진을 보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곤 하지요.
다만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사진 속 남자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진의 구도와 배경으로 보아 촬영 이후에 의도적으로 편집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원본의 사진을 새롭게 크롭하고 리-프레이밍한 것이지요. '크롭'이 판형이나 필요에 의해 사진을 잘라 내는 것을 의미한다면, '리-프레이밍'은 한 번 촬영된 사진에서 새로운 구도와 시선을 찾아내어 재창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잘라 내는 행위(크롭)와 그로 인해 생겨나게 된 결과(리-프레이밍)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눈치가 빠르거나 작품을 미리 접한 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사진 속 여자는 바로 작가인 니키 리 본인입니다. 그녀는 영화의 스틸컷처럼, 혹은 흔한 연인처럼 천연덕스럽게 사진 속에 존재합니다. 사진의 주인공도 사진을 잘라 낸 장본인도 그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신기한 것은, 사진이 한 번 잘려 나가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바깥에 있는 것들을 상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진 속에서 제외시키는 것만으로 우리의 집중은 사라진 그 자리를 향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누가, 왜, 사진에서 그를 잘라 낸 것일까. 부재가 존재를 증명하는 아이러니로부터 이 사진들은 출발합니다. 작가는 그 모든 연애의 대상들을 과감하게 잘라 냄으로써, 우리에게 원본의 이미지를, 더 나아가 사진이 찍히던 순간의 현장에 대해 추측해 보게 합니다. 보는 이들마다 다양한 추측이 오고 가겠지만, 그러한 상상이 지나간 뒤에 우리는 다소 엉뚱한 곳에 도착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원본의 사진이 담고 있던 정서를 그려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확장되는 것이지요. 요컨대 사랑과 연애의 본질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에게 연애는 항상 절반의 경험입니다. 그 사실은 우리를 종종 절망하게도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다시 배우게 되는 건 보통 그 관계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이쪽과 저쪽이 바라보는 것이 언제나 같을 수는 없음을 느꼈을 때, 그리하여 이 관계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았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 연인들은 헤어진 것일까요?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해 보는 것이 일반적이겠지요. 그렇다면 이 재구성은 분노와 회한에 의한 것이었을까요? (나는 너를 지웠어.) 혹은 지난했던 연애의 경험에서 벗어나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려는 노력이었을까요? (너와 사귀던 동안에도 나는 온전하게 나로 존재했어.) 작가는 헤어진 연인에 대한 우울한 감상은 작품의 의도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이 연작들을 보며 각자의 연애를 떠올려 보지 않기란 어려워 보입니다. 더러는 그 기억들이 작품의 감상을 방해할 수도 있겠지요.
이 작업을 연애와 사랑에 한정 지어 해석하는 것은 작가가 바라던 바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에 대해, 혹은 작품의 의미에 대해 해석하고 비평하는 것은 제게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니키 리'라는 예술가의 작업이 아니라 그저 이미지에 대해, 그 이미지가 제게 가져다준 생각들에 대해서라면 무언가를 써 보고 싶다고, 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진들을 보며 마음 한쪽이 아리거나 왠지 슬퍼지는 기분을 느낀다면 우리에게도 비슷한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번의 연애는 우리에게 수많은 사진을 남깁니다. 연애가 끝난 뒤에도 사진은 남아 있어서, 누군가는 단호한 마음을 먹고 폴더에서 삭제하거나, 조금 물렁한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 두겠지요. 애써 마음먹고 그것들을 지우려다가도 자주 멈칫하게 되고, 그 사진 속에 박제된 행복과 환희의 축제를 씁쓸한 마음으로 넘겨 보게 되기도 할 것입니다. 뜨겁고 지리멸렬했던 연애의 기록들이 사무쳐 그것을 내다 버리거나 불태우겠다고 결심하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또 이 사진들은 말합니다. 사랑은 얼굴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고. 한 번의 사랑은 그 사람의 상처와 흉터, 몸에 난 점과 습관, 동네와 취미, 지인 따위와 함께 찾아왔다가 한꺼번에 떠나는 것이라고. 사진을 자르든 불태우든 그것은 각자의 자유겠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 기억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그러니 이 사진들을 보며 저는 멋대로 상상해 보게 됩니다. 그녀도 연애가 끝난 뒤의 그 모든 감정들을 다 겪어 낸 거라고. 그래서 사진들을 모두 지우는 대신에, 연애의 절반만 지우는 쪽을 택했다고. 결국 그 연애의 절반은 나였으므로 -그 전부를 부정하고 삭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했고 그를 사랑했던 절반의 자신을 남겨 두기로 했다고. 그렇게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사진의 일부만을 잘라 낸 것이라고. 어쩌면 크롭을 통해 재구성되는 것은 사진 한 장일 뿐만 아니라 그 기억을 받아들이는 방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사랑이 끝난다고 세상이 끝장나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언제든 다시 행복해질 수 있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존재라고. 그녀의 작업은 한 연애를 스스로 다시 마무리하고 기억을 자기화하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까요. 긴 여행이 끝나고 방에 돌아오면 짐을 정리하고 일상의 시계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하듯이, 남겨 두었던 절반의 자신을 되찾아 새롭게 매만지는 시간이, 그런 작업이 우리에게는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라고 한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사진이 담고 있는 것은 그저 한철일 뿐, 전부를 쥐여 주고 싶던 한쪽의 손도, 그 전부를 쥐고 있던 다른 쪽의 손도 언젠가 새로운 손을 만지고 새로운 눈을 바라보고 있을 테지만, 그러니 이제 그 사진들엔 남은 사랑일랑 찾아볼 수 없지만, 분명 그것들은 사랑 사진이라고 부를만 할 것입니다. 사진들을 자르며 그 기억을 꼭꼭 씹어 삼키다 보면 언젠가는, 새로운 사랑과 함께 새로운 앨범을 만들게 되기도 하겠지요. 그 앨범만큼은 부디 오래오래 책장의 맨 위 자리를 차지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 박준, 마음 한철
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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