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머무른 순간들] 03. 에두아르 부바, <뒷모습>
혹시 지하철 플랫폼에서 헤어지는 연인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영영 이별하는 것 말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잠시 헤어지는 모습 말입니다. 기다리던 열차가 역으로 도착하면 그들은 분주히 준비를 합니다. 포옹을 하기도 하고, 가벼운 입맞춤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연인들은 한 쪽이 열차에 채 앉기도 전에 전화를 걸기도 하지요. 스크린 도어가 닫히고, 열차가 출발합니다. 그리고 남겨진 쪽에서는, 열차가 역을 떠나 멀리 작아지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봅니다. 언제나 미련 없이 내일로 향하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을, 어떤 아쉬움이나 바램 따위를 손에 쥔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나 종종 허락되는 그 뒷모습.
신형철 평론가는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환상의 빛>에 대해 소개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인간의 뒷모습이 곧 인생의 앞모습”이라고.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인간은 그래서 타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얼굴을 보려고 허둥대는 것”이라고. 또 김소연 시인은 이렇게 쓰기도 했지요. "멀어지는 방식은 모두 비슷하다. 뒷모양을 오래 쳐다보게 한다(김소연, <막차의 시간>)”
타인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아실 겁니다. 자주 가련하고 때로는 단호한 뒷모습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오묘한 감정에 대해. 그 날따라 유난히 작아보이던 부모님의 뒷모습이 떠오르거나, 진하게 술에 취해 축 늘어진 친구의 뒷모습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겁니다. 다가가서 안아줄 수도 등을 토닥일 수도 있었겠지만, 왜인지 그 순간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저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모습. 평론가의 말마따나 “생의 앞모습’을 담고 있는, 그 아득하고 처연한 등의 무게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요.
여기 그 뒷모습을 담은 사진집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가 세계 곳곳에서 포착한 뒷모습 사진들에 더해,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마왕> 등을 집필한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그 사진에 대해 쓴 글을 엮은 사진집입니다. 에두아르가 포착한 뒷모습들은 다채롭고 인간적이어서 슬며시 웃음짓게 하다가도, 또 한 편으로는 애잔하고 저미는 마음이 들게도 합니다. 연인, 여행, 노인과 아이들, 심지어는 조각상의 뒷모습까지. 거기에 투르니에의 한 편의 시같은 주석들이 더해져, 우리 모두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을 노스탤지어를 건드리는 것입니다. 혹 그것이 어디에서 온 향수인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책장을 넘기던 손을 문득 멈추게 만드는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어깨동무하고 지나가는 어린 아이의 뒷모습-꼭 맞잡은 손을 언제까지나 붙잡고 있길 바라게 만드는 발걸음을 찍은 사진이라던지. 바다를 바라보는 두 남녀의 뒷모습-그러나 그 어색한 거리감이나 엇갈린 시선으로 보아 다정한 연인이라기보다 아직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진 못한 듯한 묘한 분위기를 담아낸 사진들을 보면서 저는 에두아르의 관찰력과 시선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을 찍는다면 보통은 피사체가 가장 ‘잘 보이는’ 구도를 찾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앞모습이지요. 그러나 에두아르는 달랐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피사체들 중에, 하필이면 뒷모습에 마음을 두고 셔터를 눌러온 것입니다. 카메라를 든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무언가를 사진에 담기 위해선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먼저일 테니, 아마 그는 타인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걸었을 것입니다. 뷰파인더를 통해 수많은 뒷모습들을 바라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펜과 노트를 집어들어 옮겨 적게 만드는 투르니에의 문장들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지팡이를 짚은 채 걸어가는 할머니의 사진에 그는 이렇게 주석을 달았습니다. “말해봐요, 할머니, 그렇게 허리를 앞으로 구부리고 가는 것은 땅바닥에 떨어뜨린 젊은 날을 줍기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등을 짓누르는 세월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인가요?” 또 바지와 치마를 걷은 채 바다에 발목을 담근 연인의 사진 옆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첫날처럼,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아주 조금씩만 앞으로 나가본다. (…) 그러나 이 즐거움과 정다움이 이 한때를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으로 만들어놓는다.” 투르니에의 문장들은 날카로움과 부드러움, 현실과 낭만 사이를 자유롭게 오고 가며 더하고 뺄 것도 없는 우리 삶의 진실에 대해 전합니다.
저는 이 사진집을 웹이나 모바일보다는 책으로 만나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요새 잘 찾아보기 힘든 정방형에 가까운 판형에 하드커버 표지로 제본된 사진집은 마치 동화책을 열어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책을 마무리하는 역자 김화영님의 맺음글 또한 만족하며 책을 덮기에 더없이 충분한 글이었습니다. 꼭 역자의 말까지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또 한 가지. 우선은 글 없이 사진을 먼저 보시는 게 어떨까 조심스럽게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사진을 본 직후에 투르니에의 글을 읽어 버리면, 어쩐지 그 글은 사진에 대한 해설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또 에두아르의 사진에 대한 우리의 감상도 투르니에의 주변에서 멈추고 말아버릴지도 모릅니다. “안 본 눈 삽니다”라는 농담은 때로, 굳이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는 비아냥 대신 그것을 보기 전으로 돌아가 처음의 감흥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찬사가 되곤 합니다. 그게 무엇이건간에, 그것을 처음으로 독대하는 순간은 다시 없을 경험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이미지와 텍스트를 동시에 읽으며 책장을 넘기는 평범하고 수동적인 독법 대신에, 아무런 사전정보나 해석 없이 그저 이미지만을 먼저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제안은 제가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 이미지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가져다주는 감정이 다 지나가고 난 뒤에, 다시 말해 텍스트로 해석되거나 변질되기 전의 이미지를 오롯이 만난 뒤에 투르니에의 글을 읽는다면 이 책이 더 좋은 경험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그 뒷모습으로부터, 우리는 우리 삶의 앞모습을 조금씩 재발견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사진 속의 이 다양한 뒷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다시 살아 움직이는 삶의 앞모습을 만나면 즐겁다.
그러나 그 즐거움의 배경에 오래 지워지지 않는 뒷모습들이 더러 있다.
이것이 바로 미적 균형이 아닐까.
에두아르 부바와 미셸 투르니에의 ‘뒷모습’에는
우리의 눈높이를 올려주는 그 같은 미적 균형이 있다."
- 김화영, ‘문득 걸음을 멈춘 존재의 뒷모습’(<뒷모습> 역자의 말) 중에서
우리는 어떨 때 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던가요. 어떤 뒷모습이 우리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던가요. 사진집 속 인물들의 몸짓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그것이 담고 있는 그만의 표정일지도 모릅니다. 미세한 얼굴 근육의 변화보다 더 짙고 생생하게, 영원히 한 폭의 필름으로 조각된 그 날의 정서. 그것은 사진에 기록될 수 없었던,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뒷모습들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사진으로 남지 못한 모든 것이 그저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 테지요.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등을 보일 수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자신의 뒷모습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뒷모습을 기억해줄 이는 영원히, 타인 뿐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뒷모습으로 기억될까요. 우리의 뒷모습은 어떤 표정으로 그 기억에 새겨져 있을까요.
다시 지하철 플랫폼의 연인들을 떠올려 봅니다. 플랫폼에 홀로 남겨진 그는 자신의 연인이 웃으며 돌아봐주기를 바라다가도, 그래서 손 흔들며 배웅해주고 싶다가도 또 어떤 날에는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겠지요. 뒤돌아보지 말고 뚜벅뚜벅 나아갔으면. 너의 부재는 내가 확인할 테니, 너는 나의 부재를 확인하는 일이 없었으면. 그는 쓸쓸한 자신의 뒷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다만 누군가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은 마음으로 거기 서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뒷모습은 영원히 뒷모습인 채로 남겨두어야만 하기에, 그는 한동안 그 지하철역에 가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가 누군가를, 어떤 꿈을, 한 시절을 떠나보내고 또 떠나오면서 잃어버린 생의 앞모습들을 거기 놓아두었기 때문에.
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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