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머무른 순간들] 02. 전몽각 <윤미네 집> (2)
Part 1의 후속편입니다.
<윤미네 집> 마지막 장에는 부록으로 ‘사진에 얽힌 이야기들’이라는 챕터가 있습니다. 선생께서 남긴 주석들이지요. 이 사진들을 찍어온 선생의 마음을 짐작케 하는 따뜻한 글들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말하자면 카메라와 펜으로 써내려온 가족의 역사. 부록처럼 남은 사적인 연표와 캡션들이 책을 덮는 우리의 마음까지 매만져 줍니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깨닫게 됩니다. 한 사람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그 부모가 나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사실에 대해 말입니다. 이 사진집 속에도 그 사실은 변함없이 들어 있어서, 어떤 시절을 ‘함께 보내는’ 일에 대해 다시금 곱씹어보게 합니다. 다시 말해 ‘일상’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평화롭고 포근하기만 한 것이 우리의 일상은 아닙니다. 오히려 작고 사소한 실패와 실망, 염려와 안도의 연속이 더 일상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준비한 샴페인은 제대로 터지지 않고, 아이는 미끄럼틀을 타다가 넘어지고, 엄마는 화들짝 놀라며 캠코더를 내려놓았다가 다시 안심하는, 그런 순간들이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여서 가족을 이룬다는 것. 그리고 또 우리는 깨닫게 되지요. 태어날 때부터 부모였던 이는 없다는 것. 나눠 가진 피의 농도나 한 집에서 살아온 시간이 가족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윤미네 집>에는 ‘진짜 가족’의 순간들이 매 페이지마다 펼쳐져 있습니다.
"기억과 망각 사이에 사진이 있다.
잊혀져 가는 것을 떠올리게 하고, 다시 숨쉬게 하는 사진.
한 장의 사진이 담고 있는 것은 과거의 한 순간이지만,
그것이 되살리는 것은 그 순간을 감싸고 있는 시간에 대한 감정이다.
되돌아가지 못해 더 아름답게 추억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순간이,
사진 속에서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 전몽각 사진집. <윤미네 집>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귓가에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있고, 한 끼의 따뜻한 식사를 준비할 수도 있고, 함께 떠나는 여행을 계획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그를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 카메라에 담을 수도 있습니다. 요컨대 <윤미네 집>은 한 아버지가 가족을 사랑하는 그만의 방식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들을,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방식으로 표현해온 세월의 축적인 것이지요. 사진이라는 방식이, 우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방식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누군가를 향해 카메라를 들 때, 뷰파인더 너머로 그를 바라보고 조금씩 다가갈 때, 우리는 그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핸드폰 카메라도, 30년 된 필름카메라도 좋으니 사랑하는 이들을 찍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남는 게 사진뿐’이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 지금의 당신에 더 충실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세상을 조금씩 밝게 만드는 건 그런 것들일 테지요. 다만 사랑하고 있다는 것, 가장 우리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가장 당신다운 모습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것. 넘치도록 충분한 카메라의 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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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전에 조금 주저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에 대해 쓰기에 적당한 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지요. 지난달 우리를 온통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뉴스를 기억합니다. 저는 그 기사들을 클릭하지 못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로도 바꾸겠다는 말로도 왠지 부족한 마음이 들어서, 여러 번 글을 쓰려다 말았습니다. 대신 저는 이 글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제가 쓰고 싶은 글은 당연한 일들에 대해 당연하게 말하는 글이 아니라, 마땅히 당연해야 하지만 당연하지 못한 것들의 부재를 호명하고 그 자리를 지키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가족이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 글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가족에 대한 문장 중에 톨스토이의 그것만큼 널리 받아들여진 문장도 없겠지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는 이 문장은 '안나 카레니나의 역설'로 이름 붙여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장을 마주칠 때마다, 그렇지 않다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어떤 문장이 고전의 권위를 갖게 되면 그 진술이 일종의 선언이자 진리처럼,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톨스토이의 문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행복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불행한 가정은 정치와 제도와 교육이, 우리의 시스템이 돌볼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 각자는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름답게 전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겠지만, 왜인지 그런 마음이 들어 사족을 덧붙입니다.
진군
@jjinkuu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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