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한국에 ‘서브웨이’가 들어왔을 때를 기억한다. 가볍게 샌드위치 하나 먹으러 들어갔는데, 주문하는 게 아니라 면접을 보는 줄 알았다.
“빵은 뭘로 드릴까요? 구워 드릴까요? 고기는 뭘로 하시겠어요? 못 드시는 야채 있으세요? 소스는요?”
그냥 메뉴판 보고 고르면 있는 거 갖다 주는 식당만 가다가, 처음부터 모든 걸 내가 알아서 골라서 만들어야 하는 시스템에 기가 빨려 버렸고, 같이 간 친구는 그런 걸 귀찮아해서 이미 중간에 포기하고 그냥 알아서 만들어 달라고 두 손 모아 부탁했었다.
미국에 와보니 대부분의 식당이 서브웨이 같았다. 다른 샌드위치 가게는 물론이고, 멕시코 요릿집을 가도 소스부터 치즈까지 다 내가 골라야 했으며, 샐러드 가게, 빵집을 가도 다 마찬가지였다. 이런 식당만 있는 건 아니지만 한국에 비해 손님이 직접 뭘 먹을지 골라야 하는 식당의 비율은 훨씬 많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직도 이런 시스템이 적응이 안 돼서, 주문 할 때마다 긴장한다. 너무 천천히 고르면 뒤에 사람이 눈치 주지는 않을지, 저 야채는 영어로 뭐라고 해야 하는지, 이렇게 조합하면 과연 맛이 있을지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말하다 주문이 잘 못 들어가서 원하지 않았던 음식 조합을 먹을 때도 있다.
왜 이렇게 미국은 샌드위치조차 맞춤 조리 식당이 많을까 궁금했는데, 현지인들과 조금 어울려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음식에 관해 어마어마하게 까다로운 것이다. 음식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그냥 먹고 싶은 것만 먹어서 편식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미국에서만 거주한 내 시가 식구들이나 현지 친구를 보면 먹는 음식들이 너무나 한정적이다. 편식이 심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는데, 어려서부터 음식에 관한 선택권이 꽤나 폭넓게 주어지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는 그냥 엄마가 차려주는 음식을 먹었다. 특별히 뭐가 먹고 싶다 얘기하는 게 아니면, 그냥 아침에 차려진 밥, 국, 반찬을 먹으며 자랐다. 엄마는 한 번도 아침에 밥을 먹을지 빵을 먹을지 무슨 반찬을 먹을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골고루 먹지 않으면 혼이 났었다. 어릴 때는 그게 싫었지만 덕분인지 지금은 못 먹는 게 없고 새로운 음식도 거부감 없이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남편은 아침마다 집에 있는 여러 개의 시리얼 줄 자기가 좋아하는 걸 골라 먹는 선택권이 있었다고 했다. 학교 급식도 이것저것 골고루 받아먹는 시스템이 아니라, 여러 개의 음식 중 자기가 골라서 먹고 싶은 걸 가져가 먹는 생활이었다고 한다. 좋게 생각하면 어려서부터, 작게는 아침메뉴부터 여러 상황에서 선택권과 자율성이 주어진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일반 식당에 가서도 이거 빼 달라 저거 추가해 달라 복잡하게 주문을 하는 것에 익숙한 모양이다.
이런 성향은 식당에서 뿐만 아니라 내가 요즘 다니는 요가원에서도 보인다. 나는 한국에서도 몇 곳의 요가원에 다닌 적이 있다. 그런데 미국 요가원에 오니 여기는 또 분위기가 꽤 다르다. 한국 요가원에서는 선생님이 동작을 보여주면 학생들이 따라 하고, 선생님은 학생들 주위를 걸어 다니며 자세가 잘못된 학생이 있으면 수정해 주는 데 초점을 맞춰 지도를 했었다. 그에 반해 현재 내가 다니는 미국 요가원은, 올바른 자세로 강사의 요가 동작을 따라는 게 목적이 아니다. 물론 정해진 수업이 있고, 강사도 준비해 온 요가 자세를 보여주며 한 시간 동안 수업을 이끌지만, 이를 따라 하는 건 학생의 자유다. 그래서 수업에 들어가면 강사가 말하는 요가 자세와는 전혀 다른 자세를 취하며 혼자만의 요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꽤 있다. 현재 엎드려서 하는 자세를 하고 있는데, 혼자 서서 하는 자세를 하고 있다던가, 아직 한창 요가 수업이 진행 중인데 드러누워 쉬고 있는다던가 말이다.
나는 처음에는 그들의 행동이 무례하게 느껴졌다. ‘엄연히 강사가 수업을 하고 있는데 자기 마음대로 할 거면 왜 수업에 들어온 거지? 강사도 나름 열심히 준비한 수업일 텐데?’ 라며 그들의 태도를 못 마땅하게 여겼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나에 비해 요가 선생님들은 전혀 그들의 홀로 요가에 신경 쓰지 않았다. 눈앞에서 다른 요가 동작을 하든 말든, 그에 대해 싫은 눈초리 한 번 보내지 않았고, 자기 동작을 따라 하는 학생들의 진도만 신경 썼다. 게다가 수강생 중 동작이 좀 다른 사람이 있어도 그걸 따로 고쳐주거나 하지도 않았다. 궁금해진 나는 수업이 끝난 후 요가 강사들과 얘기를 나눴는데, 사람마다 체력도 유연성도 몸의 상태도 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동작을 연습해도 모두 조금씩 다른 자세가 나오는 게 당연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는 게 그들의 답변이었다. 또 요가원에 오는 사람들은 ‘요가’를 하러 오는 거지, 그 수업을 따라 하는 게 주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날 수업의 요가 동작이 자신의 몸 상태와 맞지 않다면 본인 몸에 더 맞고 자연스러운 다른 요가 동작을 해도 괜찮다는 말도 덧붙였다.
요가의 나라라 할 수 있는 인도에서는 어떤 스타일의 요가가 더 선호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다닌 요가원과 미국 요가원의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미국 요가원의 스타일이 이렇다고 해서 학생들을 아예 신경 안 써주는 건 아니다. 강사들도 학생이 너무 잘못된 동작으로 하면 짚어 주기도 하고, 질문이 들어오면 바로바로 대답해 준다. 요가 수강생들에 대한 격려도 아끼지 않는다. 단지 정해진 수업 안에서도 개개인의 자율성과 선택권이 내가 한국에서 경험했던 곳보다 훨씬 넓다는 게 큰 차이인 것 같다. 물론 미국도 마냥 모든 상황에서 자율성을 인정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자율성 보장’보다는 ‘개개인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폭이 좀 더 큰 것 같다는 게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새로운 음식은 못 받아들이는 걸까. 맨날 똑같은 음식만 있는 미국 음식에 질린 나는, 내가 사는 시골 마을에도 좀 더 음식의 다양성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