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티게 하는 찐엄마, 나에게 버티는 시엄마가 있다.
나에겐 찐엄마와 시엄마가 있다.
찐엄마는 다 눈치 챘겠지만 말 그대로 찐 엄마다.
학창시절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집에 늦게 들어오면 등짝 스매싱을 날리던
결혼 후에도 시시때때로 잔소리를 쏟아부을 수 있는 엄마.
바로 날 낳아주시고 지금까지도 기르느라 애가 타는 나의 친정엄마다.
그렇다면 시엄마는?
말 안 해도 다 알겠지?
현재 나와 8년째 동거 중인 동거인을 낳아 기르신 시어머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저 흐뭇하게 웃어넘기시는 (그 속은 ,,, 알 수 없지만)
여전히 아들 바라기 진행 중이라 무슨 일만 생기면 아들부터 찾는 ,,,
이유 없이 ‘시’ 자가 들어간 게 그냥 싫어지게 만드는 장본인, 바로 시어머니다.
난 결혼과 동시에 이 두 엄마들에게 부대끼며 산다.
아마 대한민국 기혼 여성들이라면 이쯤에서 고개를 끄덕이겠지?
친엄마완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시엄마는 ,,, 헛짓, 딴짓, 어문짓을 다하면서 걸어도 7분 이내다. (직접 스톱워치로 측정한 숫자다)
여기서 한숨, (후~)
지금 이 집을 선택하고 매매를 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내 동의가 있었던 건 당연하다.
하지만, 가까워도 이렇게 가까울까?라는 걸 한 해, 두 해 살아가면서 느끼는 요즘이다.
무튼, 시엄마 집이 절대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난 어쩔 수 없이? 며느리 놀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엄마 입맛이 없어도, 시엄마가 뭘 만들어도, 시엄마 집에 뭐가 고장 나도, 시엄마가 어디 아파도, 시엄마가 심심해도, 시엄마가, 시엄마가, 시엄마가 ,,,,,
하지만 ‘시’엄마가 마냥 부담스럽지만은 않다.
어느 날, 교회 점심으로 나온 카레를 보며
‘나 이거 좋아하는데~’라고 말하며 한 그릇 뚝! 딱! 비우니
다음 날 저녁,
‘퇴근길에 집에 좀 들러라~’ ‘왜요?’ ‘네가 좋아하는 카레 끓였다.’
울 시엄마. 며느리가 좋아한다는 음식은 기본 들통으로 끓여 대령해 주시니 이 어찌 아니 기쁠 수가~ (하하)
이렇게 절대적인? 사랑과 관심을 주는 ‘시엄마’와 45년째 하나밖에 없는 딸 걱정에 노심초사 걱정 속에 사는 ‘찐엄마’.
나에겐 ‘찐엄마’와 ‘시엄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