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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파네마 Nov 17. 2019

프랑스 파리 생활기 #10 서머타임은 끝이 나고

2019년 10월 31일 작성


2019년 10월 27일 오전 3시

프랑스 서머타임 종료


7시간이던 한국과의 시차는 한 시간 더 늘어나 8시간이 되었고, 일출과 일몰도 한 시간 씩 빨라져 오후 5시면 해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밤 10시가 다 되어야 날이 저물던 지긋지긋한 여름을 지나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어둠의 계절이 왔다.


파리에 온 뒤 가장 마음이 복잡했던 한 달이었다.




비자를 연장하고자 11월 중순에 프랑스 경시청과의 Rendez-vous(약속)을 잡아두었다. 큰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해당하는 자잘한 실천계획들을 이뤄나가는 것이 아니라,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들부터 해나가다 보면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나만의 길, 지금은 희미한 그 무언가도 언젠간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싶었다.


그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씩 하나씩.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애쓰거나 애쓰는 것이 버거울 때면 아무 생각 않고 즐기기도 하면서, 울고 웃고 고민하고 좌절하고 그러다 다시 일어나면서. 그렇게 나만의 시간들을 쌓아보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회사가 폐업해버렸고 나는 실직상태가 되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좋아하는 것이 차츰 늘어나던 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흐린 듯 흐리지 않은 날이 찾아오면 센 강변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공부를 했고,




날씨가 영 아닌 날에는 우연히 방문했다가 홀딱 반해버린 생 주느비에브 도서관(Bibliotheque Saint-genevieve)에 들어가 놀라운 에너지로 집중하고 있는 파리의 대학생들 사이에서 공부를 했다.


사족을 붙이자면 이 도서관은 에펠탑, 센 강에 이어 파리에서 내가 세 번째로 좋아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앞의 두 개와는 달리 도서관이 준 의미는 보다 특별했다. 작년 1월, 그리고 5월, 파리에 찾아왔던 두 번의 여행기간 동안 나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도서관에 가볼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필수 관광명소들을 방문해 여행자들 사이에 끼여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대면서 여행의 감흥에 흠뻑 빠지긴 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느끼기 위해 오로지 내 감정에만 집중하다 보니 정작 진정한 파리지앵들의 삶을 둘러볼 여유는 가지고 있지 못했다. 에펠탑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 해지고, 센 강을 보며 센티한 감정에 빠져있던 그 순간에도, 나는 나와 비슷한 표정으로 황홀경 상태에 취해있던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게 잘못된 거란 얘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여행을 하러 와서 여행지에 갔던 나는 여행자로서의 역할을 다 했던 것뿐이니까. 그때 걸린 '파리병'은 나에게 무모할 수 있는 용기를 준 애증의 자양분인걸.




하지만 이번 세 번째 방문은 애초에 그 목적부터가 달랐기 때문에, 최대한 파리지앵들의 일상에 깊이 발을 담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수개월간 다녀봤던 어떤 곳보다 그들의 삶을 가장 온전히 느낄 수 있던 곳. 바로 이 도서관이다.


책을 펴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무언가를 하고 있는 파리의 시민들. 수많은 여행자들이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최고의 여행지 파리 그 뒤편에도 '여행'이 아닌 감내하고 노력해야 하는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이상하게 내게 위안이 되었다.


미술관과 같이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잠시 훑어보고는 자리를 잡아 공부를 시작했다. 공책을 한 장씩 넘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동화되어 몇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날만큼은 '진짜 파리지엔느'가 된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친구가 생겼다!


나는 한국에서 매일같이 혼자 돌아다니던 역마살의 대표주자였다. 카페, 식당, 영화관, 전시회, 와인바, 바닷가, 놀이공원, 양 떼 목장 등. 아무 데나 내키는 대로 마구 돌아다니다 보면, 이따금씩 예상치 못한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애초에 너무 멀리 와버린 탓일까. 어딘가 나갈 생각이 잘 들지 않았고, 밤늦게 들어가던 중 노숙자한테 해코지당할 뻔했던 일이 있은 뒤에는 더욱이 쳇바퀴 같은 일상만 보내고 있었다. 일-학원-집. 그러다 보니 새로 누군가와 가까워질 일이 딱히 없었는데, 이번 10월 드디어… 친구가 생겼다!


Anahita와 Farah. 틈만 나면 "Oh Non!!!~"을 부르짖는 구여운 Anahita도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오늘은 Farah에 대해서.


가장 좋아하는 프랜차이즈 카페 Pret a manger에서 헤이즐넛 카푸치노를 마시며 여느 때와같이 공부를 하던 중, 옆에 앉아있던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눈을 휙 돌리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듯싶어 얼떨결에 미소를 주고받았는데, 내가 공부하고 있는 자료를 휙 스쳐본 그 친구는 내게 'Vous etes coreenne?(한국사람이에요?)"라고 말을 붙여왔다. 그렇게 말문을 튼 우리는 삼십 분 넘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연락처를 나누었다.


하지만 한 번의 기분 좋은 만남도 두 번 세 번까지 이어나가는 건 약간 주저하는 나이기에, 조금 전의 흥미로운 만남도 재미난 에피소드 정도로만 묻어두려 했는데, 이 도발적인 친구는 흩어지자마자 메시지로 바로 다음 만남을 권해왔다. 내가 발을 빼려는 기미를 보이자 당장 다음날로 날짜까지 정해버렸다.


두 번째 만남 역시 유쾌한 시간이 되었다. 그 뒤로도 친구는 자꾸 놀러 오라며 꼬시고(?) 있는 중이지만, 나는 아직 튕기고 있다. 하하.




그런데 참 인생은 다이내믹하기도 하지. 이제 막 적응이 되려 하자 갑자기 위기가 찾아왔다.


당장 집 계약과 비자 연장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모아 온 자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당장 일을 다시 구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타지에서 뿌리를 내리려고 땅을 찢어나가던 중 물의 공급이 끊기는 것. 그게 어떤 의미인지 와 닿아버렸다.


행동한 뒤 생각해보려 했다, 저지른 뒤 계획해보려 했다. 모든 일이 물 흐르듯 순탄하게만 진행된다면 그것도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타지 생활에서 '순탄'만을 바랐던 것이 나의 오만이었다. 그걸 깨달아버렸다.


어쩌면 지금이 내게 '목표'가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의 삶에 당장 박차를 가하든, 연료를 충전한 뒤 다시 시작해보든, 명확한 방향점과 이에 대한 강렬한 의지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현실적인 계획이 없이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생각이 필요하다.





할로윈 때 꼬꼬마들이 Trick&Treat을 하러 온다고 해서 저렇게 포장까지 해서 준비해두었는데, 잠시 밖에 나갔던 중 다녀간 것 같다. 에잇 아쉬워라.


기록하고자 적기 시작했던 글. 바로 뒷 주제도 예상할 수가 없다. 다음에 나는 어떤 이야기를 적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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