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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파네마 Jul 18. 2019

프랑스 파리 생활기 #7 Franchement



Franchement. 솔직히 말해서.



솔직히 말하는 데 미숙한 편이다. 그렇다고 거짓을 지어내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닌 듯싶은데, 있는 그대로 감정이나 생각을 드러내기보단 숨길 수 있는 만큼은 숨기고 누를 수 있는 만큼은 눌러내려고 애쓰는 타입이다.


특히 '목표'에 대해서는 그런 경향이 심각하다. 한 때는 대책 없이 당찼던 적도 있었지만 계획했던 목표들이 이루어지기보단 실패하는 경우가 더 잦아지고 그때마다 다친 내 마음을 어루만질 겨를도 없이 주변의 상심을 보듬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체감하게 되면서, 무언가를 바라게 되어도 쉽사리 외면했다. 마음을 누르는 것은 어느덧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랬던 내게 원하는 것이 생겼다.


나, 프랑스에 살고 싶다. 살고 싶었던 건지, 살고 싶어 진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 이 곳이 좋다. 확실히 좋다. 여기서 계속 지내고 싶어 졌다. 가능성이 극히 낮다 하더라도 한번 뛰어들어보고 싶을 만큼 그 마음이 커져버렸다.



파리에 온 지 6주 차. 요 근래에는 아침에 매일같이 종아리에 쥐가 나서 잠에서 깬다. 한 번에 몸을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다. 시간을 확인한 뒤 한 번쯤 더 짧은 단잠을 누리다가, 다시 정신이 깨어난 뒤엔 시계를 확인한 뒤 겨우겨우 상체를 침대에서 떼고 자리를 의자로 옮긴다.


견과류를 한 줌 집어 책상에 둔다. 테이블 위에 놓인 주황색 조명을 켜고 눈도 덜 뜬 채로 프랑스어 공부를 한다. 한 시간 남짓 지나 씻기 시작한다. 요즘 계속해서 지각을 일삼긴 했지만 이번 한 주는 한국에서 오신 사장님을 처음 뵙는 날이니 조금 더 서둘러본다. 잘 보여야지. 너무 기회주의자 같은 심산 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만남 하나하나가 혹시라도 나를 예상치못한 세상,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줄지 모른다.



그래도 삼십 년 가까운 인생 짬밥이 있어 그런지, 처음 뵙는 분이라 하더라도 윗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말씀이 길어지시거나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농담을 하실 때마다 같은 아르바이트 동료인 스물여섯 동생은 눈으로는 웃으면서도 입과 볼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러한 상황들을 능수능란하게 넘기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뭐 무언가를 얻기 위한 목적의식을 떠나서도 한 분야를 깊게 파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나름 재미난 일이기도 했다. 비록 일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면서 사장님과 본격적인 대화를 나눠보니 아마도 내게 가장 중요한 '비자 문제'를 해결해주시기엔 회사의 역량이 충분치 않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것을 배우면서 천천히 시간을 두고 내 가치를 올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선을 다하되 조급해질 필요는 없다.


네 시간가량의 일을 마치고 세 시간 동안 학원 수업을 들었다. 며칠 전에는 처음으로 프레젠테이션 과제가 있었다. 막막하고 자신이 없어 미룰까도 싶었지만 새벽까지 시간을 부어가며 열심히 준비하고 좋은 결과로 마무리를 지었다. 다만 내가 너무 공을 들인 탓에 내 이후 발표자들의 경쟁이 과열되어버리긴했지만, 하하 나는 몰라.



아무튼 수업이 끝난뒤 아직 해가 쨍쨍하게 떠있던 저녁시간, 발걸음을 옮겨 약속 장소로 향했다. 한국 있을 당시 우연히 가까워지곤 나를 매우 아껴줬던 프랑스인 지인이 마련해준 자리. 본래 파리에 와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질 경우 도움을 주기로 해서 형성된 주선 자리인데, 운이 좋게도 예상보다 빠르고 쉽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지만, 여전히 비자 문제로 인해 고민이 있다는 얘기를 털어놓고난 뒤 흐지부지될 뻔했던 만남이 다시 구체화되다.


저녁 일곱 시쯤 만나 열한 시쯤까지 한참 동안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그가 무언가를 도와주기엔 아직 내가 갖춰놓은 것이 너무 없었다. 뭐가 됐든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는 일이라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도 해보고 싶었는데, 역시나 쉽지 않구나 싶어 허무와 자괴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했다. 나 이 곳이 좋은데, 정말 좋은데, 내가 과연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해낼 수 있을까.


이런저런 감정이 뒤섞인 채, 내가 가려는 길을 한 템포 앞서 겪어내고 결국 해내고야 만 나의 연인과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무거웠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쩌면 내가 못나고 부족해 서가 아니라, 가려던 방법이 너무 쉽게 가기 위한 요행수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진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귀찮고 번거로워 보이더라도 한 계단씩 닦아나가야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토대가 나를 지탱해줄지도 모른다.


흙을 고르게 다지고 한 줌 한 줌 힘을 꼭 꼭 주어 누른 뒤 물도 붓고 재료도 덧입혀 오랜 시간 동안 가마에 한번 구워내 보자. 조금 못나고 투박할지라도 소중한 나만의 작은 그릇이 내 손에 주어질 때까지.




p.s. 공부에 도움이 될 까 싶어 만화책을 사봤는데 과연 효과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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