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늦은 인사를 올리며 얼마 되지 않을(어쩌면 나 하나) 독자들에게 용서를 구해봐야지.
육 주 만이다.
'프랑스에 살고 싶어 졌다'는 내용의 글을 마지막으로 남겨둔 채 한여름과 늦여름을 마저 다 보내고 8월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변명을 굳이 해보자면 무진장 바쁘기도 했지만 사실 그보단 뭐랄까 기록을 남기는 것보다 온전히 겪고 느끼는 데 집중해보고 싶었다. 잠시라도 주어진 시간에 있는 그대로 충실해보고 싶었다.
어학연수를 명목으로 10월 중순까지 학원 수업을 등록한 뒤, 11월 말까지의 비자를 받아서는 이 곳에 왔다. 입국일이 5월 27일이었으니, 이제 지낸 기간보다 남아있는 기간이 더 짧은 기점에 들어서게 된 거구나. 그리고 지난주 드디어, 비자를 연장하기 위한 경시청과의 헝데부(rendez-vous)를 잡아버렸다.
지금의 내 삶을 조금도 그려볼 수 없었던 작년 봄의 어느 날, 이런 일기를 남겨둔 적이 있다.
<좋아하는 평론가님의 평론을 읽다가 드는 생각>
그래. 우리는 어쩌면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행동의 결과'로 마음이 움직이는지도 모른다.
그 행동이 무엇을 기반으로 했든
매 순간 내가 내린 하나하나의 결정과 그로 인한 행동이
나도 모르는 새, 마음이 가는 방향을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을 잠시 쉬고자 할 때조차도
일련의 행동들은 하게 된다는 사실이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오늘
인생은 흘러간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방향을 결정하는가. 쉽지 않은 대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알 수 있는 것. 심사숙고한 뒤의 결심이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저질러버린 무모함이든, 모든 선택과 결정들은 우리를 전혀 예상치 못한 세계로 이끌어 준다. 천국(같은 것은 현실세계에 존재할리 없다고 생각하지만)이든 지옥불구덩이든 분명 어딘가로는 데려다 놓는다.
또 한 번의 결정을 내렸다. 프랑스 파리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스치듯 지나던 생각을 붙잡아 행동으로 옮겨버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결과를 알 수는 없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생명연장만 몇 번 하다가 제 풀에 나가떨어지든 등 떠밀려 쫓겨나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결국 돌아가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더라도, 한번 더 이 방향에 힘을 실어보기로 했다.
다만 이번엔 조금 더 구체적인 목표를 동반해본다. 언어를 트고 생활에 적응한 뒤, 석사과정을 마치거나 혹은 다른 과정을 거쳐서라도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내 몫의 일을 찾아내는 것. 그렇게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싹을 틔워 나가는 것. 그곳에 방향점을 두고 모든 에너지를 집중할 것이다.
대체 이유가 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살아있다는 느낌' 그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몸뚱이는 편안해도 머릿속으로는 죽어가는 것들만 떠올리던 고국에서의 삶과 달리, 1유로짜리 빵 하나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온 다리가 퉁퉁 부을 정도로 걸어 다니면서도 이 곳에서 나는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기에.
십 년 전쯤 읽은 알랭 드 보통의 <불안>. 그 책의 서론 부분에 나왔던 '우리가 그토록 고군분투하며 사는 이유는 아가시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긋방긋 웃기만 해도 받을 수 있었던 넘치는 사랑과 인정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라던 의미의 구절.
어쩌면 지금의 나 역시 아가시절 받은 사랑의 기억을 안간힘을 쓰며 회복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90을 이루어도 해내지 못한 10으로 인해 평가받아야 했던, 자기 검열이 혹독했던 기존의 삶을 덮어두고 새로이 출발선을 끊고 나오면서, 이렇게 걸음마를 떼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고 지금도 이미 잘하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한번 무엇이든 해볼 힘을 얻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 떠나오기 전의 나와 같던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싶다. 빠르고 치열한 경쟁사회.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튕겨져 버린 사람들. 더 이상은 애쓰고 싶지도 애써볼 힘조차 나지 않는 그런 이들에게 느려도 괜찮다고 느리면 느린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우리 삶도 나름대로 살만한 것일 거라고 허울뿐인 말이 아니라 실존하는 삶을 통해 증명해 보이고 싶다. 해내고 싶다.
작년 여름, 정확히 일 년 전쯤 적어둔 또 하나의 글을 덧붙이며 오늘의 일기를 마무리해야지.
<이상에 다다르지는 못할지라도>
죽을 만큼 노력했던 큰 시험을 망쳤을 때도
소중하게 생각했던 관계가 무너졌을 때도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내면서도 자존감이 무너진 적은 없었다.
괜찮다고, 나는 단단한 사람이니까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믿어주던 힘이 항상 내 안에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달간 어떤 한 가지 일로 마음을 쓰면서
나도 알고 남들도 알만큼 중심이 크게 흔들거렸고
그걸 한참 동안 방치하다 어느 날 자신을 돌아보니
참 초라하고 별 볼일 없었다. 내가 알던 내가 전혀 아니었다.
심지어는 지금 새로운 꿈을 향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과정 속에 있으면서도
내면 어딘가는 텅 비어있는 느낌이 드는 이유. 나는 알고 있다.
내 안의 모든 것이 어그러져 도무지 조화롭지 않은 이 느낌.
더 이상은 방치하고 싶지 않다. 바로잡아보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차피 한 번도 꿈꾸던 이상에 완전히 도달한 적은 없었지만 그건 상관없다.
이상에 다다르지는 못할지라도 괜찮다.
무엇을 하든 어느 길을 택하든
나만의 이상을 향해 떳떳하게 그리고 옳은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라고 믿을 수 있었던 자긍을 되찾고 싶다.
다시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단단한 사람이 되는 중일 거라고 믿기로 했다.
일상 기록은 블로그에 남겨뒀으니 그냥 넘기려다가 :)
언제나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주는 나만의 요리사. 이번 글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사람이 없었다면 마음조차 먹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고양이 카페에 다녀왔다. 창 밖을 바라보는 모습이 귀여워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비둘기 보고 입맛 다시는 중일 거란 얘기 듣고 정이 딱 떨어졌다. 무서워..
여름 기간에만 개장하는 튈르리 정원 놀이공원에 나 홀로 나들이.
천천히 도는 것 같아 무시하며 탔다가 심장이 없어지는 줄 알았다.
택시 타고 지나갈 때마다 눈길을 끌었던 빨간 천막, 금빛 간판의 카페에도 다녀오고,
가장 좋아하는 파리의 밤거리를 하염없이 걸어보기도 하고(드디어 해가 짧아지고 있다. 야호!)
카푸치노에 후추 뿌려먹는 바보..
먹구름이 가득할 때면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거의 5년 만에 긴 머리 탈출! (여전히 긴가?)
일하던 중 점심시간, 이때까지만 해도 여유로운 기간이었군.. (사장님 곧 프랑스 오실 거라 헬게이트(?) 오픈 예정)
학원에 삼개월간 다니면서 진심으로 가까워지고 싶던 친구는 딱 두 명뿐이었다. 첫째 쿠웨이트 친구 Zainab, 두 번째 사진 속에 있는 스페인 친구 Maria. 우리 언젠가 꼭 다시 보게 될 거야.
영화 비포선셋에 나왔던 몽파르나스 묘지,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해에 수명을 다한 부부의 무덤. 분명 사랑이 넘치는 분들이셨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