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맹 Aug 06. 2024

독일에서 하정우 따라 하기 - 걷기로 구원받은 영혼

일과 휴식 분리하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내가 뭐라고…”


“대배우도 이렇게 사는데 내가 뭐라고”

(유해진 배우가 자신이 사는 빌라에서 반장을 맡는다는 이야기의 댓글)


세상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도 일상에서 끊임없이 수고와 노력을 들이며 사는데 내깐게 뭐라고 대충 살려고 드느냐 이런 말이다. 자존감이 부족해 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와닿는 이야기는 아니겠으나 나처럼 근거 없이 자신 있고 때때로 자만에 빠지며 대충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에겐 뼈 때리는 말이다.


대충살기. 한번 사는 인생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모든 일에 초반에 넘쳐나는 열정으로 “열심”이 덤비다 끝힘이 부족해서 "흐지부지" 된다. 열정의 흐름이 조절이 안 되는 병.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이 재미있어서 혼을 팔고, 중요한 일은 시작에 너무 힘을 써서 막판에 힘딸려서 대충 마무리해서 넘긴다. 인생의 절반을 살았는데도 일의 경중을 다스리고 몸의 에너지를 배분하는 일에 서툴다. 특히 다 쓴 에너지의 회복 속도가 늦어지다 보니 예전보다 더 대충대충 일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샤프해지는 부분도 생겨야 하는데 경험치는 커져서 감은 생겼지만 디테일에 신경 쓰는 힘이 팍팍 줄어든다. 이는 환경 탓도 있는데 독일어, 영어, 한국어를 돌려써가며 그 어떤 언어 하나도 정확하고 섬세하게 사용하지 않는 나의 언어습관과도 상통한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정석이련만 앞으로 두 달, 매우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그동안 풍파에 밀려 사느라 항상 뒷전이었던 건강을 챙기는 일. 거북이 목에 새우등까지 잘못된 자세로 망가진 몸을 세우고, 갱년기로 스멀스멀 빠져나가는 근육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놔주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만보 걷기를 위해 집을 나왔는데 초반 30분을 걸었지만 일생각으로 날렸다. 다음 학기 계획, 동료들이 무심코 뱉은 말들을 곱씹어보거나, 그동안 억울했던 일들에 대해 이렇게 변명할걸 하며 이불킥 장면들을 하나씩 하나씩 불러일으키며 분노의 걷기를 했다. 이게 아닌데? 내면의 평화와 명상을 위한 걷기 되어야 하는데 왜 테이프를 되돌아 감는 걷기를 하고 있나?


가만 생각해 보니 오늘은 월요일이고, 월요일은 방학이 아닌 학기 중이었다면 가장 빡센 날이다. 즉 내가 가장 빡세게 프로그램되어 있는 날이었던 것이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유튜브로 뉴스를 보면서 이른 아침을 먹고, 간식을 주섬주섬 싸면서 걸려있는 빨래를 개고 대충집정리를 하면서 6시 30분경에 집을 나가고… 자동차에 엉덩이를 걸치고는 한 시간 독일어 배우는 팟빵을 들으며 트럭과 공사차량에 앞뒤로 둘러싸여 (매번 슬로우 레인을 막차선을) 택해서 달리다가... 1차선은 아우토반에서 스포츠카나 성능 좋은 차를 자랑하는 사람들한테 욕먹을까 무서워서 접근 금지, 2차선은 1차선에 못 껴서 자존심 상해서 심기 안 좋은 사람들한테 치일까 봐 무서워서  못 끼고. 도로의 너비에 따라 3차선이나 4차선에 머물러 천천히 가는데 아침에 성질 급한 트락기사를 만나면 이만치도 편하지 않았던 출근길.  

줄줄이 사탕 강의를 3개 마치면 오후 2시, 배고픔과 피곤함과 함께 가득 찬 메일함 속의 일처리를 대충 하고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타 집으로 오면 오후 5-6시. 거의 12시간 일하는 월요일을 한학기를 보내고 나니 방학이라 한가한 월요일도 그동안의 습관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쓸데없는 잔상으로 머릿속이 어지럽다. 이게 아닌데… 명상하면서 걸어야 하는데…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몇 개월 감옥생활하다 출소한 사람처럼 대망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싶은데 갑자기 얻은 자유여서 그런가 생각만큼 잘 누려지질 않는다. 몸뚱아리는 끌고 밖으로 나왔는데 하드웨어만 밖에서 산책 중이고 소프트웨어는 아직도 출소 전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버둥대고 있다. 완전한 해방감을 느끼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다.


정신 퍼뜩 차리고 아까운 걷기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해 생각해 낸 전략은 늘 다니던 동네 구석구석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었다. 시내를 활보하여 강변을 따라 휘휘 걸으며 작은 골목이 보일 때마다 들고 날며 주변을 새로운 눈으로 탐구했다. 그러니 곳곳에 재미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뎌진 나의 감각이 살아나면서...

구시가지 레스토랑이 즐비한 거리를 걷는데 평소 같으면 무슨 식당에 무슨 메뉴를 파느냐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먹으러 나왔을 테니) 오늘은 아침부터 레스토랑 준비를 위해 분주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음료수를 배달하는 트럭, 바깥 의자를 정리하는 사람, 그러다 발견한 서빙하는 사람의 상이 가운데 떡 있는 레스토랑. 멋졌다! 사장 할아버지를 내세우는 KFC는 봤지만 서빙하는 직원의 상을 레스토랑 한 복판에 떡 하고 세워주는 레스토랑은 본 적이 없다. 어딜 가나 조직을 만든 사람, 조직에 기부한 사람 등을 기리지 조직에서 뼈를 갈고 있는 직원상을 세우는 곳이 있을까? 생각해 보니 대학에서 나에게 쥐꼬리만큼 월급을 주고 많이 부려먹어 미안하니 네 모습의 상을 세워준다 하면 끔찍한 일이겠으나 어찌 되었든 서빙 직원상을 떡 하게 세운 레스토랑의 참신한 아이디어는 칭찬하고 싶다.    

조금 더 걸으니 더 재미있는 풍경이 눈에 띈다. 호프집 바로 위 천사상! 매일 지나다니던 길에 있는 브루어리 하우스인데 고개를 살짝 들어 위층을 보니 자비롭게 팔을 들어 올린 천사가 매달려 있다. 마치 교회나 성당의 벽에 달려 있어야 할 것 같은 성스러운 모습으로. 1층에서는 주님을 영접하고, 더 높은 곳에 천사가 있다 뭐 이런 메시지인가? 브루어리 하우스와 천사 간의 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함께 아래위로 친근하게 함께 있을 업종은 아닌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주님과 천사의 컬래버레이션 맞은편에는 오래된 고택의 껍데기에 우주선이나 잠수함에서나 볼 수 있는 창문을 가진 건물이 눈길을 끌었다. 이 조화는 또 무엇인가… 매번 지나다니던 길인데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았었다. 묘한 조합이다. 금장발린 고택에 스폰지밥에서나 볼 수 있는 둥근 창문이라니... 저 창문을 과연 열 수 있을까?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그동안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력이 좋아지는 것도 아닐 텐데 사물이 깊숙하게 보였다. 다른 것을 보려고 애쓰니 일의 연장선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던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공짜로 엄청 값진 것을 얻었다. 출소 전 감옥생활에 함몰되었던 내 영혼을 구했다. 걷기로 구원받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에서 배우 하정우 따라 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