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주관적인 톱텐!
(지난호 다섯 가지 음식 소개에 이어)
6. 피자가 아닌 피자, 플람쿠헨 (Flammkuchen)
프랑스 알자스 지역의 전형적 음식인 플람쿠헨은 얄팍하고 토핑이 가볍게 올라간 고급스럽고 작은 피자이다. 프랑스의 역사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는 나는 알자스라고 하면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만 떠오른다.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프랑스령이다 독일령이기를 번복했기에 이곳 주민들은 독일-프랑스 양국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알자스 지방에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독일의 자브리칸에서 일 년 남짓 살면서 둘째를 나았기에 독일 프랑스 접경지역 사람들의 이중 언어 정체성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동화같이 아름다웠던 '마지막 수업'에 대해 새로운 평가를 내리게 되었다. 예전에 알던 ‘마지막 수업’은 주인공 프란츠가 자신이 사는 마을이 독일군에게 점령되어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프랑스어 수업을 받게 되는 슬픈 이야기였다. 선생님이 칠판에 프랑스 만세 (Vive la France!)를 쓰면서 끝나는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 강제로 일본어를 배워야 했던 역사를 가진 한국인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고 국어 사랑과 나라 사랑으로 벅차오르게 하기에 교과서에 실리며 많은 학생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이 그 시대 지역주민들의 실제 언어 및 민족의식과는 관계없이 알퐁스 도데가 민족주의적 사고로 쓴 소설로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배신감이 들었다. 알자스 지방은 고대 게르만족의 이동 이전부터 독일계 민족이 거주한 지역으로 17세기말에 프랑스에 병합되었기에 그 이후로 오히려 프랑스가 주민들에게 독일어 사용을 막고 강제로 프랑스어 교육 정책을 시행하였기에 마지막 수업은 당시로서는 강제 프랑스어 정책에서 벗어나 정상화되어 가던 과정을 마치 슬픈 역사인양 그려낸 소설인 것이다. 즉 주민들은 드디어 언어의 자유를 되찾게 되었고 애꿎은 프랑스어 선생님만 일자리를 잃게 되는 정도의 아픔을 담은 소설이랄까? 쓰다 보니 알자스에 대한 썰을 너무 많이 풀었는데 이 지역은 현재까지 일상생활에서는 독일어를 쓰고 공교육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이중언어 사용 지역이고 소개하고자 하는 음식인 플람쿠헨은 종종 '독일피자'라고 불린다.
도톰하고 쫄깃한 식감의 피자와는 달리 플람쿠헨은 반죽에 이스트가 들어가지 않기에 바닥을 얇게 빚어 크래커처럼 만든다. 그 위에 화이트소스를 바른 후 얇게 썬 양파와 베이컨을 올려 구우면 한 입 베어 먹을 때 '사사삭' 하고 크러스트가 부서지는 소리를 내면서 고급스러우면서도 가벼운 맛이 나는데 14세기경 사람들이 빵을 굽고 난 후 오븐의 남은 열을 사용하여 만들어 먹으면서 생긴 음식이라고 한다. 전통 레시피는 얇게 저민 양파와 베이컨 조각을 올려 먹는 것이지만 그 외에도 채식옵션으로 버섯, 토마토, 시금치를 얹거나, 해물 옵션으로 훈제 연어나 송어에 적양파를 올리거나, 지중해식으로 방울토마토에 올리브를 얇게 저며 신선한 바질이나 오레가노를 얹어 굽기도 한다. 올리는 사람 마음대로 다양한 조합을 시도할 수 있는 플람쿠헨은 치즈 범벅으로 먹는 피자와 달리 화이트 크림이 살짝 깔려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으며 화이트와인과 잘 어울린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글루바인을 마실 때 나의 선택은 무조건 레드와인이지만 플람쿠헨은 화이트 글루바인을 곁들여야 쿵짝이 맞는다.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지만 마켓에서 별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싶을 때 최고의 선택이다!
7. 엔텐 브라튼 (Entenbraten)
엔텐브라텐(Entenbraten)은 오리구이로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음식이면서 독일의 대표적인 잔치상 음식이다. 다양한 허브로 오리를 양념하여 통째로 구운 후 스테이크처럼 어슷하게 썰어 먹는데 껍질은 바삭하고 고기는 부드럽게 조리한다. 단맛이 나는 붉은 양배추와 카토플 클로제(Kartoffelklöße)라 불리는 공모양의 감자요리나 빈대떡처럼 생긴 감자전 (Reibekuche)을 곁들여서 먹는데 '오리-감자-푹 삶아진 적양배추'는 환상의 조합이다.
오리고기는 닭고기 보다 비타민과 철분 등 영양가는 높고 콜레스테롤과 나트륨은 적기에 기력을 충전하는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결혼 전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왠지 식감이 닭고기만 못하고 닭에 비해 더 친근하게 느껴져 잡아(?) 먹기 부담스러웠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오리를 요리하는 방법도 잘 몰라 집에서는 거의 해 먹은 적이 없다. 그런데 닭고기를 싫어하는 남편을 만나 외식할 때마다 닭보다는 오리요리를 주문하기에 한 입, 두 입 빼앗아 먹다가 독일식 오리고기의 참맛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후 한참 오리고기 맛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중국 선양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을 맞이하였다. 오리전문 식당에서 베이징덕을 비롯한 오리고기의 향연을 즐기고 있었는데 노릇노릇 맛난 오리 요리들 사이에 친근한 오리 머리 6개가 한 방향을 바라보며 나란히 접시 위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충격으로 나는 오리고기 트라우마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아무거나 잘 먹지만 비주얼이 너무 생생한 음식에 심하게 '흠찟'하는 어린이 비위를 가진 포식자이다). 8년이 지난 지금 트라우마는 서서히 가라앉았고 다시 오리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생애에 걸쳐 오리고기와 나의 비위는 밀당 중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오리구이는 간단하게 빵 사이에 넣어서 샌드위치 형태나 정식 전통요리의 형태 그대로 판매하는데 마켓에서는 역시 손으로 들고 먹어야 제맛이기에 빵 사이에 낀 오리 구이를 강력 추천한다.
8. 캐제 슈패츨레 (Käsespätzle)
캐제는 독일어로 치즈이고 캐제 슈패츨레는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보다는 사실 맥주를 파는 호프집이나 부르어리 하우스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손으로 반죽한 계란 파스타가 주재료인데 파스타 반죽을 할 때 계란을 넣으면 달걀노른자의 지방과 단백질이 밀가루가 지나치게 글루텐화 되는 것을 막기에 반죽이 질겨지지 않아서 쫄깃하고 풍미도 더해진다. 수제비 같은 질감이지만 좀 더 쫄깃하고 계란 맛이 스민 파스타에 에멘탈러 치즈를 녹여 넣고 캐러멜화 시킨 튀긴 양파를 듬뿍 얹은 후 파슬리를 뿌리면 완성된다. 단순한 레시피이지만 매우 중독성이 있기에 위험한 음식 중의 하나이다. 매장 5미터 전방에서부터 이미 꼬랑꼬랑하고 고소한 치즈의 냄새가 풍기는데 이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독일 사람들이 들으면 신성모독이라 생각하겠지만 볶은고추장을 얹으면 화룡점정이다. 독일 음식이 느끼해서 크리스마스 마켓의 음식에 적응이 잘 안 되는 분들은 고추장 튜브를 가방에 지니고 다니다 치즈 슈파츨레 매장에 멈추셔야 한다. 한 그릇 주문한 후 뒤돌아서서 고추장을 넉넉하게 투입하면 삽시간에 상상을 초월하는 극락의 맛이 된다. 한국인으로 긍지를 가지고 반드시 시도해 봐야 하는 조합이다!
9. 회오리 감자 (Kartoffel Twister)
딸아이가 한국에서 이미 영접하고 왔다고 독일이 아닌 한국이 오리지널이라 힘주어 주장하는 이 회오리 감자는 그래서 소개한다. 김밥과 떡볶이는 아직 없지만 딸의 뇌피셜에 따르자면 창의적인 한국 길거리 음식이 그 기원이란다. 독일 크리스마켓에서도 당연히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아주 많다. 통감자를 껍질 벗겨 막대를 삽입해 기계에 얹으니 신기하게도 순식간에 나선형으로 잘려 나온다. 한국식과 살짝 다른 점은 전분 옷을 "두툼하게" 입혀서 보기에도 묵직하고 튀길 때 기름을 더 많이 빨아들여 칼로리가 무시무시하게 추가된다는 것이다. 얄팍하고 세련된 칩스 같은 식감보다는 두툼하면서 양 많아 보이는 비주얼을 사람들이 선호해서 그런가? 먹어 보고 싶은 것이 많은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섣불리 이것을 먼저 먹었다가 나중에 몸매가 보복을 당할 터이니 힘들지만 참고 지나간다. 쑥쑥 자라는 청소년이나 메타볼리즘이 팽팽하게 활성화된 분들, 운동량이 많은 분들은 당당하게 섭취해 보시면 된다.
플람쿠헨, 엔텐브라튼, 케제슈페츨레 등이 크리스마스 마켓의 방문객들을 독일의 과거로 이끌어준다면 새로이 시장에 진입하는 다양한 인터내셔널 푸드들은 시장의 역동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올해 나에게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마켓 중심에 들어선 채식점포였다. 사람들의 입맛이 변하면 당연히 마켓의 트렌드도 변하기 마련! 세련되고 깔끔하게 단장한 채식 점포의 메뉴 중 전통음식을 채식화 시킨 샴피뇽과 새로이 추가된 음식인 콜리플라워 튀김을 소개한다.
10. 야채 요리 (Gemüse Küche)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 채식의 바람이 불다니 이것이 웬일이냐. 소시지와 고기 없이 끼니를 해결 못 하는 자들이 널려 깔렸던 과거의 독일은 어디로 간 것일까? 독일에 놀러 오고 싶다는 지인들을 꼬시기 위해 내가 즐겨하던 농담이 '오기만 하면 공항에서부터 맥주로 비를 뿌리고 소시지 목걸이를 걸어주겠다'였었는데... 이렇게 소시지가 국가적 상징이었던 독일은 고기의 수요, 특히 돼지고기의 수요가 급감하면서 채식문화로 빠르게 전환 중이다. 얼마나 빠르게 전환 중인가 하면 지난 2년간 돼지 개체수 자체가 80퍼센트나 감소되었고 독일 내 최대 소시지 제조업체는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양돈 농가가 도처에서 도산하였다. 채식만 하겠다는 강경한 채식주의자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플렉시테리언 (flexible vegetarian)이라 불리는 고기의 소비량을 제한하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이 전 국민의 44퍼센트에 달한다. 돼지고기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지만 독일이 유독 큰 변화를 겪는 것은 소시지 및 육류 가공식품이 발암물질로 분류되었고, 이슬람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인구수 대비 돼지고기 섭취량이 자연적으로 줄어들었으며, 전쟁으로 에너지 및 비료비용이 급증한 데다가 동물 복지에 대한 규제가 농가를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채식이 대세가 되고 있고 그러다 보니 크리스마스 마켓에도 채식 점포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10-1. 볶은 샴피뇽 (양송이)
샴피뇽은 원래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의 주인장으로 대형 프라이팬에 버터와 마늘을 넣고 볶은 후에 마늘 크림소스에 찍어 먹는 요리이지만 채식 점포에서는 버터 대신에 식용유나 올리브유를 사용한다. 먹자마자 동맥이 팍팍 막혀 쓰러질 것 같은 기름진 식사가 부담스럽다면 건강식 샴피뇽을 추천한다. 크리스마스 시장마다 반드시 한 두 군데서 찾을 수 있고 어딘가 부족한 것 같은 칼로리는 마늘크림소스의 부드러움과 풍미로 바로 채워진다.
10-2. 콜리플라워 튀김
콜리플라워를 한입 크기로 잘라 머랭반죽을 씌워 노릇노릇하게 튀겨낸 음식이다. 콜리플라워는 슈퍼푸드로 알려져 있기에 아마 크리스마스 마켓의 모든 음식 중 가장 몸에 좋은 음식일 수 있겠다. 콜리플라워는 식이섬유, 비타민, 엽산, 칼슘, 철분, 마그네슘 기타 등등의 영양소가 풍부하기에 앞으로 십 년, 이십 년 한 겨울의 추위를 잘 견디면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질주하려면 자주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나의 10선 중 모든 전통음식을 제치고 올해의 그랑프리는 콜리플라워 튀김에게 주고 싶다. 집에서도 조리 가능하지만 추운 겨울 글루바인과 함께 밖에서 호호 불면서 양심의 가책을 덜 받으며 먹을 수 있는 대표적 야채튀김이다.
전통음식, 인터내셔널 푸드, 채식점포 등 결이 다른 음식들이 저마다의 매력으로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콜리플라워 튀김 예찬을 마지막으로 짭조름한 주식에 대한 분석을 마치고 다음회부터는 뱃속을 비우고 다시 간식 추앙에 나설 것이다. 마음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