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크리스마스 마켓 음식 Top 10 (1)

다분히 주관적인 뒤셀도르프 마켓의 톱 텐!

by 문맹

양심 없는 독일 중부의 날씨. 어제도, 그제도 그리고 오늘도 비바람이 몰아쳤다. 새벽 6시 30분에 출근해서 공강 없이 하루종일 수업을 해내고 집에 돌아오면 오후 4시 30분. 이른 퇴근이지만 열 시간의 집약적 육체노동으로 체력이 탈탈 털리기에 오후 시간을 알차게 보낼 전의를 완벽히 상실한 채 귀가한다. 게다가 대체 햇살을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독일의 겨울은 오후 다섯 시도 전에 진하게 어스름마저 깔린다. 갱년기 아줌마가 정신 차리고 살아내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환경이다. 그러다 보니 5시 이후에는 완전히 방전되어 육중해진 몸으로 위태로운 정신줄을 부여잡고 겨우 소파에 널브러져서 핸드폰을 하염없이 스크롤하거나 일찍 이부자리 속으로 기어들어가게 된다.


이 야속한 겨울 날씨에 체력도 의지도 바닥난 나에게 힘이 되는 한줄기 빛이 있으니 두둥, 크리스마스 마켓의 개장이다. 쳇바퀴 도는 일상의 지난함과 겨울의 우울함을 잠시나마 물리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시장! 퇴근 후 비가 주룩주룩 와도 게으름뱅이를 우산 쓰고 밖으로 뛰쳐나가게 하는 기적을 일으킨다. 하루종일 노동에 시달린 불쌍한 몸뚱이를 끌고 나가 뱃속에 기름칠도 좀 해주고 단것으로 영혼의 샤워를 시켜주면 다음 날 새벽, 다시 깜깜한 하늘을 가르고 아우토반을 질주하며 출근할 에너지가 마련된다. 남편은 내가 독일 사람들보다 더 독일 사람처럼 보이는 시기가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을 때라고 한다. 비가 와도 불평 없이 뻔질나게 시장을 다니기 때문이다.

집문을 박차고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돌아 돌아 시내로 나가면 멀리서 반짝반짝 크리스마스 마켓의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가슴이 설렌다. 거기에 쿵작쿵작 음악까지 곁들여지면 세상의 시름이 단방에 사라진다. 젊었을 때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놀기를 매우 좋아했던 나는 아는 사람이라고는 남편 밖에 없는 이역만리 독일에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했다. 자연스레 음주의 기회도 (같이 마실 사람이 남편밖에 없었으니) 사라졌고, 그러다 보니 음주실력도 형편없어졌다(애 낳고 꾸준히 셀프 트레이닝 하면서 전진했어야 하는데 아쉽기도 하다). 나에게, 가족에게 집중하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다. 애 둘 키우며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7년간을 질질 끌면서 힘겹게 박사학위를 끝내면서 취업을 위해 전전긍긍했던 나날들. 여유 있게 집안 살림을 하지도 못했고 꽁냥꽁냥 애들이랑 시간을 보낸 기억도 없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ㅁㅊㄴ처럼 널뛰기하면서 살았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불빛과 경쾌한 음악 소리를 들으면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살았던 나의 실체, 친구들이랑 몰려다니며 부어라 마셔라 하며 살았던 행복하고 철없던 소싯적 자아가 깨어나는 것 같다. 깜깜한 밤에도 사람으로 북적대고 대낯처럼 반짝이는 서울의 밤거리와 신명 나던 밤문화가 그리운 것인지, 아니면 그 시절 젊고 혈기왕성했던 내 모습이 그리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크리스마스 마켓의 불빛을 마주하면 내 안의 무엇인가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면서 따뜻한 마음이 피어난다. 그리고 그 정체 모를 그리움은 오감의 즐거움과 함께 상승 작용을 일으켜 나를 자꾸만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이끈다. 끊임없이 펼쳐진 음식 구경으로 눈이 즐거워지고 오만가지 고소함과 달짝지근한 것들의 냄새가 콧속을 후끈하게 달궈주니 마켓을 다니는 매일의 걸음은 가볍다.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의 주요 전통음식은 글루바인(Glühwein), 독일식 진저브레드인 랩쿠헨 (Lebkuchen), 구운 소시지 (Bratwurst) 등이 대표적이지만 요새는 세계 각국의 음식까지 등장하면서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고객의 취향에 맞게 진화하기 때문이겠다. 어느 날부터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크리스마스 마켓에 독일식 중화요리(Wok)인 볶은 국수를 파는 가게부터 시작해서 헝가리 길거리 음식인 튀김빵 랑고스 (Lango), 프랑스식 얇은 팬케이크, 크레페(Crepes)에 추로스 및 햄버거까지 범벅이 되었다. 이제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은 다양한 세계길거리 음식의 향연이 되어 가고 있다. 곧 한국 김밥과 떡볶이도 소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요리와 사업에 소질이 있었더라면 내가 직접 한 자리 신청해서 크리스마스 국제 시장에 한번 껴보겠지만 먹는데만 소질이 있는 관계로 상상에 그친다. 어서 실력자들이 나타나 크리스마스 마켓에 김밥 떡볶이 코너가 생기길 바랄 뿐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파는 대부분의 독일 전통 음식은 기름에 튀긴 음식, 탄수화물식이 주를 이루기에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 몇 년간 독일 전통 음식에 대한 소비가 감소했다. 그러다 보니 전에 보지 못하던 채식코너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전통음식에 마음이 더 가기에 그중에서 클래식한 독일음식 10선 만을 골라 2회에 걸쳐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슈뱅커 (Schwenker)

사실 소시지를 먹지 않고 독일 크리스마스 시장을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절 때 빠질 수 없는 음식은 브랏부르스트라고 불리는 독일의 소시지 빵인데 완벽하게 구워진 먹음직스러운 소시지가 바삭한 롤 속에 쏙 들어가 그 위에 겨자소스, 카레소스나 케첩 등을 뿌려 먹는다. 마치 우리가 배고프면 길거리에서 김밥집을 찾듯 독일에서 일상적인 길거리 음식이다. 소시지의 종류도 한꺼번에 수십 개씩 먹어 치울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뉘른베르크 소시지에서 빵 속에 하나 딱 들어가면 꽉 차는 두툼한 튀링겐 소시지까지 선택의 폭이 넓은데 이 소시지들이 일반 그릴이 아닌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릴 위에서 구워지는 것이 슈벵커이다.

슈뱅커는 삼각대에 매달린 커다란 그릴로 화염 위에서 고기나 소시지를 흔들면서 굽는 것이다. 회전그릴과 화덕의 협업이라 할까? 독일 잘란트 지방의 광부들이 처음으로 제작해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슈뱅커에서 고기나 소시지를 구우면 열이 고르게 가해지기에 빨리 타지 않고 숯불구이 같은 은은하고 특별한 맛이 난다. 그리고 주문을 해 놓고도 기다리는 시간이 즐겁다. 불구경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슈뱅커를 먹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은 그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활활 타는 화덕 위에서 수십 개의 소시지가 그네를 타고 있으니 자신의 소시지가 잘 구워져서 화덕에서 빼내어져 빵속에 안착할 때까지 진지한 모습으로 기다린다. 불 주위에 앉아 음식이 구워지는 것을 보는 것은 인간이 가진 본질적 즐거움이기에 빙글빙글 돌아가며 지글지글 구수한 냄새를 피워가며 익어가는 슈벵커를 그냥 지나치기란 쉽지 않다.


2. 라이베쿠흔 (Reiberkuchen 또는 Kartoffelpuffer)

간단히 말하면 감자 팬케이크이다. 해시브라운 (hash browns) 같은 요리인데 달걀, 우유, 소금으로 간을 한 으깬 감자를 팬케이크로 노릇노릇하게 기름에 튀겨낸 독일의 전통 감자요리이다. 잼 보다 묽고 조금 덜 달게 만든 사과소스와 함께 먹으면 꿀맛으로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진한 감자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칼로리 폭발의 주범이다. 딱 하나만 먹고 멈출 수 있는 놈이 아니기에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추운 밤 크리스마스 마켓을 휘젓고 다닐 힘을 뿜뿜 쏟게 하는 음식으로 글루와인을 퍼마시기 전 단방에 속을 채우기 안성맞춤이다. 기름에 둥둥 떠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면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나를 먹어달라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 같은 녀석들… 하나로는 분명히 모자란데 두 개째 먹기 시작하면 중독성이 있기에 멈출 수 없어 지기에 먹고 나서 지구를 백 바퀴 돌아야 한다.


3. 군밤 (Geröstete Maronen)

특별할 것 없는 그냥 군밤이지만 차곡차곡 쌓이고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수십 개의 밤 자루는 마치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함께 참가하는 축제에 온 느낌을 주기에 정겹다. 길거리 음식이 우리나라처럼 발달되지 않은 독일에서 야외에서 군밤 딱 한 종류만 파는 통나무집을 볼 수 있는 것은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뿐이다. 커다란 화덕에서 눈앞에서 구워지는 어마어마한 양의 밤 비주얼은 나의 어릴 적 군밤장수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지만 그래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제 군밤팔이마저 모두 기업화되어 봉지 속에 속살 뽀얗게 드러낸 편리한 밤을 사 먹고 껍질채 밤을 삶아 먹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기에 구워지거나 삶아지는 밤을 볼일조차 드물어졌기 때문이리라. 또글 또글 눈앞에서 구워지고 있는 알밤들을 보면 한국에서 지낸 겨울이, 가족들이랑 둘러앉아 숟가락으로 밤 속 끝까지 박박 긁어먹던 시절이 생각나 괜스레 마음이 아린다. 수백 개의 밤알이 구워지고 있는 모습은 풍요롭지만 1인분을 주문했을 때 내 봉지 안에 들어오는 밤알은 몇 개 되지 않기에 마음이 급히 쓰라려지는 불상사는 감안해야 한다.

4. 라클래트 (Raclette)

라클래트는 크리스마스 마켓 나의 최애 음식으로 단순한 요리가 최고임을 당당하게 입증해 준다. 요리 못알인 나는 두 아이의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자취생이 살아남는 법, 3가지 재료로 끼니 준비하기 등의 요리책으로 연명하며 살아왔다. 요리를 너무 좋아하는 남편과 일 년에 두 차례 씩 딸을 위해 독일로 와서 부엌살림을 담당해 주시던 엄마가 계셔서 애들을 굶기지 않고 키웠지만 정작 내가 하는 요리란 신선한 재료를 날것으로 먹거나 (이게 요리냐?) 아님 재료를 사서 1단계, 씻어서 2단계, 기름에 볶는 정도이다. 그러다 치즈를 녹이기만 해도 천상의 맛을 낼 수 있는 라클래트는 나의 시그니쳐 요리(?)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걷다가 꼴꼴한 냄새가 나면서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줄 서있는 것을 보면 십중팔구 라클래트 가게이다. 일단 무조건 줄 선 후에 발꿈치를 들어 보며 내가 몇 번째 손님인지 확인해야 한다. 라클래트는 원래 스위스와 프랑스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인기가 많았지만 요즘 독일에서도 큰 인기를 누린다. 고급 라클래트 가게는 치즈가게와 병행하기도 하는데 잘라지지 않은 커다란 둥근 원형의 통치즈를 반으로 뚝 잘라 그대로 기계에 올려 위로부터 가열해서 녹은 부분을 긁어 빵 위에 담요처럼 덮어 주면 끝이다. 치즈만을 올리기도 하고 다진 마늘과 함께 올려주기도 하는데 글루와인과 함께 먹으면 단방에 고급 레스토랑에 있는 기분이 든다.

가정에서는 커다란 치즈 덩어리를 통째로 사서 두고 먹는 일이 거의 사라져서 개량형 라클랫 치즈와 가정용 전용 그릴을 이용한다. 가정용 라클래트 그릴의 상단은 고기나 각종 야채 등 독립적으로 그릴을 할 수 있는 판과 그 아래 구워진 고기나 채소를 올려 치즈를 담요처럼 덮어 녹여 먹을 수 있게 만들어진 소형 삽 같은 판으로 되어 있다.

사진출처: www.raclette.de

아기자기한 가정용 라클랫 그릴과 달리 시장의 통치즈 그릴은 녹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기에 더욱 입맛을 당긴다. 치즈가 녹녹해지는 동안 그릴의 상단에서 바게트도 함께 굽는데 끈덕하게 녹은 치즈가 바삭바삭한 바게트에 올려져서 나온 순간 한 입 베러 물으면 차가운 겨울기온으로 순간적으로 식어가는 살짝 꾸덕해진 치즈에 입천장을 데어가며 먹는 맛이 일품이다. 황홀감으로 목이 막히는가? 그럼 글루와인을 한 모금 천천히 목구명으로 넘겨주면 된다. 그윽한 행복감으로 온몸이 전율하게 될 테니 말이다!


5. 플램락스 (Flammlacks)

플램락스는 화로구이 연어로 명칭은 소박하지만 생선 가격 자체가 워낙 비싼 독일에서는 길거리 음식이라 하기엔 민망하게 높은 가격을 뽐낸다. 우리 동네에서는 올해 11유로로부터 시작해서 판매되는데 다른 음식들의 가격이 대체로 3유로에서 8유로, 10유로를 넘지 않음을 감안할 때 비싼 편이다. 그래서인가 이 핀란드 특선 연어구이는 그 세팅도 럭셔리하다. 연어를 성공적으로 구우려면 그릴이나 화로에 부착할 수 있는 연어가 매달릴 수 있는 판이 필요하다. 그릴 창살을 사용하거나 혹은 여러 개의 나사가 달린 금속 판이나 나무 판에 연어를 얹어 세운 상태에서 굽는다. 화로는 가스 대신 실제 나무를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 너도 밤나무를 사용한다. 연어와 불 사이에 약 7초간 손을 댈 수 있을 정도의 거리와 온도를 유지해야 완벽한 화로구이가 완성된다. 양념은 소금 후추만으로도 훌륭하지만 소위 럽스라고 불리는 향신료를 문지른 옵션도 있다.

이미지 출처: https://finnvillage.de/

뒤셀도르프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젠트리피케이션과 맞물려 연어 플램락스가 더욱 고급스럽게 만들어진다. 유리로 잘 막힌 고급스러운 부스 안에서 장작이 탁탁 소리를 내며 불꽃을 튀기면서 여러 개의 구운 연어들이 캠프파이어 같은 불길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세워져 있다. 원래는 소박하게 오픈된 화덕에서 연어를 구웠겠으나 우리 동네 크리스마켓에서는 안전과 고급스러운 비주얼을 위해 통유리로 둘러싸 놓아 불똥이 튀는 위험 없이 불구경을 할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불을 볼 구 있는 로맨틱함을 잃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해 두었다.

갱년기에 오메가 쓰리가 좋다고들 하고 그것이 연어에 그득 함양되어 있다고들 하니 가격이 좀 버거워도 곧 나이 한 살 더 먹을 나를 위해 자주 챙겨 먹어줘야겠다.

바깥을 보니 또 추적추적 비가 온다. 이제 크리스마스 마켓이 시작되었기에 아직 먹어 줘야 할 것도 마셔줘야 할 것도 많은데 날씨가 제대로 추워지지 않고 계속 비만 올까 걱정이다. 비가 오면 크리스마스 마켓이 아니라 빈대떡에 파전인데...


(다음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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