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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Jul 23. 2020

산티아고 순례길 - 공유하고 나누는 경험의 소중함

5월 29일 그라뇬(Grañon)

깔사다를 지나 오늘의 종착지인 그라뇬 가는길. 힘들다는 말로는 모자라는 구간이었다.


아침부터 날씨가 궂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1년 전에도 이곳을 지날 때 비가 왔었는데, 어쩜 이렇게 똑같이 비가 내리는지.


1년 전, 알베르게를 나서자마자 내리는 비에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다행히 방수가 되는 옷이었지만 빗물이 눈앞을 가리고 진흙길에 자꾸 미끄러지는 신발 때문에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그러다 들어가게 된 골프클럽하우스 안에 있던 바르(Bar). 비에 흠뻑 젖어 바르에 들어온 내게 한 순례자가 물었다.


“Are you Ok?”

“Cold. Difficult. but happy.”


짧은 영어였지만 내가 하고자 한 말은 고스란히 전달됐던 모양이다. 내 말에 그 순례자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함께 웃어줬었다.

산토 도밍고 데 라 깔사다 가는 길. 내리는 비에 순례자들이 비옷을 입고 걷고 있다.

지난해 비를 맞으며 걷던 내게 천국과도 같은 따스함과 포근함을 주었던 골프클럽하우스(Rioja Alta Golf Club)를 다시 찾았다. 클럽하우스 내에 있는 바르는 여전히 따스했다.


작년에는 비를 맞고 들어갔었는데, 올해는 바르를 나오니 비가 내린다. 비를 맞으며 걷자니 추위와 함께 서둘러야 한다는 강박이 찾아왔다.


그래도 참 다행인건 행복하고 즐거운 길이었다는 것.


깔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가 내려다보이는 길에서 반가움과 즐거움을 만끽하고 까미노를 걷는다는 데서 오는 감동을 십분 만끽했다. 하지만 깔사다를 지나 다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발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쉬었는데도 비와 추위에 서두른 후유증인지 발뒤꿈치가 저리고 아파온 것이다.


쉬어가고 싶지만 쉬었다가 다시 걷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을 주기에 쉰다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특히 엉덩이를 붙일만한 곳도 보이지 않으니 계속해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발가락의 통증 때문에 발전체에 힘을 주어 걷게 되고 그것은 발뒤꿈치가 무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힘에 부쳐 자꾸만 멈춰서고 고통을 호소하고… 혼자였다면 툴툴대면서도 쉬어가거나 멈춰 섰을 텐데 곁에는 남편이 있었다. 그는 본인도 힘들 텐데 그 와중에도 가장 먼저 날 걱정하고 배려해주려고 노력했다. 때문에 의지도 되고 힘도 났지만 한편으론 내 속도에 맞추느라 천천히 걸어야하고 날 신경 쓰느라 바쁜 그것이 미안했다.

먼저 가도 되고 가다가 쉬고 있으면 만나도 되건만 항상 기다리고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 주는 것이 ‘내가 짐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자책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힘이 되어주고 싶은데 나만 의지하고 짐이 되고 발을 붙잡는 것 같은 기분. 그러다 ‘힘들면 배낭 들어줄까?’라는 말에 짜증을 부리고야 말았다.


너무 고마운 만큼 미안하고 그런 내가 미운만큼 바보같이 착하고 고마운 사람에게 짜증을 부린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먼저 한 번 걸어본 사람으로서 힘이 되어줘야 할 사람은 나인데 도리어 짐이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화를 도리어 짜증으로 풀어버리는 내가 미웠다.


쉽지 않다.

작년엔 도대체 어떻게 걸었나 싶기도 하고, 작년에는 혼자서도 잘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왜 이렇게 힘든가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잘하는 것 같은데 난 왜 못하는가 싶기도 했다.

참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길이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길이었다.     


그라뇬에서는 특별한 저녁을 보낼 수 있다.

이번에 머문 알베르게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모든 순례자들이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만드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이 힘을 모아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 서로 하겠다고 나서는 통에 할 일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손을 모아 재료를 준비하고 상을 차린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둘러 모여 함께 미사를 듣고 자기 나라 말로 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진다. 한국에서 온 순례자는 우리뿐이라 대표로 나서서 소개를 해야 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말로 소개를 한다는 것, 그게 또 참 어색했더랬다.


샐러드에 빵, 감자스튜, 요거트까지. 푸짐한 만찬을 즐기고 다른 순례자들에 섞여 수다를 떨며 설거지를 하고 정리를 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처럼 보여서 꽤 신선한 경험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겪지 못할 경험을 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가. 까미노는 선물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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