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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Jul 26. 2020

산티아고 순례길 - 오지랖과 매너 사이

5월 30일 벨로라도(Belorado)

나바라(Navara) 지방에서 리오하(La Rioja)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제는 레온(Castilla y León) 지방이다.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를 먹은 후 출발하니 오늘은 평소보다 느긋하게 출발하게 되었다.


레데시야 델 까미노(Redecilla del Camino)에서 성모마리아 교회(Iglesia de la Virgen de La Calle)의 성수반을 보고 싶었지만 이른 아침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은 탓에 아쉽게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교회에서 찍어주는 세요는 받았으니 부분 성공인가?

벨로라도 입구

벨로라도에도 수영장이 있는 사립 알베르게가 있어 목적지로 삼았는데, 우리와 같이 생각한 사람이 많아서인지 자리가 없어 공립 알베르게로 옮겼다.


샤워를 하고 점심을 먹고자 외출을 하던 우리는 일본에서 온 순례자를 만났다. 그는 무릎이 아파서 걷기가 힘들다며 공립 알베르게를 알려달라고 도움을 청해왔다.


그렇지 않아도 나 역시 발이 아파 고생하고 있던 터라 그의 고충이 얼마나 심할지 공감이 갔다. 그리고 처음 까미노를 걸을 때 만났던 한 순례자가 떠올랐다.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에 머물렀을 때 일이다.


2층 침대에 배정을 받고 짐을 풀고 있는데, 침대 1층의 남자 순례자가 말을 걸어왔다. 외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터라 대충 ‘Yes'와 ’Thank you'로만 대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유독 미안하다는 말이 강하게 들려왔다. 자세히 보니 그는 한쪽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깁스한 팔과 침대를 번갈아 가리키며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한 나는 고맙다고 대충 둘러대며 대화를 마쳤는데, 뒤늦게 그가 한 말을 알아듣고 헛웃음을 쳤다.


‘너와 자리를 바꿔주고 싶은데, 내 팔이 아파서 바꿔줄 수 없어. 미안하다.’


예의상 하는 빈말일 수도 있겠지만, 까미노 초반에 받은 양보의 미덕에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었다. 그리고 나도 도움을 줄 일이 생기면 꼭 그 순례자처럼 해주리라 다짐했었다.


마침 공립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나오는 길이었기에, 우리는 열의에 차서 길 안내에 나섰다. 문제는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우리 역시 길을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건물에 무수히 많은 골목에서 결국 함께 길을 잃고야 말았다.


우리까지 길을 헤매자 일본인 순례자는 체념하고 사립 알베르게를 찾아 떠났다. 헤어지면서 고맙다고 말하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잘 모른다고 말했다면 헤맨다고 고생은 하지 않았을텐데. 괜한 오지랖에 고생만 시킨 것 같아 미안해졌다.


그렇게 일본인 순례자와 헤어져 늦은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데, 알베르게에서 일본인 순례자와 재회했다. 우리와 헤어져 가던 중에 얼마 못가 공립 알베르게를 찾았다며, 다시 만나니 반갑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 것일까. 오지랖도 추억이 되고 고생은 반가움으로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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