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10:30 비야프랑카 몬떼스 데 오까(Villafranca Montes de Oca)
AM 10:45 성당(Iglesia de Santoago Apostol)
PM 12:30 스페인 내전 추모비(fosa común)
PM 02:50 오르떼가 점심 식사
PM 04:20 아헤스 도착
하루 일정을 정리하고 나니 많은 곳들을 지나온 것이 새삼 실감이 난다. 평소 21~24㎞를 걸었다면 오늘은 28㎞를 걸었는데, 분명 지금까지 중 가장 먼 거리를 걸었건만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산과 언덕, 들이 골고루 펼쳐진 구간인데다 맑은 날씨에 시원한 바람, 아름다운 나무와 구름이 함께하니 먼 길임에도 즐겁게 걸을 수 있었다.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며 한 걸음, 마른 목을 축이며 한 걸음, 사진 한 장으로 추억을 남기며 한 걸음.
그렇게 하루하루를 무사히 걷는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Sin Prisa, Sin Pausa! (서두르지 말되, 멈추지 마라.)
그래서일까? 우리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눴다. 연애만 8년. 수다쟁이인 나와 달리 동행인은 과묵한 편이라 생각보다 대화의 질이 높지는 않았다. 대부분 내가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면 듣고 호응해주는 편이었다. 연애 초반에는 그것 때문에 다투기도 참 많이 다퉜더랬다.
그런데 과묵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까미노에서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말을 꺼내고 제안하고 질문도 늘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으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게 되는 것일까? 24시간을 함께하고 있다는 동질감, 같은 것을 보고 느끼고 있다는 공유의식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는 오랜 시간 함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누게 된 대화로 알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던 서로의 진심과 고민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생각만하고 나누지 않았던 ‘2세 계획’과 ‘이직(동행인은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반대를 무릎 쓰고 퇴사를 했다.)’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8년이라는 연애 기간에는 생각지 못했던 40대의 우리, 60대의 우리, 은퇴 후의 우리에 대해서도 상상해보며 자잘 자잘한 계획들도 세웠다.
아헤스 입구의 수도꼭지.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들이 빈 물통을 채워간다.
처음 나는 까미노란 각자 다른 나라에서 온 처음 만난 순례자들과 대화하고 함께 걸어가면서 배우고 느끼고 생각하는 곳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1년 전 혼자 까미노를 걸을 때는 다른 순례자들과의 대화에 적극적이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까미노는 ‘나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는 곳이었다. 미처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고 외면하고 묻어뒀던 진심들을 되돌아본다. 진짜 ‘나’ 그리고 ‘우리’를 들여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