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는 소중해/제육볶음/Bon Iver-SPEYSIDE
[오늘의 스토리]
방귀는 부끄러운 현상이다. 아이들에게는 웃음벨이지만 사춘기 즈음 되면 방귀는 사람들 앞에서 감추고 싶은 그 무엇이 된다.
근데 이 방귀는 사실 참으로 소중하다. 몇 년 전 쌍둥이 아이들을 낳느라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입원해 있었다. 애를 낳았는데도 배가 빵빵하게 부풀고 너무너무 아파서 다른 원인이 있는 게 아닐까 엑스레이도 찍어봤는데 결론은 ‘가스가 가득 차서’ 그런 거였다. 가스를 빼려면 운동밖엔 답이 없어서, 병원을 종횡무진 걸어다니고(수액걸이대 때문에 계단 오르내리기는 못했다) 침대 위에서 고양이 소 자세도 하고 온갖 짓을 다한 끝에 겨우 방귀가 나왔다. 부우우웅. 사흘 만에 나온 방귀는 꼭 뱃고동 소리 같았다. 가스가 꽤 많이 차있어서 한 번으로는 끝나지 않고 여러 번에 걸쳐서 빼내야 했다는 게 복병이었지만, 아무튼 열심히 쏘다닌 끝에 가스를 모두 빼내고 지금은 술로 채운 지방만 배에 쌓여 있다.
그래서 결론은 방귀란 소중하다는 것.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써봤다.
[오늘의 풍경]
저녁식사로 차렸던 제육볶음과 달걀말이. 직장인의 정석 점심메뉴이자, 대한민국 남자들의 소울푸드다. 그냥 대충 감으로 만들어도 맛은 좋지만(요리를 잘하는 편이다), 입에 짝짝 붙는 양념을 구현해내기 위해서는 ‘우리의식탁’이라는 앱의 레시피를 적극 활용하는 편이다. 앱에 나오는 레시피는 간이 좀 센 편이라, 채소나 고기는 젹혀있는 양보다 좀 더 많아도 괜찮다.
이런 양념불고기 종류는 지방이 물컹하게 씹혀서 싫어하는데, 대패삼겹살로 만들면 식감도 거북하지 않고 좀 더 바싹 구울 수도 있어 먹기 편하다. 여기에 콩나물을 넣으면 콩나물 불고기다.
이렇게 저녁을 차려내면 남편은 ‘뽀뽀가 나오는 맛’이라고 한다. 매운 걸 좋아하는 딸아이도 달라고 했다. 이제 온가족이 고추장 제육볶음을 먹을 수 있는 날도 머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제발 빨리 그 날이 와서 애들 반찬을 따로 만들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주부의 고충으로 오늘의 풍경은 마무리.
[오늘의 음악]
S P E Y S I D E - Bon Iver
애플뮤직에서 즐겨듣는 플레이 리스트 중에 ’카페에서‘라는 플레이 리스트가 있는데, 클레어오나 사브리나 카펜터스 같은 요즘 가수들 사이에서 이 반가운 이름을 발견하고 올해 신보가 발매됐다는 걸 알았다. 오랫동안 ‘본 이베어’가 아니라 ‘본 아이버’인줄 알았는데, 뭐 그건 그렇다치고 디스크 2개로 구성된 앨범 수록곡 중 고른 것은 이 곡. 그냥 이유는 없고 스페이사이드의 추억을 회상하며 골랐다.
이 노래에 대해 찾아보다가 의외로 가사에 나오는 ’speyside’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놀랐는데, 스페이사이드는 스코틀랜드의 지명이며 싱글 몰트 위스키로 유명한 곳이다. 피트 향이 강하지 않고 프루티하고 꽃향기 풍부한 풍미가 특징으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발베니, 글렌피딕, 글렌리벳이 이곳의 위스키다. 과거에 취재로 스코틀랜드 증류소 투어를 했던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스페이사이드보다는 아일라 쪽이 취향이지만 스페이사이드 위스키도 무난해서 즐겨 마신다.
다시 노래 얘기로 돌아와서. 회한이 짙은 가사가 참 우울한데 한밤에 스페이사이드 위스키 한 잔 마시면서 이 곡을 들으면 한층 우울할 거 같으니 추천하진 않는데, 기분과는 별개로 위스키랑 이 곡은 참 잘 어울릴 것 같다.
발행의 변(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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