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제비 열네 번째 소식, 조금 긴 글
다이어리와 스티커와 마스킹테이프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예쁜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먹고 싶은 건 아낌없이 사주셨으면서도 실용적이지 않은 것에는 지갑을 열지 않으셨던 부모님 때문에 가질 수는 없었다. 게다가 위로는 오빠가 있어 학용품의 대부분은 오빠가 쓰던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귀엽고 예쁜 것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중학교 때는 다이어리 열풍이 불어 많은 아이들이 열심히 다이어리를 꾸몄다. 이른바 ’다꾸‘의 태동기였다. 연예 잡지에서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 사진을 오려 붙이기도 하고,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다. 당시 친구 중엔 손재주가 아주 좋은 아이가 있어서 팔아도 될 만큼 다이어리를 예쁘게 꾸몄었다. 그 아이는 폼폼푸린이 그려진 스티커나 다이어리 용지를 잔뜩 가지고 있었다. 요즘에야 천 원으로도 제법 귀여운 스티커를 살 수 있지만, 아직 국내 디자인 문구가 발달하지 않았던 그 때는 일본산 스티커가 가장 귀여웠고, 그 일본산 스티커는 한 장에 3-4천 원은 줘야 살 수 있었다. 한 달에 많아야 3만 원 정도 하는 용돈으로는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 금액이었다. 당시 일본음악에 빠져 있어 장당 3만 원이 넘는 CD를 사려면 한 달 용돈을 꼬박 모아도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나름대로 손재주가 있어 가진 재료를 이것저것 활용해 다이어리를 꾸미긴 했지만, 아무래도 재력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참 부러웠었다.
상황이 좀 달라진 건 대학생이 되어서였다. 집을 나와서 살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생전 만져본 적 없는 액수의 돈이 통장에 찍히면서 생활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 점심밥은 삼각김밥과 칼로리바란스로 때우고, 저녁에 선배들에게 술을 얻어먹으며 하루 필요한 칼로리를 채웠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 옷을 사고 귀여운 물건을 샀다. 그 때 한달 용돈이 30만 원이었는데, 30만 원을 받으면 학교를 다니기 위한 한 달짜리 지하철 정기권을 사고(정확한 금액은 기억 안 나지만 3만 원 가량이었던 것 같다) 남은 돈은 거의 다 쇼핑에 썼다. 예쁜 옷과 예쁜 물건. 옷차림도 화려했지만 다이어리도 화려했다. 처음으로 일본여행을 가선 디즈니 스토어에서 마리 스티커를 사고, 다이칸야마 백화점에서 산리오 스티커와 편지지 세트를 샀다. 정말 마음에 드는 것들은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모셔뒀다.
당시 썼던 다이어리를 많이 버린 게 좀 아쉽다. 대학교 시절 마지막까지 썼던 다이어리는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한 번 내놨다가 아까워서 다시 가져왔는데 정말 잘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거기엔 지금 남편과의 첫 만남부터 알콩달콩한 연애 초기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는 못할 내용이지만 그냥 갖고 있다. 나이가 칠십 정도 되면 남편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영원히 같이 보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전남친 욕도 쓰여 있다).
사회인이 되어서는 거의 업무 기록과 스케줄 관리용으로 다이어리를 썼다. 화려하게 꾸미지는 않았지만 이따금 업무 관련 미팅을 하거나 야구 덕질을 하면서 받은 스티커를 붙이곤 했다. 가끔 돈을 주고 스티커를 사곤 했지만 아주아주 마음에 드는 것들만 샀기 때문에 역시나 붙이진 못하고 모셔뒀다.
모셔둔 스티커를 마침내 쓸 수 있었던 건 10년도 더 지나서였다. 물건은 쓰임새에 맞게 쓰여야 가치가 있다. 스티커도 마찬가지였다. 알고는 있으면서도 실천하긴 어려웠다. 차곡차곡 모아둔 스티커는 ‘어딘가 더 예쁘게 쓰일 장소’를 위해 계속 파우치 안에 잠들어 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면서 스티커를 마구 붙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아껴왔던 스티커 파우치를 열었다. 이미 십 년 이상 지나 유행이 지난 것도 있고 더 이상 예뻐 보이지 않는 것도 많았다.
그래도 정말 좋아하는 스티커는 포기할 수 없어 다이어리에 붙였다. 딸아이에게 스티커를 사준다면서 슬쩍 몇 개는 내 다이어리에 붙인 적도 있다.
스티커와 마스킹테이프는 너무 많아서 예쁜 걸 발견해도 ‘어차피 집에 많은데 뭐’ 하며 내려놓곤 했다. 색연필과 펜은 평생 다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있다. 사두고 아끼느라 쓰지 않는다.
다이어리도 마찬가지였다. 12월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음 해 다이어리를 고심하며 골라 사곤 하지만, 열심히 쓰는 기간은 길어야 두세 달 남짓이었다. 4, 5, 6월은 텅빈 백지로 보내고 한여름이 되어서야 정신 차리고 다이어리를 펴봤다가 또 몇 주 쓰고는 만다. 그러면 어느덧 11월이다. 다시 열심히 쓰며 ‘내년에는 다이어리 꾸준히 써야지’ 결심하는 패턴이다. 이걸 수년 반복하다 보니 작심삼일에 무계획적인 나의 게으름에 질려 버렸다. 해를 거듭하다보니 다이어리도 쌓여가는데, 결국에 나는 천하에 쓸모없는 쓰레기를 생산해내는 게 아닌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다이어리 쓰기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일상을 기록할 방법은 차고 넘쳤다. 아이폰의 일기 앱도 자주 쓰고 있었고, 공유하고 싶은 일상은 블로그에 적으면 됐다. 오히려 곳곳에 산재한 내 기억은 혼란스러웠다.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덕질도 마찬가지였다. 30대 들어 타지 생활을 하면서 외로운 마음에 아이돌에 빠졌는데, 그저 야구 경기만 보고 응원 굿즈 몇 개만 사면 되는 야구 덕질이나 고작 한정판을 사전예약해서 사는 게 전부인 게임 덕질과는 달리 아이돌 덕질은 돈을 쓸 곳이 무궁무진했다. 수강신청보다 더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티켓팅과 공식 굿즈 사기, 공식 굿즈보다 더 예쁜 비공식 굿즈, 내 최애 얼굴이 박힌 광고 제품까지 살 것이 너무 많았다. 몇 년 간은 정신줄을 놓고 아이돌 덕질에 몰두했다.
아이들이 태어나며 방 안 가득 쌓인 굿즈를 정리했다. 더 이상 물건을 둘 곳도 없었고 쓸 돈도 없었다. 취향이 한결 같은지 같은 기획사의 후배 아이돌 역시 좋아하게 됐지만 선뜻 굿즈에 돈을 쓰기는 꺼려졌다. 고심에 고심을 더한 끝에 짐이 되지 않을 정도의 물건만 샀다(그래도 안 살 수는 없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이 짓도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10대, 20대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곳에 잘못 찾아간 아줌마의 겸연쩍은 마음이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하잘것없는 쓰레기가 되어버릴 지라도, 내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포기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인간이란 이 우주의 먼지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그렇다고 목숨을 포기하지는 게 정답은 아닌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 보인다고 해도, 좋아하는 걸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매년 다이어리를 산다. 문구점이나 소품샵에서 마음에 드는 스티커나 마스킹 테이프를 발견하면 구매한다. 아마 나는 귀여운 것을 아주 좋아하는 할머니로 늙지 않을까?
발행의 변(辨)
: 좋은 소식을 가져온다는 제비처럼 소소한 일상 소식을 나르는 매거진. 종종 하잘것없지만 복잡한 세상 속에서 피식 웃을 수 있는 모먼트를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 가지 주제로 짧은 글을 쓰지만, 가끔 이렇게 하나의 주제로 조금 긴 글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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