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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비 - 열다섯 번째 소식

소금빵이 불만족스러웠던 건에 대하여/벽걸이 달력/The Killers

by 릴리리

[오늘의 스토리]

아침 댓바람부터 후다닥 달려가 사온 소금빵이 불만족스러웠던 건에 대하여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아침부터 미친 듯이 어떤 음식이 먹고 싶어 온통 그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보통은 아침에 출근해 점심 메뉴를 정하고, 오전 시간 내내 점심 식사만 생각하며 마음 속으로 입맛을 다실 때가 그렇다.

오늘은 출근을 하지 않는 날었지만 아침부터 맛있는 빵이 먹고 싶었다. 편의점에서 연세우유크림빵을 사먹을 수도 있었지만 더이상 식물성 크림은 먹고 싶지 않았다. 크림이라면 우유로 만든 진짜 크림, 동물성 크림을 듬뿍 넣은 것이나 진한 초코 크림이 들어갔거나 아무튼 무언가 맛있는 빵이 먹고 싶었다. 피낭시에나 마들렌 같은 구움과자는 또 싫었다. 내 위장이 원하는 건 발효과정을 거친 진짜 빵(구움과자가 가짜라는 건 아닙니다. 오해의 소지 없길 바랍니다)이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바로 집 근처 빵집엘 가야겠다고 결심, 차 키와 지갑과 장바구니를 야무지게 챙겨 나가 아이들을 어린이집 버스에 태워 보냈다. 서둘러 빵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 빵집’으로 생각할 수 있는 옵션은 두 가지. 지역에서 유명한 베이커리의 동네 분점과 재료를 아낌없이 쓰지만 가격이 저렴해 가성비가 좋은 곳으로 유명한 빵집이었다. 분점은 자주 가니까 오랜만에 가성비 빵집으로 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빵을 골랐다. 오랜만에 가보니 정말 가성비가 좋았다. 소금빵이 2천8백 원, 큐브식빵 크기의 묵직한 올리브 치즈 식빵도 3천8백 원이었다. 빵을 네 개나 담았는데 1만3천2백 원 밖에 안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기대감에 부풀어 커피를 내리고 그동안 발뮤다 토스터에 소금빵을 살짝 데웠다. 빵 반죽 자체는 참 맛있었다. 결이 좋게 찢어지고 부드럽고 포근하고, 혀에 착 감기는 정제 밀가루의 맛이 사랑스러웠다. 근데 녹아내린 버터로 빵 안이 가득 젖어있을 것을 예상하고 속을 뜯었는데, 안은 그저 빵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짭조름한 버터는 빵의 바닥에만 뭍어 있었다. 왜일까. 가염버터를 쓰니까 너무 짜다고 느껴서였을까. 이 소금빵은 내가 알던 그 소금빵이 아니었다. 빵은 맛있었지만, 다시 여기서 소금빵을 사먹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네이버 AI가 소금빵이 유명하다고 요약해줘서 일부러 골랐는데, 참 실망스러웠다. 역시 남의 말을 무분별하게 믿으면 안된다.

아, 하지만 올리브 치즈 식빵이나 다른 빵은 참 맛있었으므로 다른 빵을 먹으러 가야겠다.

빵은 죄가 없다

[오늘의 물건]

매년 벽걸이 달력을 산다.

벽에 걸지는 않고 한 장씩 뜯어서 냉장고 문에 붙인다. 달력에는 스케줄을 써놓는다. 프리랜서다 보니 스스로 일정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일정은 구글 캘린더에 입력해 놓지만 2년에 한 번 정도는 일정을 완전히 까먹어버리는 일이 발생해서 눈에 잘 보이는 곳에도 써놓기로 했다.

몇 년 전 일이다. 유유자적 해변을 거닐면서 ‘오늘은 참 여유롭고 좋군’ 하면서 바닷가에 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 수신인을 보고 소름이 쭉 끼쳤다. “어디세요?” 나를 찾는 전화. 그 시각에 (업무)미팅이 있다는 걸 완전히 잊어버렸던 것이다. 당장 차를 타고 달려가 10분만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정말 프로페셔널하지 못했던 경험이다.

그 후로 매년 달력에도 일정을 써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냉장고 문 앞을 오갈 때마다 들여다 본다. 몇 가지 종류의 달력을 사봤는데 3년째 쓰고 있는 건 페이퍼리안의 라이프가드너 벽걸이 캘린더. 펜선 없이 그린 꽃 일러스트가 마음에 든다. 따로 스케줄을 적는 란은 없는데, 날짜 위에 겹쳐서 쓴다. 그래도 가까이서 보면 잘 보인다. 몇 년 째 같은 시리즈를 사다 보니 올해는 꽃이 좀 지겨워서 과일 시리즈로 샀다. 가지에 달린 과일도 귀엽다.

벌써 9월이다. 9월의 과일은 무화과. 참고로 8월엔 청포도였다. 내년엔 다시 꽃으로 사볼까 싶다.


[오늘의 음악]

Miss Atomic Bomb - The Killers

더 킬러스는 과거 월드투어의 일환으로 한국 공연을 기획한 적이 있는데, 갑작스런 멤버의 부친상으로 공연이 취소되었었다. 예매해놓고 공연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나로서는 아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지만 상을 당했는다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후 더 킬러스는 현대카드의 초청으로 다시 내한이 기획됐고, 이번에는 정말로 왔었다. 이때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 광고에 이 곡이 쓰였다. 당시 최신 발매였던 앨범 곡을 가져다 쓴 것까진 좋았으나, 이 곡을 아주 좋아했던 나는 당연히 공연에서 이 곡을 해줄 것이라 기대했고, 결과적으로 이 곡의 라이브를 볼 수는 없었다. 좋았지만 실망스러웠던 경험이다. 어째 오늘의 제비는 실망으로 시작해서 실망으로 끝나지만, 그래도 여전히 더 킬러스는 좋아한다. 브랜든 플라워스 원맨밴드라도 좋아한다. 멤버들 사이가 어쨌건 브랜든 플라워스 종교가 어쨌건 노래만 좋으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듣는 미스 아토믹 밤. 대체 원자폭탄이 무슨 상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The Killers의 <Battle Born> 앨범 아트커버(2012 The Island of Def Jam Music Group)

발행의 변(辨)

: 좋은 소식을 가져온다는 제비처럼 소소한 일상 소식을 나르는 매거진. 종종 하잘것없지만 복잡한 세상 속에서 피식 웃을 수 있는 모먼트를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월-금 주 5회 발행. 공휴일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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