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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Dec 23. 2020

결혼 11년차, 아이를 가져볼까 합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쯤은 아이를 가지려는 노력을 해봐야겠다. 그렇게 결심한 것은 <결혼 10년차 아이는 없습니다만> 원고를 마친 어느 날이었다. 사실 둘만 사는 삶에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행복했다. 그런데도 불쑥 불쑥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후회하면 어떡하지? 시도라도 해봤다면 그래도 ‘노력했는데 안됐잖아, 아이가 없을 운명인 거야하고 마음놓고 체념할  있을텐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나이만 먹어버리면 후회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현재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중엔 후회하게  테니까, 지금 하고 싶은  선택해’.  문장은 중학교 1학년 이래로  삶의 모토였다. 결국엔 가지 않은 길을 궁금해  테니까. 그런데  말은 어느 정도는 맞지만  어느 정도는 틀렸다. 선택에 따라서 후회의 정도가 엄청난 차이가  수도 있을 거다.

아이가 생긴 지금도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한  결정이 잘한 것인지는   없다. 그런데 원래 인생이 그런  아니던가? 잘한 선택인지 잘못한 선택인지, 죽는 순간에서야, 아니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모를 수도 있다.

 



1.

결혼하고 10 동안 아이가 없었다. 의심할 만한 순간은 많았다. 생리가 예정일보다 하루이틀 늦어질 , 왠지 속이 울렁거릴 , 평소에 먹고 싶지 않던  땡기거나  , 어김없이 ‘혹시?’하는 의심이 고개를 처들었다. 하루를  참고 해본 임신 테스터기(이하 임테기) 언제나 단호하게  줄을 보여줬고 다음 날이면 약속한 것처럼 생리가 터졌다.   참고 임테기를 해본 다음 날이었다.

그러면 이상하게 약간의 아쉬움과 안도감이 들었다. 아이를 전혀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아이를 가질 것이라 생각해왔다. 나는 결혼을 일찍  편이어서(친구와 대학 동기들  가장 먼저 결혼했다) 결혼 초반에는 어리다는 이유로 아이를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아직 어린데 ,   놀고 싶어, 결혼은 했지만 나는 결혼 전이나 변함없는걸, 여전히 젊고, 힙하고, 쿨하고, 멋지고.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 샌가 젊지 않은 나이가 되어 있었다. 서른 즈음이 되면 아이를 가져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른에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시작했다. 우리보다  년이나 늦게 결혼한 친구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우리는 아이 없이 살았다.

모두가 우리를 부러워했다. 1년에   이상은  해외여행을 갔고, 매주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기러 다녔으며, 매년 락페스티벌에 갔고, 삼십만 원짜리 레고도 척척 샀다.  생기면 그렇게  살아. 자유로워 보여서 좋다. 부러워. 아이가 하나  있는 친구들은 그렇게 말했다. 우리도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남편을 닮은 귀여운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없는 삶도 행복했다. 부부 사이가 너무 좋으면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던가? 우리가  그랬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서른다섯이 되어서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아무래도 어떤 분기점에 다다르면 지금까지의 인생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삶은 그럭저럭 즐거웠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남편의 지방 발령을 따라  강릉은 살기 좋은 곳이었다. 공기도 좋고 한적하고, 차도  막히고. 오랫동안 생각만해왔던 장편 소설을 완성해서 독립출판으로 책을 냈고,  소설을 좋게 봐준 출판사가 있어 이북도 냈다. 수필집도 냈다. 지역 문화예술계에서도 나름대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때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상에 남길  있는 가장  유산은 위대한 문학작품 같은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아닐까 하고.  어떤 사유나 사상이 언제나 옳고 그것을 백퍼센트 물려줄 수도 없으며 자식은 나의 미니미가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크게 나의 영향을 받는 존재가 자식 아닐까?

덜컥 아이가 생긴다면 ‘이것  어쩔  없군하고 낳아서 기를텐데, 생기지가 않으니 선택해야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강릉에 내려올 때만 해도 금방 아이가 생길 거라 자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과거라면 없는대로 살겠지만 우리는 21세기, 게다가 난임시술이 매우 발달한 나라에 살고 있다. 아이를 가지려는 의학적 노력을 해볼  있는 상황이었다.

해보지 않고 후회하기 보다, 해보고 나서 후회하자.

 시도해본다고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그렇게 난임시술의 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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