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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Aug 21. 2024

우산과 목도리는 필요없지만 일기예보는 챙겨야해

눈 조심 산불 조심

서울에 살 때는 방한용품이 필수였다. 집에서 나와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칼바람을 피하게 해줄 두툼하고 커다란 목도리는 펼치면 무릎담요로 써도 될만큼 널찍한 크기라 여러모로 유용하게 썼다.

꼭 지하철을 탈 때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출근할 때는 집 앞에서 마을버스를 종종 타곤 했는데, 버스를 기다릴 때도 목도리는 신체 중 유일하게 드러난 얼굴을 칼바람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다. 버스정류장은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돼서 편했지만, 한파가 몰아닥친 날은 계단 좀 오르내려도 지하철역 안이 그립곤 했다.


몇 년 전 바라클라바 유행 속에, 서울에 계속 살았더라면 바라클라바를 두 개 쯤은 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근한 니트 재질 하나, 보기만 해도 땀이 날 것 같은 두툼한 패딩 재질로 하나. 하지만 강릉에서는 사도 크게 쓸 일이 없기 때문에 사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나가 목적지 바로 앞에 주차하고 후다닥 안으로 들어가는 생활이다.


마찬가지로 우산도 그다지 필요가 없다. 과거엔 장마철이 되면 예쁜 레인부츠나 우산에 눈길이 가곤 했는데, 지금은 ‘비가 많이 오면 저절로 세차가 되니 좋군’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다. 물이 고여 있는 곳을 지나가면 ‘무료로 하부 세차가 되니 좋군’ 생각하며 껄껄 웃는다.


이건 꼭 강릉에 살아서가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에 따른 것이겠지만 아무튼 내 경우에는 그렇다.


추위에는 둔감해졌지만 그 어느 때보다 기상 상황에는 민감하다. 특히 신경쓰이는 것은 겨울의 폭설과 봄의 건조함이다.


2011년, 1년 동안 강릉에서 산 적이 있다. 남편의 첫 지방 발령지였고 결혼하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강릉에 원룸을 얻어 평일엔 강릉에 있고 주말이면 서울 집에 올라가 지냈다(참 비효율적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 해 2, 3월에 눈이 아주 많이 왔다. 10센티미터도 넘게 쌓여있는 눈은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대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아주 놀라운 광경이었다. 제구실을 못하는 도로 위엔 도저히 나아갈 수가 없어 그냥 두고 간 자동차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신호등 위에 눈이 두껍게 쌓여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도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다니? 여긴 정말 설국이자 알래스카였다. 집 근처 동네 미술학원 앞에는 학생들이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글루가 있었다. 안에는 누가 갖다놨는지 작은 무릎담요도 있었다. 아주 낭만적이었다.

집에서 내려다본 눈 내린 다음 날의 마을 풍경. 여름에 보니 참 시원하고 좋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나 다시 마주한 강릉의 눈은 예전같은 파괴력은 덜해졌어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게다가 나는 더 이상 세상이 온통 장밋빛이었던 20대가 아니었다. 보살펴야 할 아이들이 생겼고 날씨에 상관없이 해야할 일들이 있었다.

널찍한 마당이 매력적인 우리 아이들의 어린이집은 들어가는 길이 좁은 비탈길인 탓에 눈이 내리면 등하원 버스를 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 괜한 모험을 감내하고 싶지 않아 일정을 미루고 아이들과 집에서 지냈다. 눈이 좀 그치면 집 앞 놀이터에서 눈사람도 만들었는데, 쌓는 것보다 부수는 것이 좋은 개구쟁이 아들은 엄마의 눈사람 머리를 날려버리는 걸 좋아했다.

이렇게만 쓰면 참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인데, 어쩔 수 없이 나가야하는 상황이라면 참 곤란하다. 눈 내리는 도로는 미끄러운 얼음을 한겹 씌워놓은 것과 같아서 줄줄 잘 미끄러지고, 대중교통은 기약이 없다.


대신 제설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다. 서울에선 눈이 4센티미터만 와도 며칠 동안 차가 도로를 기어다니는데, 강릉에서는 다음 날이면 웬만한 도로는 무리없이 다닐 수 있다. 빠르고 신속하다. 실제로 강릉시청 뒤편 주차장엔 커다란 제설차가 몇 대나 있어, 언제나 겨울의 폭설에 대비하고 있다. 가끔 일 때문에 근처를 갔다가 제설차를 마주하면 왠지 모를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낀다. 대신 도로에서 치워낸 눈은 어쩔 수 없이 옆 인도에 쌓이는데, 때문에 걸어다닐 곳이 없다. 가끔 도로를 걷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눈 때문에 인도를 다닐 수 없어서 그런 거다.


근데 강릉에서는 걸어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유일하게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밤늦게까지 목격할 수 있는 기간이 단오제 때인데, 이건 단오제 얘기를 할 때 풀어보도록 하겠다.


건조함도 민감한 문제다. 바닷가 근처라 일년 중 대부분은 높은 습도와 싸우지만, 봄에는 건조해서 산불이 나기 쉽다. 이사 오고 얼마 되지 않아 강릉에 큰 산불이 세 번이나 나서 안타까운 소식을 많이 접했다. 그중에는 퇴직금으로 전원주택을 짓고 사시다 산불로 전재산을 잃고 결국엔 돌아가신 분도 있었다. 강릉시 성산면과 삼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났을 땐 집에서 산너머 시뻘건 불길이 보일 정도였다. 캄캄한 밤이라 불빛은 더 환히 잘 보여서, 그 때는 우리도 대피해야 하나 싶었었다.


또 한 번은 강릉과 바로 아랫 동네인 동해에 불이 나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망상오토캠핑장이 다 불타 없어지고(지금은 재단장해서 개장, 운영하고 있다) 옥계휴게소도 불타고 아무튼 난리였다. 자주 가던 장소들이 불타 없어졌다는 사실이 좀 충격적이었다. 우리 집은 불난 곳과는 거리가 좀 있었는데도 창문을 열면 매캐한 연기 냄새가 나서 며칠 동안 창문을 닫아놓고 살았었다.


이 산불들이 2017년, 2019년 일어난 일이었는데 2022년에는 무려 방화로 산불이 나서 강릉과 동해 인근 야산이 초토화된 사건이 있었다. 고속도로 바로 옆 산까지 불이 번져 고속도로를 일부 통제하기도 했었고, KTX까지 일부 통제하기도 했었다. 방화로는 최대 규모 피해이고, 산불 전체 규모로만 보자면 세 번째라고 한다.  


그 다음 해인 2023년에는 경포에 불이 나서 펜션들이 불에 타 없어졌다. 이 때 피해를 입으신 분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건장한 체격의 40대 초반 남성 분으로 제법 담담하게 당시 사건에 대해 얘기해주셨다. 그러다 잠깐 눈시울이 붉어진 장면에선 나도 울컥했다.


불확실한 기억을 더듬다 뉴스 기사를 검색해 보니 기억보다도 큰 산불이 더 많았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그만큼 산불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고 해야 할까, 슬픈 말이지만.


아무튼 서울에 살 때는 관심도 없던 산불이 이제는 봄마다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버렸다. ‘우산과 목도리는 필요없지만 폭설과 산불조심만큼은 꼭 필요한’ 강릉생활, 다가오는 봄도 산불 조심합시다. 그런데 왜 방에 걸어둔 옷에는 곰팡이가 피는지 정말 한숨이 나오는 일이다. 강릉 살러 오시는 분들, 제습기는 필수품이니 꼭 구비해 주세요.

역시 눈 오는 날에는 눈사람. 파괴본능 발동한 아들내미의 눈사람 목따기 장면. 올해는 눈사람 만들기에 좀 협조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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