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가까이 있으니 좋다
강릉하면 깊고 푸른 동해바다를 떠올리지만 산골동네도 참 아름답다. 특히 녹음이 우거진 푸르른 왕산의 여름이나 고랭지에 드넓게 펼쳐진 배추밭이 장관인 안반데기는 내가 참 좋아하는 풍경이다.
그래서인지 강릉에 살아도 생각보다 바다를 자주 보러가진 않는다. 차로 3분 거리에 카페거리로 유명한 안목해변과 남항진해변이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 가면 많이 가는 편에 속한다. 게다가 요즘같은 휴가철이면 가능하면 바다 근처로는 얼씬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실, KTX가 놓인 이후로 사시사철 언제나 관광객은 많지만 과연 여름휴가 성수기는 다르긴 다르다. 경포해변 앞에 가면 비키니를 입은 젊은 처자들과 상의를 훌렁 벗어제낀 남정네들이 당당하게 길거리를 활보하기 때문이다.
번잡하다는 이유로 관광객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네에 활기를 불어줘서 참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자영업을 하고 있진 않지만 이용자 입장에서, 손님들이 많이 찾아줘서 다양한 상점이 활성화되면 좋은 일이니까. 그리고 축제도 많아서 좋다. 지방마다 축제야 많이 열리지만, 관광객들이 모여서 시끌벅적하고 힙한 축제가 어느 도시에나 열리는 것은 아니다.
각설하고.
사실 매일 보러 가기에 바다는 참 심심한 존재다. 딱히 서핑이나 바다수영 같은 워터스포츠를 즐기지 않는다면 바다는 그저 바라보는 대상이니까, 길어야 한 시간 남짓이면 ‘자 이제 충분하니 집에 돌아가볼까’ 하고는 몇날 며칠이고 다시 찾아보지 않는다. 가끔 바닷가 근처 식당이나 카페에 가게 되면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아, 바다가 가까워서 참 좋다’ 생각하고는 볼일을 마치고 다시 이동하기 바쁘다.
그런 내게도 바다가 위안이 되었던 순간이 있었다. 강릉으로 이주해온 다음 해, 아는 사람이라곤 남편과 남편 직장동료 뿐이어서 외로운 타지 생활에 매일 우울감에 젖어 살았다. 그 때 해변 모래사장에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바다를 바라보았던 적이 있다. 그러고 있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지만 그 때의 시원한 바람과 어딘지 모를 벅찬 감정 같은 것들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강릉에 오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이 바로 서핑이었다. 때는 마침 서핑 붐이 한참 일어나기 시작해, 양양 죽도해변이 막 서핑의 성지로 급부상하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스포츠와는 거리가 먼 우리 부부는 첫 한두 해를 ‘서핑 한 번 해봐야 하는데’ 말만 하면서 보냈고, 삼사년이 지나면서는 아예 말도 꺼내지 않게 됐다.
그리하여 난생 처음 서핑이라는 걸 경험한 건 강릉에 온지 8년이나 지나서였다. 그것도 같은 극단의 S양의 권유로, 남편은 쏙 빼놓고 나만 먼저 아줌마들과 경험하게 됐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재미있었다. 하지만 누가 또 가자고 하면 가겠지만, 내가 먼저 가자고는 안 할 것 같다.
이렇게 워터스포츠를 즐기지도 않으니, 더더욱 바닷가를 찾을 일이 없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는 모래놀이를 하러 바닷가를 찾게 됐다. 알록달록 플라스틱 모래놀이 도구와 파라솔을 챙겨들고 가까운 바다를 찾는다. 주로 한적한 남항진이나 커피를 사오기 좋은 안목을 찾는데, 부지런한 사람들이라면 일주일에 몇 번씩도 모래놀이를 나갈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일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만 나간다.
왜냐하면 이곳은 바람이 너무너무너무 세서, 날씨가 좋다고 그냥 나가서 모래놀이를 즐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름은 너무 뜨거우니 모래놀이를 하기 좋은 계절은 늦봄 정도인데, 이때 바람이 연중 가장 왕성하고 강하게 불 때라 나가기가 만만치 않다. 요 바람을 얕봤다가는 놀이도구 다 펼쳐놓고 불어닥치는 모래바람에 눈도 못 뜨고 입안에 들어간 모래를 씹으며 십분만에 철수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름에는 아이들과 바다에서 해수욕을 하면 좋겠지만, 아이들은 바다를 무서워한다(아이들은 현재 40개월로 만 3세인데, 언제부터 바다를 안 무서워할지는 잘 모르겠다). 때문에 한여름에도 우리는 집 근처 해수욕장을 두고 한 시간 거리의 워터파크를 찾는다.
그래도 바닷가 근처에 산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여행 와서 들뜬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고, 그 즐거운 분위기를 일상처럼 느낄 수 있고, 마음이 지쳤을 때는 언제든 달려와서 위로받을 수 있으니까. 자주 가진 않아도 가까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
그리고 오늘도,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가서 글이나 좀 쓰다 올까’ 생각만 하다가 그냥 식탁에 앉아 글을 쓰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