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과 함께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다시 논란의 전면에 등장했군요. 국내외를 막론하고 언론에서는 그를 “백신음모론자”라고 부르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는 듯하고요.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백신음모론자란 어떤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장기부작용에 대한 정보가 없는 백신, 감염과 전파를 막을 수 없는 백신을 국민에게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주장을 두고 음모론이라 불러도 문제의식없는 다수의 대중이 존재하는 한, 그들이 바뀔 이유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FDA, CDC, NIH와 같은 보건의료 및 식품 관련 정부조직들을 확실히 손보겠다는 공언을 여러 차례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트럼프가 선거전 약속한 대로 그에게 전권을 내어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트럼프 주위의 핵심인물 상당수가 코로나사태에 대하여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코로나사태의 복기는 현시대 보건의료시스템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의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출발점이 될 겁니다.
트럼프가 이번 대선기간 동안 사용한 구호중 MAHA (Make America Healthy Again )라는 것이 있더군요. 70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이 구호를 상징하는 최적의 인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과거에 했던 몇몇 인터뷰를 보면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가 직접 출연하여 가공식품 안에 포함된 색소첨가물 중 하나인 tartrazine에 대하여 설명하는 10분짜리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말미에 그런 물질이 백가지가 넘는다고 덧붙이기는 했으나, 그런 식으로 개별 유해물질을 두고 하나하나 문제제기하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사회적으로 엄청난 논란만 야기할 가능성이 큽니다. Tartrazine이 사용금지된다 하더라도 현시대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종류들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독립적인 연구자가 정직하게 연구를 하기만 하면 이런 첨가물이나 백신의 안전성 여부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있으며, 그 후 적절한 규제로 국민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야 연구가 가진 명백한 한계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와 별다를 바 없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연구만 계속될 뿐이라고 봅니다. 작금의 현실은 단순히 금전적 이득에 눈이 먼 자들이 주도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도덕적인 연구자들이 대다수라 하더라도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의 등장과 함께 앞으로 강력한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미국의 변화는 당연히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요. 개인적 바람이 있다면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의사들이 소위 guideline-based medicine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질병 원인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만들어진 가이드라인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며, 날이 갈수록 누더기가 되어 갈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의사들이 가이드라인에 익숙해질수록 비판정신은 무뎌지고 점점 더 무력감에 빠지게 되며, 그 폐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전가됩니다.
코로나사태는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 실례입니다. 몇 달 전 JAMA에 코로나 사태 동안 미국에서 의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급락했음을 보여주는 논문 한 편이 발표되었더군요. 2020년 4월에는 의사를 신뢰한다고 답한 비율이 약 72%였으나 2024년 1월에는 40%까지 떨어졌습니다. 의사-환자 관계가 치료 효과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면, 예전에는 환자 10명 중 7명 정도는 나를 믿고 따라주는 환자였는데 이제는 4명뿐이다? 의사로서 아주 난감한 상황입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의사들도 공공보건의료 관료조직이 학계의 몇몇 전문가들과 함께 만든 지침을 아무런 질문 없이 맹신하는 경우가 매우 흔합니다. 그리고 그런 맹신의 대가가 자신들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꽤나 씁쓸할 겁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코로나 사태동안 그들이 만들었던 지침 대부분이 오류로 드러났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 하는 의사들이 태반일 듯 하여 더욱 우려스럽고요.
의사들의 형형한 비판정신이 없다면 보건의료분야는 너무나 쉽게 왜곡될 수 있으며, 결국 의사와 환자만 피해자가 됩니다. 그 와중에 공공보건의료 관료조직이 행사하는 권력은 나날이 커지고 의료에 대한 부적절한 통제와 관리는 극심해지고요. 어쩌면 지금이 과학으로 포장된 관료주의 의료의 폐해로부터 의사들이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