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초이스 백서, 우리는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다

by 이덕희

코로나 사태 당시 현시대 안티백서만큼 오염된 단어가 또 있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습니다. 무증상, 경한 증상이 대부분인 감염병을 막겠다고 장기 안전성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는 백신을 국민에게 반강제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면 세상은 안티백서라고 불렀죠. 특히 저는 학계에서 안티백서라고 조롱받았는데, 의대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의 교수로서 참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 바닥에서 안티백서란 일종의 주홍글씨, 즉 평생동안 지워지지 않는 낙인같은 것이거든요.


사람들의 백신에 대한 태도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백신을 절대선으로 맹신하는 사람들, (2) 백신을 절대악으로 배척하는 사람들, (3) 백신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모든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고 그 정보에 따라서 개인이 선택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만약 <백신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이라는 시험문제를 객관식으로 낸다면 결과는 어떨까요? 아마 대부분은 (3) 번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여러가지 부작용이 보고되고 감염과 전파 예방효과가 급속도로 사라진다는 사실이 알려진 코로나 백신을 가지고 백신패스 제도 도입에 앞장섰던 L교수, J교수, K기자.. 등등도 예외가 아닐 것 같습니다.


최근 미국의 백신과 관련된 논란을 다룬 국내기사에 거의 빠지지 않고 <안티백서>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하는 바,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위 문제에서 (3) 번을 지향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입니다. “감염병 위험은 과장되고 백신 부작용은 과소평가되었다”에서 설명드렸듯, 지금까지 백신정책을 주도했던 집단면역 개념은 원점에서 재고되어야 하므로 백신에 대한 과학적이고 윤리적인 입장은 당연히 (3) 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가 백신에 대한 입장에 따라 프로백서와 안티백서로만 나눌 뿐, (3) 번을 지칭하는 단어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극히 합리적인 (3) 번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안티백서로 몰아가는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체주의 사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조지오웰의 <1984>에는 단어 오염이 어떻게 사람들의 사고를 더럽힐 수 있는지 좋은 사례들이 나오죠. 빅브라더가 통치하는 그곳에는 기존 언어에서 위험한 단어의 의미를 제거하고, 사고를 통제하기 위하여 낱말의 숫자를 줄여갑니다. 조지 오웰은 개인이 어떤 생각을 갖더라도 이를 표현할 단어가 없으면 나중에는 새로운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다고 간파한 바 있습니다.


프로백서와 안티백서라는 단어밖에 없는 사회는 불행합니다. 언제든지 다시 코로나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고요. 따라서 (3) 번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며, 문득 초이스백서라는 단어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에 만연한 안티백서라는 혐오 표현대신 초이스백서라는 단어가 사용된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본질을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감염병 위험은 과장되고 백신 부작용은 과소평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