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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위험은 과장되고 백신 부작용은 과소평가되었다

by 이덕희

한국의 전질병청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는 것을 보면서 남은 인생은 제3자 관찰자모드로 살려고 했는데, 최근 미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뭔가 세상이 바뀌려나.. 다시 마음이 설레는군요. 기존 백신 정책을 고수하려는 CDC수장의 경질, 플로리다주의 백신 의무접종 중지 결정, 보건복지부 장관과 상원의원들 간의 격렬한 충돌.. 여전히 국내 언론은 한 줌도 되지 않는 안티백서들의 어이없는 반란 정도로 폄하하고 있지만, 감염병과 백신에 대한 기존 관점은 급속도로 균열될 것이 분명합니다.


현재 백신 정책과 관련된 가장 큰 오류는 감염병 유행을 막기 위해서는 인구집단의 몇% 이상은 반드시 백신접종을 해야 한다는 공식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한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소위 집단면역 논리죠. 의사들은 학교 다닐 때 1 – 1/R0으로 표기되는 공식과 함께 집단면역이 대변하는 공동체 정신에 대하여 배우게 됩니다. 많은 의대생들이 백신접종이 불가능한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건강한 사람들이 백신접종을 해주어야 감염병 유행을 막을 수 있으며, 그로 인하여 사회 전체를 보호할 수 있다는 논리에 감동하죠.


아마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의대 졸업 후 제가 선택한 예방의학, 보건학은 이 집단면역의 논리를 개발하여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정책적으로 사회에 적용하는 그런 학문입니다. 초짜 교수로서 한동안 저도 그런 관점을 의대생들에게 주입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교과서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지난 100년간 감염병 사망률 감소추이를 보여주는 그래프들을 보게 됩니다. 수많은 감염병 사망률이 본격적인 대규모 백신접종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박테리아, 바이러스와 같은 미생물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시절에도 꾸준히 감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백신의 역할이 생각보다 훨씬 미미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집단면역이 가진 도덕적 가치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어쨌거나 이런 자료는 흥미로운 토론을 유도할 수 있는 좋은 소재였기에, 바로 강의에 포함시킵니다. 그리고 20세기 초중반에 발표된, 지금은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들을 찾아 읽으면서 현재의 집단면역 정의는 대규모 백신 접종과 함께 도입된 매우 협소하고 극단적인 개념임을 알게 됩니다.


코로나 사태 당시 올렸던 “지난 100년간 결핵 사망률은 왜 감소했을까?”에서 설명드렸듯, 감염병 사망률 감소를 설명하는 요인으로 흔히 영양과 위생 개선을 가장 많이 언급합니다만 사실 다양한 자연감염 경험을 통한 집단면역 증가가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감염병은 안 걸리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무증상, 경한 증상으로 넘어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자연감염이란 사건에 대하여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죠. 또한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장기적으로 사람들의 감염병에 대한 저항력은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감염병에 대한 공포를 역사로부터 배웁니다. 하지만 동일한 이름의 감염병이라 하더라도 그 위험성은 시대에 따라 다릅니다. 현재 인류는 정착생활 시작 후 만년이상 다양한 감염병 유행을 수도 없이 경험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자손들입니다. 20세기 이전에는 10명의 아이가 태어나면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가능한 수는 2~3명 정도에 불과했는데, 이들은 상대적으로 감염병에 대하여 높은 저항력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덕분에 16세기 잉카제국을 멸망으로 이끈 천연두가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 군대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죠.


감염병이 한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상황이 그전에 노출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미생물이 등장했을 경우입니다. 그러나 21세기 지구에는 더 이상 잉카제국과 같이 고립된 민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5대양 6대주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이들은 각종 미생물들을 실시간으로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미생물의 상호교환은 교차면역을 통하여 사회전체의 저항력을 높여주는 매우 중요한 기전이자, 더 이상 과거와 같이 한 사회를 초토화시키는 감염병의 대유행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현시대 감염병 위험이 과장된 것이라면, 백신정책도 당연히 재고되어야 합니다. 특히 특정 백신접종률에 도달하면 감염병 유행이 불가능해진다는 논리 자체가 무너지고 있죠.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백신이 감염과 전파를 막을 수 있어야 합니다만, 현재 사용하는 백신들 중 상당수가 단지 무증상, 경한 증상 감염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홍역의 귀환??"과 "아기를 보려면 반드시 백일해 예방주사를 맞아라?"에서 설명드렸듯, 홍역백신이 그렇고 백일해백신이 그렇습니다. 그런 백신은 국가가 나서서 특정 백신접종률을 목표로 백신접종을 독려할 필요도 없고, 맞지 않는 사람을 비난할 필요도 없습니다. 맞고 싶은 사람들만 맞으면 되는 거죠.


또한 자연감염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자체로 사회에 중요한 자원입니다. 지금까지는 이 사람들이 병을 전파하는 상황만을 강조했습니다만, "자연감염을 통하여 획득하는 면역은 항상 우월합니다"에서 설명드렸듯 자연감염 경험자는 백신 접종자보다 사회에 더 견고한 집단면역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죠. 따라서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원하는 사람들은 백신을 맞고,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연감염으로 지나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제가 백신 접종률에 사활을 거는 현재의 공중보건 정책이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우리가 안전하다고 교육받은 초저농도 합성화학물질들이 결코 안전하지 않음을 알고 나서부터입니다. 백신제조에도 다양한 합성화학물질들이 포함되는데, 그 절대 용량은 매우 낮습니다. 즉 허용기준이하라는 의미죠. 하지만 "허용기준이하라서 안전하다는 거짓말"에서 설명드렸듯, 현시대 유해물질의 허용기준은 하루빨리 폐기 처분되어야 할 과학적 사기에 가깝습니다.


코로나19 백신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실 모든 백신의 안전성 문제는 재평가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부터 안전하게 사용해 왔던 백신이라 할지라도 부작용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아이들은 태아 시절부터 엄마 체내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환경오염물질들을 전달받은 상태로 태어납니다. 즉, 19세기, 20세기, 21세기 아이는 디폴트 상태가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더구나 20세기 후반부터 영유아 시기에 접종하는 백신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났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백신의 안전성 문제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재평가되어야 합니다.


코로나 사태는 감염병의 위험은 과장하고, 백신 부작용 가능성은 과소평가하면서 대중들을 공포로 몰아간 대표적 사건입니다. 대부분 의사들은 장기 안전성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는 백신을 접종하는데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는데, 아마 허용기준이하는 안전하다는 도그마가 여전히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집단면역에 이어 이런 도그마를 의대생들에게 주입하는 과목 역시 제가 속해있는 학문 분야라는 점에서, 일전에 추천사를 적었던 <내가 의대에서 가르친 거짓말들>의 감염병 버전을 한번 써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군요.


현시점 중세의 흑사병, 잉카제국의 천연두, 스페인독감과 같은 사례를 예로 들면서 대중들이 감염병에 대한 공포를 가지게 만드는 것은 비과학적인 것은 물론이고 비윤리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지난 코로나 사태동안 이미 감염병 공포 조장으로 먹고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양산시켜 버렸기 때문에, 과연 세상이 바뀔 수 있을지 회의적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과연 어떻게 마무리될지, 또한 한국 언론에서는 어떻게 다룰지 지켜보는 것은 꽤나 흥미진진할 듯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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