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에 4대가 모인 그날의 이야기
그다지 잘해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지금까지 살면서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들 중 하나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은 웬만하면 하지 말고, 아무런 알맹이가 없는 글은 굳이 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 같은 평범한 인간의 일상에 영화 같은 일들은 많이 일어나지 않으니, 이제와 솔직히 고백하자면 글을 쓰며 종종 별것 아닌 일들에 지나친 의미부여를 하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이끌어 내기도 해 보았지만 편협한 나라는 한 인간이 들이대는 좁은 기준들로부터 나온 생각들은 반복적이고 그리 독창적이지도 못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바로 나의 글이 가진 한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어떤 현상에 대한 나만의 의미부여라는 행위 자체가 어쩌면 오만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그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아무런 해석 없이, 나의 편협한 기준 없이 있는 그대로 관조하며 나는 각자 다른 인생들이 만들어내는 물결이 내게 어떻게 다가오는지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어떻게 해서 나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예상치 못하게 초대는 받았지만 굳이 가지 않아도 괜찮았던 한 여자의 생일파티에 갔다.
그녀는 다 큰 아들이 하나 있지만 남편은 없다. 출산을 하자마자 친정 엄마 집에서 3대가 같이 살며 아들을 혼자 키웠다. 그렇게 키운 아들이 얼마 전 처음 보는 여자의 손을 잡고 집에 들어온 사건은 그 집안 식구들을 모두 놀라게 했지만 그것보다 더 놀랐던 것은 그 여자의 볼록한 배였다. 낯선 여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3대가 살고 있는 그 집으로 자신의 짐을 싸들고 들어왔다. 그렇게 그녀의 아들과 그가 데려온 여자, 그리고 그녀의 엄마, 이 넷의 어색하고 비좁은 동거가 시작됐다.
결혼식이란 여유 있는 자들이 여는 성대한 파티정도 개념인 이들에게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두 젊은 남녀는 식 없이 바로 도시 외곽에 허름한 집을 구했다. 곧 아이가 태어났고, 아이의 탄생이 행복한 한 가정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인 줄 알았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난 뒤 나중에 그의 친척들이 새롭게 얻은 그의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는 세탁기나 식탁 같은 집에 있었을 법한 집기들이 이빨이 빠진 것처럼 숭숭 비어 있었는데, 없어진 것은 살림뿐이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는 아이의 아빠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양육비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며, 어디에선가 구한 픽업트럭으로 남자가 장만한 살림 몇 가지를 가져가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
여자가 제기한 소송결과에 따라 아이의 아빠는 매달 일정금액을 여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의무를 졌고, 아이에 대한 모든 권한을 엄마에게 먼저 부여하는 이곳의 법과 관습에 따라 양육권은 여자가 가져갔다. 그리고 남자가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주말로만 한정되었다. 무슨 인연인 걸까 이것은. 남자는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허리케인처럼 할퀴고 지나간 여자와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를 보기 위해 연락을 끊어버릴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여자가 남자의 엄마 생일 파티에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나 편하고 익숙하게 남자의 엄마와 할머니에게 볼키스를 하며 인사를 하고, 음식을 기다리며 아이를 잠깐 보다가 이윽고 담배에 불을 탁, 하고 붙인다. 혼자 놀고 있는 아이와 같은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며 열심히 핸드폰을 보고 있는 여자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아들이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을 쪼개 매달 지불하는 양육비를 받으며 다른 남자와 같이 살고 있는 그 여자를 그녀는 자신의 생일파티에 초대했고, 파티에 한껏 꾸미고 온 그 여자는 그 자리에 온 다른 식구들과 함께 깔깔거리며 집이 떠나가도록 웃고 있었다.
아주 잠시동안 그녀의 시어머니 었던 그녀와, 아주 잠시동안 그녀의 남편이었던 아이의 아빠와, 그 둘을 바라보고 있던 아이의 할머니의 마음에 그날이 어떤 잔상으로 남았는지 나는 모른다. 그녀가 생일파티 장소에 나타난 사건에 대해 놀란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던 것이 거의 명백한 것을 보아 나는 아직도 나와 숨 쉬는 공기를 공유하고 살을 부딪히며 사는 여기 사람들을 모르고 있구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4대가 한자리에 모인 그날을 뒤로하고, 각자는 모두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고 아이는 다음에 다시 볼 때까지 또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