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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Jul 24. 2020

나라서 다행이다.(3)

수술 이야기 3

<이전 이야기>


제일 심각하지 않은 환자는 나였다.
그러나 제일 심각해 보이는 환자도 나였다.


병실 환자 6명 중 내가 제일 젊었고 그 중 3분은 항암 환자였다. 현 상태에서 가장 심각하지 않은 환자는 나였다. 그러나 제일 심각해 보인 사람도 나였다. 지금 와 생각하니 얼마나 엄살이었는지, 그들 속에서 얼마나 철부지였는지 반성한다. 옆에 있는 남편이 안절부절못할 정도로 힘들다, 아프다 투덜대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좁은 침대와 입원실


나라서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수술 후 통증으로 잠을 들 수 없는 날들이었다. 어느 날인가 잠에서 깨어 ‘왜 하필 나에게’라며 혼자서 원망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생각이 났다.

‘나라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나이 드신 부모님이 아니라서, 아직 어린 딸아이가 아니라서 그냥 내가 아픈 게 백 번 천 번 낫다는 깨달음이 오면서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해 버렸다. 그 순간 이후 마음이 달라졌다. 다 순응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원래 수술하면 아픈 거지, 입맛이 없는 거지, 서러운 거지, 잠도 안 오는 거지..... 다 당연한 거지.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2박 3일 예정이었던 입원은 4박 5일로 길어졌다. 그러나 3차 병원은 항생제도 안 줬고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진통제도 인색해졌다. 다 먹는 알약으로 바뀌었다. 아픈데 병원에서 특별히 해 주는 것이 없었다. 스스로 회복해야 한다는 신념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병원을 돈 시간은 살짝 그리울지도 모른다.


입원 기간에 주말이 끼어있었다. 주말에는 병원 로비도, 복도도, 지하 식당가도 정말 한산했다. 잘 걷지 못해서 남편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병원을 활보했다. 엉망인 상태로 휠체어에 앉아있어도 부끄럽지 않았다. 다 그런 거지, 뭐...라는 내려놓음이 있으니 다 괜찮아졌다. 아마 휠체어를 타고 병원 여기저기를 다닌 일은 오래오래 기억이 날 듯하다. 불평 한 마디 없이 휠체어를 밀어준 남편에게는 고맙다고 말 한마디 안 했지만 내내 고마움을 가지고 있을 듯하다. 병실에서 내려다본 한강도, 멀리 롯데타워도 아름다웠고 어디인지 바쁘게 오가는 올림픽대로 위의 자동차들도 하나의 풍경처럼 좋아 보였다. 아파서 시간이 멈춘 나와는 달리 세상은 아주 잘, 아무렇지 않게 신나게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아름다웠다.


젊은 사람이 어째


퇴원하는 날 걷기 힘들어 여전히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분명 내 발로 걸어 수술대에 누웠는데 퇴원은 휠체어로 하게 됐다. 같은 병실에 계셨던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제일 나이 많은 할머님 한 분이 이 말을 하셨다. 할머님은 나보다 더 오래 병원에 계셔야 했고 항암을 시작하는 분이셨다. 나와 같은 날 수술을 하셨지만 가스가 나오지 않아 내가 퇴원하는 날까지 물 한 모금 드시지 못하고 계셨다. 그런데 어찌나 씩씩하신지 병원을 코를 골며 주무시고 쌩쌩 잘 걸어다니셨다. 지금 이렇게 엉망이지만 나는 매일 나아질 터인데.... 할머님 말씀이 마음 아파, 죄송해서 눈물이 났다.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건강하세요.'라고만 말씀드리고 나왔다. 할머니 말씀이 어찌나 가슴에 박히던지. 제일 괜찮은 사람이 제일 아픈 사람 시늉을 하고 있었으니 그분들은 아마도 내가 큰 병이라도 걸린 줄 걱정하셨을 것이다. 부디 할머니도 그 외 항암을 하는 다른 분들도 건강하시길, 오래오래 후유증 없이 건강하시길 마음으로만 빌었다.


퇴원 후 2주가 지나고 외래를 다녀왔다.

당연히 암은 아니지만 재발 우려가 있으니 이런저런 처방은 떨어졌다. 이 또한 쉽지 않은 처방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감수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인 듯했다. 깊이 생각하면 무엇하리...... 경험 많은 의사가 해 보자는 대로 그냥 따라가 보련다.


비 온 후 땅이 굳어진다.


아프고 나면 성장한다고 한다. 아프지 않고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수술과 아픔이 나에게 어떤 계기가 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아직은 회복 중이고 아직도 아픈 중이니까.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아픔이 가시고 나면 뭘 주려고 이런 시련이 왔는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 속에서, 역경 속에서 긍정과 희망을 찾으며 앞으로 나아가니까. 결국 돌아서 생각해 보면 아플만했고 경험할 만했노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기를......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무 예고 없이 아픔과 죽음에 가 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 죽음을 빼고 인생을 말할 수는 없겠지만 천천히 오길, 부디 예고는 해 주길..... 죽음이 눈앞에 있을 때 죽음에 대비하고 계획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미리 무언가를 해야만 하겠고 후회 없이 시간을 보내야겠는데 아직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버나드 쇼의 묘비 글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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