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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May 21. 2024

받아들여야겠지

한동안 무기력증과 우울과 삶에 대한 무희망으로 너무나 괴로운 하루를 보냈다. 이러다가 큰일 나겠구나 싶은 마음에 병원을 가고 약을 받아먹고 생각을 바꾸려는 연습을 했다.

일어난 사실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게 놔둔다면 그건 나의 생각의 문제이지 아들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상담, 정신과 처방, 여행, 같이 도서관 가기, 열심히 아침마다 안아주기 등등 내 나름 이것저것 노력을 했다. 이런저런 재료만 잔뜩 들어간다고 맛있는 음식이 아니듯, 그 옛날 우리 엄마들은 간장 하나 간단한 재료만으로도 뚝딱 맛있는 국과 반찬을 만들어내듯,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기보다는 올바른 방법 하나를 끝까지 밀고 나갔어야 됐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그 시점에선 올바른 방법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고, 급한 성격 탓에 뭔가 변화가 보이지 않으면 이것저것 시도했던 탓에 이렇게 세월이 흘러버렸다.


이제 과거 속에 있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내 잘못을 더 이상 헤집고 싶지도 않다.

그냥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고, 무엇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도 알 수 없었고, 단지 손 놓고 있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를 위로해 주고 싶다.


이유를 말할 수 없으면서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불편할까 생각하면 직장을 관두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밝게 웃고 싶지만 도저히 웃을 에너지는 없었고, 뒷모습마저 힘이 없어 보이냐는 동학년 선생님의 말씀에 무지하게 신경이 쓰였지만 힘든 상황에서 밝게 웃는 것도 아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동안은 주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현실조차 버거웠다.

지금은 그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는 해 줄 것이다. 하지만 말이라는 것은 결국 어디서든 새어나가게 마련이고, 내 뒤통수가 따가운 것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 주지 못한 아들이 남들에게 웃음거리나 가십거리가 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결국 말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비로소 나도 스스로 짊어지고 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가 보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은 말한다. 솔직한 게 나의 장점이라고.

그것이 칭찬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조금은 덜 솔직해도 된다는 사실을 늦은 나이에 알았다.

(비록 브런치에서는 이러고 있지만)


이제는 아들의 상황을 받아들인다. 

물론 아들의 미래는 걱정이 된다.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늘 든다.

하지만 아들의 생각을 마음을 내가 어떻게 하기가 쉽지 않고, 결국 본인이 깨지고, 깨우치고, 깨달아 나가야 될 일이기에 당분간은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마음은 아프다.

큰아들이 몇 학년이냐는 물음에 고2예요라고 말하지만 고2도 아니고 고3도 안될 아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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