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님의 묘비명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와 그분이 평소 좋아하신 성경구절인 시편 23편 1절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입니다. 국민화가로 불리는 박수근 화백은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라는 말씀을 남기고 생을 마치셨습니다.
죽기 전 묘비에 어떤 말을 새길까? 어떤 말을 남길까 생각하면 역으로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겠지요? <장명숙, 오롯이 내 인생이잖아요?>
내 묘비명에는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까 문득 생각해 보았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딱 떠오르는 말이 <좀 평온하게 살 걸>이다.
인생이 너무 복잡하다. 아니 스스로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버드 졸업생들의 일생을 추적 연구한 행복의 조건 책을 보면(두께의 압박 때문에 끝까지 읽지 못하고 집에 모셔져 있다. 고로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관계와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아들과의 관계가 망가졌다. 과연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들이랑 충돌하는 것에 대해 핵심은 쏙 빼고 피상적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지만, 또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선생님은 자신을 위해서 남을 미워하지 않고 뭐든 잘 잊어버린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요 한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겠지만 정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어찌 되었든 선생님은 남도 미워하지 않는데 나는 자식을 미워하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마음이 평온하다.
한바탕 실컷 울어서인가보다.
그리고 내가 못났다는 걸 알아서인가 보다.
오늘은 떠들고 있는 아이들이 오히려 이뻐 보인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줘서.
근심 걱정 없는 모습이 이뻐 보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이건 저학년 담임을 하는 맛이다. 우중충한 고학년 아이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맛.
다행인 건 인생이 언제나 구렁텅이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거다.
이러다가 내일이 지나고 모레가 지나면 난 언제 그랬냐는 듯 힘을 낼 거고, 직장에서 벌어지는 비합리적인 일에 울분을 토할 거고, 드라마를 보며 몰입하고 있을 거고, 남편에게 화도 낼 것이고, 그렇게 밉던 아들이 또 불쌍하고 안타까워 안절부절못할 것이다.
이렇게 오르락내리락하며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이왕이면 좀 평온하면 좋겠지만, 아들도 미워하지 않고 늘 안타깝고 불쌍하게 여겼으면 좋겠지만, 나란 인간의 한계인 걸.
결국 내 묘비명은 <좀 평온하게 살 걸>이 될 거 같다.
사실 죽으면 묘비도 납골묘도 수목장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묘비가 있다면...
좀 평온하게 살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