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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라도

by 나무 향기 Apr 02. 2025

음식을 맛있게 먹다가도 가끔 이물질을 씹기도 하고.

거리를 걷다 보면 보도블록의 삐쭉 튀어나온 곳에 발이 살짝 걸리기도 하고.

남향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속아 옷을 얇게 입고 나섰는데 벌벌 떨기도 하고.

옆 차선에 차가 없다고 생각해서 진입했는데 귀를 때리는 경적소리에 이십 년 넘은 운전 경력이 무색해지기도 하고.

황당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잠시 당황하고 나면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냥 잘 지나가고 있다고, 이 정도면 그동안 겪은 일에 비해 평화롭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하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면, 그냥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포용하고 이해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아니 잘 가고 있었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 잘 가고 있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말을 섞지 않고 해 달라는 걸 해 주고 그냥 그렇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모두 바쁜 일상과 할 일 뒤에 가려둔 채 말이다.

학창 시절엔 공부만 하고 어디에 관심도 두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집안일 학교일 나한테 주어진 의무와 책임만 미친 듯이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하면 생각이 시작조차 안된다. 긍정적인 생각도, 부정적인 생각도, 그냥 생각 없이 기계처럼 산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라는 것이 있는 듯하다.

며칠 불안함과 알 수 없는 괴로움에 폭식을 반복하고 있다.

콜레스테롤 지수가 너무 높아지고 당뇨 전단계까지 와서 다이어트가 필요한데도 말이다.


아들만 있게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골격도 크고 씩씩하게 사니까.

씩씩한 척 하며 사실은 무너질 것 같은 나를 붙들고 또 붙들고 그렇게 살고 있는데.

그래도, 그래서, 지금까지 괜찮은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나를 붙들고 살 의지는 남아 있고, 여전히 아들의 모든 걸 다 수용하지 못하고 훈계해야 되고 따져야 되는 엄마이니 아직 힘이 남아 있나 보다.

아들은 그런 내가 너무 싫을 거라고 짐작하고도 남는다.

무엇이 되었든 포용하는 부모가 되어야 되는데. 

자식이 교도소에 가게 되더라도 자식 편인 부모들도 종종 기사나 글을 통해서 보는데.


어떻게 생겨 먹은 게

나는 엄마인데도 

온전히 포용하지 못한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온전히 이해하길 바라는 아들에게.

온전히 감싸주길 바라는 아들에게.

온전하지 못한 엄마이다.


이런 나라도, 엄마가 없는 것보단 아들에게 나을 것이다. 

그렇게 이런 나라도 괜찮다고 하면 괜찮아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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