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집
어떤 계절은 그 시기에 일어난 일련의 장면으로 기억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3월은 이곳으로 이사한, 첫 독립의 장면들로 가득하다.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던 날씨, 이른 아침 거실로 조금씩 영역을 넓히며 들어오는 햇빛의 모양, 활짝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부풀어 오르던 커튼과 흔들리던 모빌의 무게. 그 후로 이렇게 좋은 3월의 날씨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이사는 세입자가 이사 나가고 일주일 동안 이어졌다. 먼저 도배공사가 시작됐다. 비교적 깨끗한 집이라 다른 공사는 하지 않고 도배만 새로 하기로 했다. 솔직히 하고 싶은 게 더 많았지만, 바닥이 보이는 통장잔고에 욕심은 사치였다. 공사가 끝난 후 입주 청소는 내 손으로 해결했다. 다른 이의 흔적을 지우는 일은 생각보다 고됐지만 내 집이라고 생각하니 즐거웠다.
청소를 끝내고는 한 차씩 실어 짐을 날랐다. 부모님과 살던 집에서 내 몸과 방 안의 물건들만 빠져나오는 거라 이삿짐 서비스를 부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옮기다 보니 꽤 많은 짐에 놀랐다. 사계절 옷들과 신발, 가방, 주섬주섬 사모은 소품들, 내 키만 한 책장을 가득 채우던 책들이 큰 박스 몇 개로는 턱도 없이 부족했다. 그 외에도 그릇, 냄비 같은 잡동사니와 이불, 커튼 등 사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들을 집으로 들였다. 엄마 집에서 가장 깨끗하고 쓸만한 물건들로만 골랐다.
그다음으로는 가전제품이 들어왔다. 세탁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전기밥솥. 1인분의 삶이라도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마지막으로 가구들. 침대, 식탁, 장롱, 서랍, 책장이 집에 채워졌다. 박스에 뒤죽박죽으로 실려온 나의 짐들이 새로 산 서랍에, 책장에 정리되었다. 고이 접혀 있던 패브릭 포스터는 현관문에,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에 산 모빌은 거실 창 끝에 걸렸다. 작은 서랍 속에 비좁게 자리하고 있던 나의 취향들이 팽창된 집 곳곳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이사가 끝났다. 모든 물건들이 오래전부터 놓여있었던 것처럼 제자리를 찾은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조금 가슴이 뻐근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완성형인 줄 알았던 집도 그동안 조금 변했다. 처음에는 없었던 거실소파가 생겼고, 욕실 공사로 낡은 도기와 수전을 교체했다. 비싸서 엄두도 못 냈던 거실 실링팬을 드디어 달았다. 어떤 것은 편의에 의해, 어떤 것은 취향에 따라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공간, 나의 취향을 가득 담을 집을 여전히 만들어 가는 중이다. 앞으로도 내가 변하듯 나의 집도 조금씩 변해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