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 +1 년 4월 12일

계절을 대하는 자세

by 나리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소개팅을 하겠냐는 전화가 왔다. 이런 순간이 오면 늘 고민하지 않고 수락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의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지를 빌려서라도 노력을 하고 있다 작은 안심이랄까. 그리고 아주 적은 확률로 인연일 될 수도 있고. 의미 없는 만남이 될 확률이 크지만 말이다.


그런 마음으로 만난 사람은 역시나 인연이 아니었다. 두 시간 동안 나눈 대화중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싱겁게 끝나버린 만남. 서로에게 특별히 어필하지 않았던 것은 호감이 아니라는 반증일까. 만남이 끝나갈 즈음, 그 사람이 물었다.

‘벚꽃이 피면 꼭 챙겨서 보러 가는 편이세요?”

아니라고 답하며, 사람이 많은 곳은 질색이라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유 없이 마음 한편이 조금 씁쓸했다. 한 때는 나도 벚꽃이 피는 계절에 우르르 몰려다니며 한철의 아름다움을 즐기던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일들이 유치하다고 생각했을까. 혹은 이제 더 이상 그런 마음을 생기는 않아서 느끼는 질투일까. 그런 생각이 미치자 올해 벚꽃을 꼭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평일엔 부러 약속을 잡지 않지만 얼마 남지 않은 벚꽃 시즌을 놓칠세라 퇴근 후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위치는 양재천 벚꽃길. 올해는 개화시기에 비가 자주 내려서 만개한 벚꽃을 보기가 어렵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양재천 초입에 다다르니 성근 벚꽃나무들이 초라한 가로등 아래에서 꽃비를 나리고 있었다. 그 모습도 소중해서 연신 예쁘다며 사진을 찍으며 걸어가는데, 저 멀리 터널 아래부터 인파가 몰리는 게 보였다. ‘아 저기서부터가 진짜였네. ’ 방금까지 호들갑 떨었던 게 무색하게 탐스러운 벚꽃길이 시작됐다. 나무 아래를 걷는 모두가 벚꽃을 올려다보며 걷는다. 행복한 얼굴로 함께 온 이들을 바라본다. 나도 친구도 그런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처음 본 벚꽃이 아닌데도 올해 벚꽃은 유독 새롭게 느껴진다. 아마도 매해 벚꽃이 그러지 않을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늘 그해 피는 벚꽃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은 짧고도 길다. 또 다른 일 년을 시작하며 우리는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그 해를 조금 망쳤더라도 다음 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 돌아오는 계절을 선물처럼 맞이하고 싶다. 그 계절에만 할 수 있는 것을 부지런히 누리고 싶다. 같은 계절이 돌아오더라도 시들지 않는 마음으로 매 계절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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