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단순하게
언제부턴가 화장실 등을 켜고 한참이 지나야 제대로 들어오더니, 결국 나가버렸다. 불이 완전히 나가기 전에 고쳤어야 했는데 이렇게 닥쳐서야 망연자실하고 있다. 천장에 매립된 등을 보고 있자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못하면 다른 사람을 불러야 하는데, 누구를 불러야 하고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막막하고 번거롭게만 느껴졌다. 등을 갈아야 하겠다는 의지가 손톱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불 나간 욕실등이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며칠을 어두운 욕실에서 샤워를 했다. 욕실 안에 작은 조명을 두고 거실 불빛에 의지하니 썩 나쁘지 않았다. 욕실 문을 닫을 수 없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요 근래 별거 없는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계약 종료 전에 감사하게도 한 달 더 연장되었다. 하지만 길어진 계약만큼 프로젝트 관여도도 깊어져서 신경 쓸 것들이 많아졌다.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면 당연히 받는 스트레스인데,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이런 상황에 취약해진 걸까. 머리가 복잡했다. 지금의 상황에 한 발자국 벗어나고 싶었다. 약간의 일탈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어제 퇴근길 이곳이 생각난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매일 지나던 길에 주황색의 따뜻한 빛을 내던, 언젠가 저녁 해 먹기 귀찮은 날 기분 내러 방문하고 싶었던 일본가정식 바. 갓 튀긴 고소한 치킨난반과 시원한 하이볼 한 잔은 내 머릿속을 말끔하게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내가 머무른 시간은 고작 30분.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근래 들어 아주 만족스럽고 든든한 한 끼 식사였다. 가끔은 스스로를 달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니 조금 정신이 차려졌다. 나를 바라보던 등이 한심함이 아니라 도움의 눈빛이었을까.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매립등 교체”라고 검색하니 너무나 많은 글들이 검색됐다. 우리 집 등구조와 가장 비슷한 블로그를 클릭해 보니 나랑 비슷한 처지의 자취녀가 올린 글이었다. 꽤 상세하게 쓰여진 글에 아직 등을 교체하지도 않았는데 고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 댓글을 다니,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답글이 달렸다. 생각보다 쉬우니 걱정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독려와 함께.
인생은 참 단순하다. 속이 든든해지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안 돌아가던 머리가 돌아간다. 용기가, 의지가 솟는다. 별거 아닌데 마음이 뻐근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