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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은 Dec 21. 2020

#2 실패 안전지대

빼앗긴 아이들

가장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이 뭘까요?

그건 바로 ‘놀이’입니다. 그러면 그 반대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활동은 뭘까요? 그건 바로 ‘학습’입니다. 놀이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고정된 자세로 학습이라는 환경 속에 묶여 옴짝달싹 못한 상태에 있었으니.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뭐가 다를까요?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아이로 트레이닝시켰던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아이의 창의성과 무한한 꿈을 지우고 현실의 좋은 직업, 좋은 대학이라는 일괄된 목표를 향해 생각 없이 살아가도록 부추긴 건 아닌지. 이상한 나라에 나오는 두뇌가 없어 지혜가 부족했던 허수아비, 겁이 많아 용기가 필요했던 사자, 심장이 없어서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없었던 양철로봇처럼.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은 아이로 성장하게 한 것은 아닌지. 이젠 멈춰서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 많아져야 비로소 만족을 얻게 되고 행복감을 갖게 됩니다. 스스로 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지고, 실패조차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기 조절력과 통제감을 갖게 되니 자존감과 효능감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때 ‘자기 주도 학습’이 뜬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주도 학습’을 가르치기 위해 우후죽순 학원이 생기기도 했었죠. ‘자기 주도 학습’을 배우러 가는 아이들, 너무 우스꽝스럽지 않나요? 자신이 학습 계획을 세우고, 조직화해서 실행을 한 후 실패를 통해 수정하고 다시 학습에 대해 설계하는 것, 이게 진정한 자기 주도 학습 아닐까요?

  ‘자기 주도 학습’이 되려면, 우선 ‘주도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도성’을 발휘해 봐야 하는 것이고요. 그러기 위해선 무수히 많은 실패를 경험해야겠죠. 이 실패가 주는 참담함과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선, 실패가 즐거워야 합니다.


  눈치채셨나요? 놀이만큼 즐거운 실패를 할 수 있는 게 또 있을까요? 이러니 놀이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놀이’는 주도성을 회복하기 위한 가장 안전한 도구이자 필드(field)니까요.

  실패해도 즐겁고, 언제나 다시 재도전할 수 있는 것은 놀이밖엔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놀이를 잘하는 아이들이 주도적이고 능동적이며 모험심이 강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이러한 도전정신은 실패에도 일어설 수 있는 회복력을 길러줄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자연스럽게 창의성까지 따라붙게 되는 건 당연하겠죠? 이러니 제가 ‘놀이’ 예찬론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 아이에게 놀이를 되찾아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놀이를 잃어버린 아이들은 절대 능동적이고 주도적일 수 없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선택 장애’라는 말을 달고 살기를 원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아이가 성장해서 자신의 삶을 사는 데 있어서 자신감 넘치게 살 수 있게 ‘놀이’를 회복해야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놀이’를 할 줄 아는 아이의 능력을 쓸 수 없도록 한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이미 디폴트 값으로 놀이라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에게서 ‘놀이 퇴화’라는 악독한 환경을 제공한 건 아닌지 말이죠.


  장난감이 없던 시절, 놀이가 더욱 풍성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유명 감독의 말처럼 모든 것이 갖추어진 환경에서 자랐다면 자신은 절대 창의적일 수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감독은 자연만이 유일한 재료였기에 돌, 나무, 조개 등으로 자신만의 놀잇감을 만들었고, 새로운 놀이를 창조하면서 수많은 시간을 즐겁게 보냈기에 자신은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감독은 누구일까요? 바로 너무도 유명한 프랑스 뤽 베송 감독의 이야기입니다.   


  이미 아이들은 충분히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며 생동감 넘칩니다. 이러한 아이들의 능력을 이젠 발휘하도록 마음껏 시간과 공간을 내주는 것, 그것이 바로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선물일지 모릅니다.

  부모는 가르치는 교사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교사인 부모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엄마, 아빠’를 원할 뿐입니다.

  지금은 견뎌야 하는 시기가 아닌, 잃어버린 놀이를 회복하는 시기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 함께 ‘아무 놀이’나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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