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은 Dec 23. 2020

#3 잃어버린 언어

빼앗긴 아이들

  아이들은 놀이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아니 더 엄밀하게 말하면, 학습에 밀려서 놀이를 빼앗겼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겁니다. 언어보다는 놀이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아이들에게 어쩌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학습에 묶이게 되면서 아이들은 점점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놀이’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첫 번째 글에서 언급했던 사례처럼 놀이를 하지 못하던 아이가 더 이상 특이하거나 이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놀이 좀 못하면 어때. 대신 우리 애는 책을 많이 읽는데.”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하루 종일 앉아서 책만 읽는 아이를 자랑스러워하고, 그 아이를 둔 부모를 부러워하며 칭송하는 분위기가 더 만연하다고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놀이’가 천대받는 시대가 아닐까 하는 암울한 생각도 듭니다. 


  놀이실에 와서 많은 놀잇감을 보며 감탄은 하지만, 덥석 놀잇감을 선택하지 못하는 아이, 버튼만 누르면 저절로 작동이 되는 놀잇감만 찾는 아이(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버튼을 켜고 감상만 하니, 이게 과연 놀이일까요?), 사용설명서가 있어서 그대로 보고 따라만 하면 되는 레고(놀이라기보다는 작품을 완성해서 트로피처럼 전시만 하려는 것이 익숙한 상황, 참 난감합니다), 상상이라곤 1도 발휘할 수 없게끔 매우 구체적으로 설계된 놀이(요즘은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된 놀잇감만 수천 개에 달하니, 상상력을 동원하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인 것입니다) 등만 찾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 확실히 놀이를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놀이 자체가 즐거운 것이 아니라 놀잇감을 통해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지금의 현실이, 저는 무척이나 눈물 납니다. 저에게 이 상황은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에게 한글을 빼앗긴 것과 같은 느낌과 같은 정도랄까요. 


  이 글을 보시는 분은 “너무 과한 거 아냐? 오버하네. 뭐 그렇게까지.”라고 하실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놀이는 아이들에게, 특히 7세까지 아이들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절대 과장이 아니고요. 


  생각해보세요. 아이들의 놀이를 보며,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챘던 경우가 없으셨나요? 엄마에게 혼이 나서 시무룩한 채 방에 들어가 인형놀이를 하며 마치 자신인 듯 인형을 혼내는 시늉을 하던 아이가 기억나지 않으시나요? 그 광경을 보며 뜨끔했던 기억, 딸 가진 부모님이라면 더더욱 한 번쯤은 경험해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현실을 재현하기도 하고, 상상의 나라를 펼치며 탐험도 합니다. 게다가 잘하지 못했던 것들을 연습하는 장(field)으로 활용하기도 하고요. 어찌나 현명한지, 놀이를 통해 몇 가지의 분야든 융합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까지 하니, 이보다 더 하이브리드 한 경험을 한다는 건 현실에선 쉽지 않을 겁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확장하고, 마음을 넓히고,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들(자신, 타인, 사회, 세계, 더 나아가 자연과 사물까지도)과 모두 관계를 맺습니다. 부모님들이 강조하는 학습이, 오히려 놀이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단 말입니다. 지루할 틈 없는 학습이라니. 놀랍지 않으신가요? 하루 종일 놀아도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이 피어나는 무한대의 영역, 시공간을 초월할 정도의 양자역학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이 바로 ‘놀이 세상’입니다. 이래도 놀이를 아이들에게서 빼앗으시겠습니까? 


  흔히들 우리는 뭐든 ‘놀듯이’하는 사람을 당해낼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진짜로 마음껏 놀도록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정말 날아다니듯 다재다능한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 장담합니다. 

  제발 어린 애기들이나 하는 것이 놀이라는 생각을 버리셨으면 합니다. 그런 한정된 생각이 끝없이 펼쳐진 무한대의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제한하고 가두는 꼴이 되어버리고 마니까요.     

이전 03화 #2 실패 안전지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