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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은 Dec 25. 2020

#5 결정적 시기

빼앗긴 아이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갑자기 요즘 들어서 소리를 지르고 말을 안 듣기 시작했어요.”라는 상담문의가 유독 많이 오는 연령대가 있습니다. 바로 5세죠. 대개는 아이가 갑자기 고집스러운 행동을 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과격한 행동을 한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거기에 더해서, 아이가 산만한 것 같다거나 자기중심적으로만 행동을 해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는 염려를 동반하는 경우도 많고요. 더 심각하게는 아이가 너무 폭력적인 행동문제를 보인다거나 반대로 아무하고도 대화를 하지 않고 혼자 고립된 듯한 행동을 한다는 다소 심각한 내용의 상담 전화도 많이 옵니다.


왜 유독 5세에 이런 일들이 많이 생기는 걸까요?


  5세 때는 가정에서 기관(어린이집, 유치원과 같은)이라는 넓은 영역으로 활동범위가 넓어지는 시기입니다. 게다가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의 사회로 큰 걸음을 떼는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인 거죠.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설고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니까요. 어찌 보면 새로운 도전과 같은 거고, 큰 도약이 일어나는 시점인 것입니다. 


  하지만 환경 변화만 있는 걸까요? 아니요. 많은 심리학자들이 이 시기를 가장 중점에 두고 다양한 연구를 펼쳐왔던 걸 보면, 이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Erikson을 살펴볼까요? 

  Erikson은 전 생애를 심리사회발달 단계로 연구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출생에서 취학 전까지 살펴보려 합니다. 

  먼저, 출생에서 만 1세까지는 관계의 가장 핵심인 ‘신뢰’가 형성된다고 했습니다. 주양육자의 애착을 통해 세상이 신뢰할만한 곳인지 아닌지에 대한 기본 바탕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라고요. 그러나 이때 주양육자의 비일관된 양육 혹은 거부적이고 부정적인 돌봄이 이루어졌다면, 신뢰가 아닌 ‘불신’이 생기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아이가 성장하면서 사람이나 사회, 더 나아가 이 세상은 믿을만한 곳이 않을뿐더러, 매 순간 관계에 어려움을 겪게 되겠죠. 어쩌면 사회성의 가장 기본인 ‘신뢰’가 이 시기에 벌써 가늠이 되는 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애착을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 3세에서 5세 때는 어떨까요? 이때는 ‘자율성’이 형성되는 시기라고 합니다. 이 시기에 아이들이 이곳저곳을 누비며 사건사고를 일으키고 부모를 난감하게 하고 사고뭉치 같은 이미지를 줍니다. 뭐든지 만져 봐야 하고, 해보려고 하는 시기니까요. 그래서 더더욱 위험한 것을 아이의 손에 닿지 않게 치우고, ‘안전’에 대해 강조하며 아이를 돌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때 중요한 건, 아이가 위험하지 않도록 아이에게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도 아이가 오감각으로 마음껏 체험하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겠죠. 냄비에 아이가 들어가거나 의자에 머리가 낀다거나 신발장의 있는 신발을 모조리 빼내서 마구 어지럽히는 일들은 모두 다 겪어보셨을 겁니다. 근데 이때 부모가 안전을 위한다며 아이에게 “안돼!”만 외친다면, 아이는 ‘수치심’ 혹은 ‘의심’이라는 부정적 감정이 더 발달된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아이들은 자기가 스스로 해봐야 하는데, 주변에서 못하게 하니 자기 스스로에 대해 수치스러운 존재로 느낀다는 거죠. 아이가 자신을 못 미더워하고 통제만 하는 부모의 피드백만 받았다면, 과연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생길까요? 그럴 수 없겠죠. 특히, 7세까지의 아이들은 타인의 피드백과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자기 개념을 형성하고 자아존중감을 경험하게 되는데 말이죠. 아이들은 자신의 대한 능력이나 확신에 대한 ‘의심’만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드디어 앞서 중요하게 강조된 5세가 포함된 5세에서 7세를 살펴볼까요?   

이때는 이 책의 핵심인 ‘주도성’이 형성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아이들이 “내가!”, “아니~” 하는 걸 많이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이 하겠다며 고집을 피우고, 부모가 신겨준 신발(옷이나 액세서리, 장난감 등)을 내팽개치면서 자신이 신겠다고 떼를 써서, 유치원에 지각하는 일이 늘상 일어나고 말이죠. 그래서 아침 등원이 전쟁 같을 것이고, 아이와의 싸움이 빈번해지면서 부모의 목청이 득음에 오를 경지가 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온갖 타이름, 유혹, 으름장,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부모가 혈압으로 먼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주도성이라는 건, 부모의 인내심과 기다림을 전제로 발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의 몸에 사리가 한 줌은 생기는 시기라 할 수 있죠. 그래서 부모에게는 가장 어려운 시기고,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이며, 동시에 가장 걱정이 많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되니까요. 


  만약 이 시기에 주도성이 발달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불행하게도 아무것도 선택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무능한 아이가 되고 맙니다. 일상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매 순간마다 선택을 해서 탐험을 해야 하는 꼬마 영웅이 되어야 하는 이때, 부모의 지나친 간섭이 있다고 한다면 아이는 자신을 실패자로 여길 것입니다. 자신이 선택해서 되는 건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부모가 대신해주는 것이 훨씬 더 완벽해 보일 테니까요. 


  또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해서 주도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선택에 의존해서 한 모든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상하게 들리시죠? 뜬금없이 죄책감이라니. 아이들이 선택을 부모에게 떠넘기면서 자신은 책임에서도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책임을 회피한 자신에 대해 죄책감이 드는 것입니다. 이런 복잡한 심리 역동으로 인해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때가 아이들의 앞날에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눈치채셨나요?


  7세까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의 절대 영역 하에 아이들이 돌봄을 받고 성장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게다가 아이의 평생의 가장 기초가 되는 삶의 태도 역시 이때 모두 형성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겁니다. ‘자기상(image of self)’, ‘자기 개념(self concept)’, ‘자기 효능감(self efficacy)’, ‘자아존중감(self esteem)’등 말이죠. 시중에 나온 많은 부모교육 서적의 중심 키워드랑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이 모든 걸 결정짓는 이 시기를 그냥 흘려보내시길 바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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