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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은 Dec 26. 2020

#6 자발적 몰입

빼앗긴 아이들

  우리 아이가 어떤 삶을 살길 바라시나요? 세상에 나가 마음껏 자신의 뜻을 펼치며 살길 바라시나요? 아니면 주눅 들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겁만 집어먹는 아이로 성장하길 바라시나요? 어느 부모도 자신의 아이가 수동적이고 위축되어 살길 바라진 않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어른들의 규칙과 방식대로 무조건 맞추며 살라고 강요하진 않나요? 부모인 우리의 태도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뭘까요? 아마도 “가만히 좀 있어!” 일 겁니다. 그럼 한번 반대로 생각해 보죠. 이런 말을 제일 많이 하는 걸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이 이토록이나 많다는 걸 말합니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 왜 그럴까요?


  아이들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게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세상을 탐색하고 탐험을 떠날 수 있으니까요. 타고난 모험가들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런 모험가인 우리 아이들에게 늘 “꼼짝 마!”하고 외치는 겁니다. 그 말인 즉, 갇혀 지내라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마치 자유가 없는 감옥살이와 같습니다.


  부모인 우리들에게도 직장 상사가, 혹은 권위자가 꼼짝 마 라고 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얼마 전 코로나로 세계 곳곳에서는 락다운 정책을 펼쳤습니다. 도시를 봉쇄하고 집 밖으로 나가는 걸 국가에서 강제적으로 제한한 것이죠. 처음엔 코로나가 무서웠기에 다들 그 정책에 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 어떻습니까?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밖으로 뛰쳐나왔고, 자유를 갈망한 나머지 극단적으로 코로나를 부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코로나는 그렇게 무서운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말이죠.


  ‘자유’는 본능입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은 타고난 본능과 같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을 사람들은 견디지 못합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아이에게 그 자유를 빼앗고 있는 겁니다. ‘내 말만 잘 들으면 아무 문제없어’하고 말이죠. 독재도 이런 독재가 없습니다.


  앞서 아이들의 언어는 놀이라고 했죠? 맞습니다. 아이들은 놀아야 합니다. 그것도 매우 열정적으로 말이죠. 세상에서 가장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것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노는 것’입니다. 어른들도 늘상 외치지 않습니까? ‘놀고 싶다’고.


  놀이는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고, 최고치의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이런 적극적인 행위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게 바로 ‘놀이’인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인생에서 최고치의 몰입과 격렬할 정도의 활동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는지 말이에요. 어른이 되어서도 뭔가에 ‘미친 듯이 빠져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합니다. 원한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이런 극치의 몰입을 자주 경험한 아이는 커서 어떻게 될까요? 인생이 즐겁고, 생동감 넘치겠죠. 혼자 골방에서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스스로를 자책하며 세월을 보내진 않을 겁니다.


  우리는 종종 아이인데도, 인생 다 산 애 늙은이처럼 이야기하는 아이를 볼 때가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듯이 세상사 모두 관심 없어 보입니다. 뭔가 질문을 해도 대답이 주로 “네. 그렇죠. 뭐~”, “별로~”, “그냥~” 이런 식의 말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생동감’, ‘창의력’, ‘도전’, ‘탐험’ 이런 말이 어울릴까요? 세상과는 동 떨어져서 다 무너져서 가는 희망 없는 도시에 사는 아이들 같지 않으시나요? 이런 아이들은 흥미도 없고, 관심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 몰입이란 거와는 담쌓고 사는 아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키는 부모가 없다면 절대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는 아이들인 거죠. 이런 사고와 감정이 지배적인 아이들이 무언가를 시도하고, 유지하고, 끝까지 해내는 치열한 일들을 할까요? 어림없는 일일 겁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하는 것은커녕 부모가 밀착 마크해서 체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될 겁니다. 마치 좀비 같지 않으신가요?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본능에 지배된 채 공허한 눈빛으로 괴이한 소리를 내며 느릿하게 움직이는 좀비 말이죠. 제가 좀 극단적으로 과장되게 표현했다는 거 인정합니다. 그러나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을 좀비로 만들면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아이가 이것저것 해봐야 합니다. 해봐야 흥미가 있는 것이 생길 것이고, 재미있는 것이 무언인지를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물론 이제껏 스스로 해본 적 없는 아이는 ‘해보는 것’조차 거부할 겁니다. 스스로 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마치 흰 종이에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공포감이랄까요? 그러니 이런 시도는 어리면 어릴수록 효과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결코 흰 종이를 두려워하지 않으니까요. 흰 종이를 두려워하는 건 나이 든 어른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루 종일 팽이만 돌려서 질리지 않고 할 수 있고, 종이 접기만 해도 행복해하는 아이들. 새로운 시도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들은 일단 주도성의 꽃을 피울 준비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유로운 시간과 마음껏 시도해 볼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진다면 최고의 몰입의 길목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저것 부모 자신이 좋아할 만한 것을 제안하며 아이를 유혹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마음껏 실험의 장을 펼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 말이죠. 이런 준비를 부모가 해준다면, 누구도 놀이를 거부하지 않을 겁니다. 이때 하는 놀이는 자발적이고 몰입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인정하실 수밖에 없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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