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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은 Dec 30. 2020

#8 부모 말만 듣는 것이 문제

빼앗긴 아이들

  ‘말 잘 듣는 아이’가 가장 문제입니다. 


  이게 도대체 뭔 소리야? 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어쩌면 화내실 수도. 그래도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말 잘 듣는 아이란 결국 부모가 하라는 대로만 하는 아이를 말합니다. 물론 부모가 나쁜 걸 시키는 게 아닙니다. 주로 아이를 위한 것이고, 아이를 걱정해서 하는 것들이고,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요소이기도하다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앞서도 계속 강조했던 것이 바로, 자발성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까지 강조할 것 역시도 ‘스스로’라는 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결국 ‘자기 주도’니까요.    


  자기 주도적인 아이는 능동적입니다. 그리고 이는 행동력을 뒷받침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경험한 것들 중 흥미가 있었던 것을 반복하면서 영역을 넓혀갈 때 주도성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그 활동영역은 아이가 스스로 개척한 영역이 되는 것이고 아이는 곧 개척자가 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개척자 정신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안전하게 하라는 대로만 하는 아이에게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이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절대로 새로움을 창조해낼 수는 없습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두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자신의 자녀가 ‘안전’하고, ‘무사’하게, ‘적당히’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일 겁니다. 나머지 하나는 뭘까요? 바로 시대의 한 획을 그을 정도의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거나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창조적인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일 겁니다. 


  상반된 이야기죠? 맞습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이 두 가지 상반된 마음을 품고 갈팡질팡하며 양육하고 있습니다. 때론 도전적이길 기대하고, 때론 편안하게 안주하길 바라면서 말이죠. 그러니 아이들이 혼란스러운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개척자 정신을 먼저 살펴볼까요? 

  이들은 끊임없이 흥밋거리를 찾아 헤매고, 두려움을 이기고 도전하며, 용기 있게 실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이들을 볼 때 위험하게 보고 안심할 수 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대단히 큰 일들을 기어이 해내고 맙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생각을 하고, 누구도 하지 못할 일을 하며, 모른 채 살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해서 세상에 알리는 역할들을 하며 말이죠. 그게 발명이 될 수도 있고, 신세계를 발견하거나 창조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고, 위대하다는 칭함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절대 안주하지 않죠. 


  핵심은 이것입니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는 아이로 양육한다면 이런 창조적인 사람으로는 절대 성장할 수 없다는 겁니다. 자신을 실험하며 새로운 도전을 끊임없이 하는 사람만이 역동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를 볼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남들처럼’이라는 말일 겁니다. 이건 ‘보통’이라는 범주 안에 속하는 말이고, 튀지 않음을 나타내며, 큰 변화랄 것 없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한 거고, 아무 일도 없기 때문에 평화로운 겁니다. 물론 이런 삶을 추구하고 의미 있게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가 ‘특별하길’ 바라실 겁니다. 그렇기에 아이를 양육하면서 ‘남들처럼’이 아니라 ‘남들보다’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다른 아이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는 것일 겁니다. ‘남들보다 빨리’, ‘남들보다 잘’, ‘남들보다 많이’를 외치면서 말이죠. 멈춤 없이 질주하는 사교육의 열풍이 이런 경쟁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니 부정할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아이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합니다. 아주아주 넓은 안전망을 설치한 채 말이죠. 개척자 정신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안전장치도 중요합니다. 부모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것은 아이에게 충분한 보호장치가 되며 안전선으로의 역할을 할 테니까요. 


  어떤 안전장치가 필요할까요? 

  그건 바로 아이의 성장, 발육, 안전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그리고 사회와 가정 내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규칙과 법, 도덕적 기준을 말합니다. 이 최소한의 보호장치는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것입니다. 그러니 과도하게 염려하여 지금 일어나지 않을 미래의 걱정까지 앞당겨서 아이를 제한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제약에는 부모의 앞선 걱정으로 비롯된 게 많으니까요. 이런 안전장치는 아이에게 타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건 부모님이 배려해서도, 양보해서도 안 되는 절대 기준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 이 기준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좀 느슨해도 됩니다. 아이에게 하는 많은 제약이 부모가 편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 아이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아이들이 5세 경이되면 자기가 하겠다고 하는 '우기기'가 늘어납니다. 황소고집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고집스러움도 이때 유독 심하고요. 그런데 왜 이런 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생각하시나요? 바로 부모의 말을 거부하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하고자 하는 '고집'이라는 것이 생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존의 틀을 과감히 벗고 새로운 틀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득권에게 반기를 들어야 하니까요. 부모는 아이들에게 있어서 기득권이고 관례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의 핵심인 자아(ego)가 형성됐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로 '자기주장'에서 비롯된다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러니 아이가 부모의 말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는 건, 자아(ego)가 막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반기의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그거 아시나요? 사춘기 때 우리는 흔히 자아정체감을 형성하는 시기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이 시기에도 역시 부모에게 반항을 하면서 자아정체감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제 감이 오셨나요? 아이들의 반기, 반항, 고집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이들의 '반기'는 주도성의 씨앗일 수 있습니다. 이 씨앗을 잘 돌보고 보살피면 성장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씨앗을 함부로 다룬다면 어떻게 될까요? 말라비틀어져 시들어버리는 신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과 염려를 바탕으로 둔 편견은 접어두세요. 부모 말을 잘 안 듣는 아이가 오히려 이 시대의 영웅으로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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